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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의 정기구독

늘 기록을 갱신하는 친구

by Aprilamb


지난번 인터넷에서 난데없는 설문 팝업에 성실히 응했다가 경품인 아이폰 11프로에 당첨이 되어 세금 2달러(?)를 지불했던 친구를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우리 모두는 그게 사기라고 생각했지만, 그 친구는 마침 폰 바꿀 때에 맞춰 당첨이 됐다면서 즐거워했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종종 있다. 세면대의 비누가 떨어질 때쯤 봉사활동의 보답으로 고아원 아이들이 만든 수제비누를 받는다던가, 가방에 넣고 다니는 물티슈가 떨어져 갈 때쯤 길거리의 모델하우스 앞에서 전단지와 함께 물티슈를 건네받는 다던가 하는 일. 하지만, 스마트폰은 비누나 물티슈와는 조금 다르니까. 아니 많이 다르잖아.


- 안녕? 아이폰은 받았어?


"당첨? 너 몰랐니? 그거 사기였어.”


물론 나는, 아니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나랑 똑같은 설문을 하고 사기당했던 내용을 블로그에 올려둔 사람이 있더라고. 그런데 더 열 받는 게 뭔지 아니?"


- 그게 뭔데?


"그 사람 블로그를 보니까 결제 금액이 1달러더라고. 나는 2달러였잖아. 1달러 손해 봤더라고."


사실은 2달러 손해다. 친구는 우울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


끝이 아니었다니, 혹시 또 인터넷에서 비슷한 설문을 했던 걸까?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사기도 한번 당한 사람이 또 당할 확률이 높다. 물론 한번 당했던 패턴은 학습능력으로 피해 갈 수 있겠지만, 디지털 플랫폼으로 트랜지션 된 새로운 패턴을 접하게 되면 그 '성향'은 그것을 또다시 덥석 물게 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꼬리를 무는 '우로보로스'처럼. 슬픈 일이다.


"어젯밤에 갑자기 스마트폰이 울리는 거야. 그 시간에 메시지가 올리가 없는데. 나는 내가 알람을 허용해놓은 앱과 그 앱의 알람 패턴, 그 외 다른 메시지가 올만한 상황 같은 걸 모두 복합적으로 인지하고 있거든. 그래서, '이건 뭔가 잘못된 거다.' 하고 바로 알았지."


똑똑한 친구인 것은 확실하다.


- 그래서?


"당연히 바로 충전하기 위해 책상 위에 두었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지. 메시지를 보려고."


- 무슨 메시지였어?


"아주 익숙한 번호였어. 물론 외우고 있던 번호는 아니었지만, 뭐랄까 아주 익숙하고 친근한, 오래된 친구 같은 번호?"


- 현기증 나. 무슨 메시지인데?


"응. 그건 카드사에서 보낸 메시지였어."


- 카드사 경품에 당첨된 거야?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딱히 던질 추임새가 없었다.


"그 시간에? 아니야. 그건 카드사에서 보내주는 결제 정보였어. 20달러가 해외 결제되었더라고."


- 그때 뭘 구매한 건 아니잖아?


"응. 맞아. 자세히 보니 지난번 설문 때 2달러를 결재할 때의 청구지와 동일한 곳이더라고."


일종의 정기구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기의 정기구독.


"그래서 나는 카카오 뱅크에 바로 전화를 걸어서....."

....

..


사기 이후 처리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신속하다고 생각한다. 절차도 완벽하고, 이후 손해를 최소화하는 데에도 능하다. 그래도, 이제는 친구가 사기 좀 그만 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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