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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방지용 스티커와 타당성 검토

블루오션을 찾아라

by Aprilamb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인도 과학자 마니샤 모한이 성폭행 방지용 스티커를 개발했다고 한다. 이 스티커에는 블루투스로 연결된 센서가 내장되어 있어 속옷 안쪽에 붙여두면 자극을 받는 즉시 ‘동의하십니까?’라는 문자가 스마트폰으로 발송된다. 만약 메시지를 받고도 20초 동안 답변이 없으면 사전에 지정해 둔 지인들에게 위치정보가 담긴 메시지가 전달되고, 스마트폰에서는 비상벨이 울린다. 게다가 동시에 사전에 지정해 둔 지인 중 한 명에게 자동으로 전화가 걸려, 주변 상황을 녹음할 수 있는 기능까지 있다고 한다. 초 첨단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창의적인 발상의 결과물들을 사랑하는 편이지만, 이 스티커가 실제로 효용성이 있을지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류의 제품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동원한 발생 가능 상황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밖에 없는데, 귀찮다고 이 프로세스를 건너 뛰거나 소홀히 하면 많은 노력을 들이고도 쫄딱 망할 수 있다. 마니샤 모한이 실제로 제품을 생산하고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할 일이 없는 내가 고등학교 때 배운 경우의 수를 십분 활용하여 - 마니샤 모한은 모르겠지만 - 여러 패턴을 시뮬레이션 해 주기로 했다.


google Git을 살펴보면 안드로이드의 경우 7대의 블루투스 디바이스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고, 아이폰의 경우에도 경험상 8대 정도까지 연결이 가능했다. 요즘 이어폰이나 스마트 워치, 키보드 정도는 누구나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고, 불시에 다른 디바이스의 연결을 위해 여분을 남겨두는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최신 폰의 경우 서너 개의 스티커를 사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안드로이드 4.0 이하 라면, 연결 가능한 블루투스디바이스가 4개 밖에 안되니 두 개의 스티커도 빠듯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두세 개 정도를 붙일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부위에 붙여야 할까? 이 스티커의 핵심은 위험 상황에서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에 사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 그런 예측을 하는 게 용이할 리가 없다. 팔을 잡아당긴다던가 어깨를 끌어안는 행위는 대부분 반드시 발생하겠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해당 부위에 자극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 일반적으로 쉽게 자극이 발생하기 어려운 부위인 - 가슴에 붙이도록 권장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위급한 상황에서 나쁜 놈이 가슴 부위에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면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해도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기지만 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바로 스스로 스티커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험한 일이 발생하기 전에 스티커 시스템이 작동하게 할 수 있다. 일단 작동이 되면 스티커 시스템은 바로 피해자의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즉,


‘동의 하십니까?’


라는 메시지를 - 피해자는 -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가해자가 피해자의 스마트폰을 보고 직접 ‘동의’ 버튼을 누른다면? 이건 정말 큰일이다. 먼저 스마트폰 잠금 설정을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이것을 매뉴얼에 붉은 느낌표 마크와 함께 꼭 실어야 한다) 그리고, 혹시 잠금 설정이 되어있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서, 실제로 동의하는 사람이 스티커 시스템의 사용자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본인 인증' 절차도 추가해야 한다. 생년월일을 입력하거나, 태어난 도시,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 같은 것을 입력 받는 것도 좋다. 관찰로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좋아하는 색깔 - 지금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일 수도 있으니까 - 같은 것은 피하는 게 좋겠다. 하지만, 생체 인증은 막아야 한다. 지문이나 얼굴인식 같은 경우 앞에 있을 피해자를 통해 바로 언락 시켜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생체 인증을 꼭 넣어야 한다면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려다가 스스로 활성화를 시켜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간편 인증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음) 매뉴얼에 ‘눈 앞에 가해자가 언락을 위해 폰을 들이대는 경우, 반드시 눈을 감으시오’라는 지시 문구를 집어넣어야 한다. 얼굴인식은 안구가 보이지 않으면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높은 경우는 얼추 살펴본 것 같기도 한데, 생각하다 보니 사용자 중에서 스티커 시스템의 기능을 다른 곳에 이용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예를 들자면,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늦게 오는 친구들에게 위치를 모른다는 연락을 받게 되는 경우, 이 시스템을 사용하면 귀찮게 맵에서 검색을 하고 그 링크를 각자에게 보낼 필요가 없다. 스티커를 활성화 시킨 후 20초 동안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사용자가 형사라면? 범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말을 녹취하고 싶을 때, 범인을 연락 수취자로 지정한 후 스티커를 활성화 시키면 된다. 시스템은 자동으로 전화를 건 후 녹취 기능까지 활성화 시킬 거다. 혹은 식사하는 시간을 매번 기록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 시계를 보고 시간을 적어둘 필요 없이, 식사를 할 때마다 스티커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메시지에 ‘동의’만 하면 된다. 지난 일주일 동안 식사한 시간을 확인하려면 그동안의 ‘동의’ 로그만 살펴보면 된다. 아주 간단하고, 너무 편리하다.(갑자기 남자인 나도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실제로 이 스티커 시스템의 원래 용도보다 더 좋은 활용처를 많이 생각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정리해서 마니샤 모한 박사에게 메일을 보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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