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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Jun 14. 2020

내 머릿속에 저장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전 빛이 좋아요. 물론 그림자를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죠.'

누군가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를 물었다. 사진에는 그것들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좋았다. 어쩌면, 그 빛과 그림사 사이를 빠짐없이 모두 담고 있어서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카메라의 메커니즘에 익숙해서 수동으로 세팅을 조정해가며 찍어대는 것도 아니고, 어깨를 내리누르는 거대한 카메라와 렌즈들을 매번 메고 다닐 수 있는 성격도 못되지만, 가끔 조금 더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만나게 되면 

디오라마를 유리상자에  ,
파스텔화에 픽사티브를 뿌리 ,
드라이플라워로 하바리움을 만들 

그대로 내 손 닿는 곳에 잡아두고 싶어진다. 물론 그 시도가 성공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지만.

....

외갓집이 서울 외곽, 행주산성 근처에 있었다. 어렸을 때는 - 그리고, 지금도 - 멀미를 꽤 심하게 했는데, 외갓집에 갈 때마다 도착할 때쯤 되면 늘 멀미로 정신이 없었다.
한 번은 꽤 더운 여름날 외갓집을 가는데, 그때도 멀미 때문에 차 안에서 눈을 감고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그럴 때면 늘 머릿속에서는 우주 속을 유영하며 소유즈*를 찾는다. 우주 속이라도 바닥에 발을 딛고 서고 싶어지니까.
어느덧 차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상상과 현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며 소유즈에서 내려섰다. 아니, 차에서 내려섰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외갓집 앞의 커다란 나무를 짚고 서 있는데, 여름 햇살이 정수리에 떨어졌다.

‘뜨거워.’

뜨거웠다. 그래서, 아마 나도 모르게 위를 쳐다봤던 것 같다. 순간 화이트 홀 현상으로 시야가 온통 하얗게 변했고, 다시  천천히 시야가 열리자 눈 앞에는 여름 햇살이 나무의 수많은 잎들에 부서지며 만들어낸 - 빛과 그림자 사이 - 수십수백의 극명한 녹색의 그라디에이션이 있었다. 옅은 녹색, 짙은 녹색, 투명한 녹색. 그리고, 그 그림자 아래의 흑녹색, 그 외에 이름이 다 존재하지도 않을 것 같은 녹색 계열의 배리에이션이 수많은 나뭇잎 위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때, 빛이 좋았던 건지, 그림자가 좋았던 건지, 아니면 그 대비 사이의 강렬한 색의 변화가 좋았던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광경을 조금 더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

일반화라는 건 - 물론 깔끔하고, 이해를 용이하게 해 주지만 - 수많은 주변 값이 희생된 결과다. 마치 손실 압축된 음원이나 순식간에 그려진 크로키처럼.

직장을 다니는 30대 여성,
군 복무를 하고 있는 20대 남성,
은퇴한 60대 남성,
등의 같은 분류에 속하는 사람들도 사진 속에서는 각자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똑같이 서 있어도, 똑같이 운동을 해도, 똑같이 식사를 하고 있어도, 하나같지 않다. 모두 다 똑같을 것만 같은 한 나무의 나뭇잎이 모두 다르듯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모든 것을 일반화시키는 내 직업이 싫어질 때가 있다. 세상이 가지고 있는 매직을 짓밟고, 삶을 재미없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조금 무거워도 카메라를 들고 나선다. 어렸을 때 봤던 배리에이션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주변 어디에나 있으니까. 아직 세상이 그런 모습이라는 것을 확인하면 조금 안심이 된다. 아무리 일반화시키고, 단순화시켜도, 세상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리고, 내일을 기대하게 된다.




*1960년대 말에 개발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소련의 유인 우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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