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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ide Son Feb 18. 2022

금연예찬(禁煙禮讚) 1부

어느 애연가의 고백

창문을 열자 매캐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랫집 남자가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양이다. 정확히 하자면 바로 아랫집은 아니고,   정도 아랫집에, 그것도 우리 라인이 아니라 옆라인에 사는 남자가 범인이라고 한다. 마치 체스판 위의 나이트가 뛰어오듯, 담배연기는 이렇게 겅중겅중  층이고 넘나들어 아기와 내가 조용히 안식하는 우리  거실 안까지 들이닥쳤다. 도대체  () 시도 때도 없는 것이, 벌건 대낮에 밖에도 나가지 않는 백수임이 틀림이 없다고 혼자 분개하고 있던 . 실제 그가 노부모의 집에 기생하는 나이 많은 백수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럼 그렇지 하고 환멸을 느끼는 동시에  얄미운 실내 흡연가를 증오하는  자신이 조금 우스워졌다. 나는 스무  가을부터  아이를 임신한 30 봄까지,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대단한 애연가가 아녔던가.



신입생이 되어 맞는 첫 봄(정말 진부하지만 모든 사건은 이 시절에 벌어지나 보다. 신입생, 봄, 개강이라니!), 오르비에선가 수만휘에선가 알게 되어 친해진 같은 학교 남학생과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나던 날 나는 내 인생 첫 담배를 배웠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그 남학생은 세상 고루한 범생이였던 나와는 달리 고등학교 때도 담배도 피워보고 술도 마셔보고 소위 말해 좀 놀아본 애였나 보다. 편의점에 가서 잔뜩 경계의 눈초리로 신분증을 꼼꼼하게 읽어보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능숙하게 "팔라멘트, 1미리 한 갑이요"라고 말했고 반면 나는 취기에 붉어진 얼굴이 편의점 진열대 여기저기에 비치는 것을 애써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너는 담배가 처음이고 여자 애니까 순한 것으로 산다며 난데없는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고는 본인은 바지 뒷주머니에 꽂아두었던 말보로 레드를 꺼내 물고 시범을 보여주었다. 불을 붙이는 순간 담배를 힘차게 빨아들여야 한다며 엉성하게 입을 오므려 문 내 담배 끝으로 칙 하고 라이터를 당겨 주는 모습은 생각보다 낭만적이진 않았다. 그 애가 좀 더 미남이었다면 얘기가 달랐으려나...


후문에서 던킨 사거리(요즘은 던킨도넛이 없어져서 더 이상 던킨 사거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빠지기 전의 어느 이슥한 골목에서 침을 탁 탁 뱉으며 연거푸 세 대 정도를 함께 연습하듯 피워본 후, 나를 집에 가는 버스에 태워 배웅해주고는 몸을 돌려 축구부 형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정류장 앞 지하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로는 다시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다. 아마 나도 그의 기대만큼 미인이 아니었나 보다.


그때 사준 팔리아멘트를 자취방 서랍 속에 넣어놓고는 중간고사 즈음부터 연애를 시작하느라 정신이 없어 잊고 지내다가 덜컥, 첫 남자 친구가 군대를 가버리고 가을이 왔다. 고무신 노릇을 하는 것이 영 나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연애가 처음이라 쉬이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해서 우울함과 쓸쓸함이 뒤범벅된 채로 오만 청승은 다 떨고 돌아다녔으니 이 때야 말로 담배가 절실한 시절이 아니고 뭔가. 늦은 밤, 인적이 드문 가로등 밑을 도둑고양이처럼 찾아다니며 봄에 사두었던 묵은 팔리아멘트를 한 대씩 꺼내어 태웠다. 마지막 스무 까치 째를 태울 때 즈음엔 더 이상 처음만큼 머리가 아프거나 구역질이 나지도, 허접스레 담배 연기가 입 밖으로 탁 퍼지며 흩어지지 않고 제법 그럴싸하게 긴 한숨으로 뿜어져 나왔다. 연기는 들이마시기 전에는 푸른빛이고, 뱉어낼 때는 잿빛이었다. 푸른 기가 가득한 그 어떤 물질들은 아마 내 폐에 잔류하며 폐포를 쥐어짜며 나를 숨 막히게 했는데 어느덧 나는 그 질식감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흡연가가 된 이후의 삶은 그 이전보다 더 풍요로워진 느낌이었다. 전보다 더 쉽게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물론 주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과), 나 자신이 더 이상 시골쥐가 아닌 굉장히 세련된 도시 여성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술을 같이 마시자는 제의는 때때로 부담스럽고 거창한 것이지만 잠시 저기 중도 앞에서 캔음료 마시며 담탐(담배 타임) 하자는 사람은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좋아하는 남자 선배가 학생회관 앞에서 느긋하게 담배를 꺼내어 무는 장면을 저 멀리서라도 목격하면 괜히 발걸음을 재촉해 그 옆에 달라붙어 천연덕스레 한 대를 따라 피우는 재미도 담배를 배우지 않았다면 누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의 데이트 상대들은  정도는 흡연자였고  정도는 비흡연자였는데 나는 그들에게 구태여 나의 기호에 대해 숨기지 않았다. 나의 보이프렌드들은( 남편을 포함하여) 대부분 내가 담배 태우는 모습이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듯했고, 그들  가장 철딱서니 없던 우리 남편은 급기야 연애시절 나에게 담배를 배워 20 내내 피우지 않던 담배를 서른 넘어서 태우기 시작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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