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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Jun 07. 2020

백 퍼센트 여름의 시작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어제 하루 종일 바깥을 돌아다녔더니 꽤 피곤했었나 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히 식사를 하고는 좀처럼 끝내지 못하고 있는 책을 집어 들었는데, 이내 또 잠들고 말았다. 다시 잠을 깨니 오후 한 시. 스피커에서는 프란츠 리스트의 Love Dream이 흘러나오고 있다. 확실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 이 곡의 중반부 크레센도 몰토로 타건하는 클라이맥스에서 잠을 깼을 것이다.

다시 잠든 것이 오전 아홉 시쯤이었으니 정말 푹 자버리고 말았다. 천천히 일어나서는 잠들기 전 건조기에 넣어 두었던 이불 커버를 보러 뒤쪽 베란다로 갔다. 그동안 이미 건조기는 자기 할 일을 마치고 태엽이 풀린 미니카처럼 가만히 멈춰있었다. 건조를 마친 이불 커버를 꺼내어 거실 바깥쪽 창문 옆 소파에 넓게 펼쳐 걸어 둔다. 건조기를 했어도 두꺼운 빨래들은 - 설거지 후 건조대에 놓인 접시처럼 - 살짝 습기를 머금고 있어

‘저. 아직은 조금 더 햇빛 아래 앉아있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다시 세탁기 쪽으로 가서 탈수가 끝난 다른 빨래들을 꺼내어 건조기에 드라이 시트와 함께 밀어 넣는다. 그리고, 시작 버튼을 누른다. 건조기는 산수가 서툰 초등학생처럼 건조 시간을 대충 계산해 내고는, 웅웅 굉음을 내며 작업을 시작한다.

거실로 나오니 바닥에 아침에 읽으려 했던 책이 그대로 놓여 있다. 밟으면 술래가 되는 금을 뛰어넘듯 책을 건너 소파에 앉았는데, 거실 창으로 넘어 들어오는 햇살이 백 퍼센트 여름용이다. 이 정도라면 소파에서 빨래가 종잇장처럼 바삭하게 마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오늘은 백 퍼센트 여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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