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영국까지

6월 마지막 주의 음악, 포티셰드의 "S.O.S."

by 김방통

10년 가까이 기다려온 뮤지션이 침묵을 깨고 오랜만에 발표한 작품이 앨범이 아니라 달랑 싱글 한 곡이라면, 심지어 그렇게 나온 한 곡도 영화에 삽입된 리메이크라는 소식을 들은 팬의 기분은 어떠할까? 흠, 어쩌면 듀크 뉴켐 포에버나 <Chinese Democracy>를 기다렸던 사람들이라면 이 팬을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포티셰드가 영화 <하이-라이즈High-Rise>의 음악 작업에 참가했다는 소식을 들은 내가 그 입장이었다. 이들은 20세기에 음악계의 판도를 바꿀 트립합 앨범 두 장을 내고는 두문불출하다 11년이 지난 2008년에야 세 번째 앨범 <Third>를 발매했고, 그 이듬해 싱글 "Chase the Tear"를 낸 후로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었다. 이 정도면 아마도 내가 21세기 들어서 신곡을 가장 오래 기다린 팀일 텐데, 그렇게 7년을 기다렸더니, 이제 겨우 한 곡이 나온다는 것이다. 7년 만에! 한 곡! 그것도! 리메이크로!





이들이 이번에 리메이크한 곡은 아바의 "SOS"다. 그렇다, "Dancing Queen"과 "Thank You for the Music"의 그 아바. 포티셰드 버전의 "SOS"에는 아바의 까랑까랑한 피아노 전주도 없고 풍성한 화음과 코러스도 없다. 노래는 크라프트베르크의 "Radioactivty"를 떠올리게 하는 불길한 모스 부호로 시작되며, 이어서 전시 사이렌처럼 들리는 신스가 깔린다. 노래는 원곡과 비교해 거의 움직이지 않는 코드 위에서 진행되며, 나중에는 아예 단조로 바꾼 코러스가 등장한다. 여기에 보컬 베스 기븐스가 특유의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로 원곡 그대로 노래하니 "You seem so far away though you are standing near"같은 가사도 완전히 다른 식으로 다가온다. 심각한 악취미 혹은 포티셰드 식의 뒤틀린 유머 아닌가 싶을 정도다.

리메이크는 보통 과거에 있었던 영광의 반영을 좇으면서 동시에 그 영광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 섣불리 나섰다가는 본전 치기도 하지 못하는 접근법인 경우가 많다(<나는 가수다>부터 <복면가왕>까지 과거의 한국 대중음악을 유령만도 못한 모습으로 되살린 리메이크들을 보라). 거기에 더해 자신들의 색깔이나 창조적 해석을 싣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누군가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기도 한다. 포티셰드가 그렇다.

내게 포티셰드는 트렌트 레즈너와 라디오헤드와 함께 개성 있는 보이스 컬러나 기타 연주, 가사의 각운 등을 넘어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들의 색깔이 드러나는 사운드를 만드는 아티스트이다. 마치 숙명처럼, 어떤 음악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종류의 뮤지션들 말이다. 가사도 멜로디도 원곡 그대로인데 나온 결과물이 너무나 포티셰드인 노래라서, 나는 처음 "SOS"를 듣고는 (그럴 분위기의 노래가 아님에도) 한참을 웃었던 것 같다. 듀크 뉴켐 시리즈와 건즈 앤 로지스의 대부분의 팬들과는 달리 다행스럽게도 포티셰드의 작업은 지금까지 한 번도 내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바의 사랑 노래를 황량한 재난의 풍경이 떠오르는, J. G. 발라드의 디스토피아 SF의 배경 음악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포티셰드의 "SOS"는 실로 괜찮은 리메이크라 할 만한 것이다.





이 리메이크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 <하이-라이즈>가 개봉한 것은 올해 3월의 일이었지만, "SOS"의 음원은 따로 발매되지 않았다. 포티셰드는 잠깐 동안 노래를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개했지만 그나마도 곧 없애버렸다. 그렇게 없어졌던 노래는 6월 22일 유튜브에 돌아왔다. 영국의 EU 탈퇴 투표 이틀 전 노동당의 조 콕스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포티셰드가 고인의 메시지 "We have far more in common than which divides us"와 함께 "SOS"를 인터넷에 공개한 것이다.

이렇게 1975년 스웨덴 그룹이 만든 히트 싱글은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2016년 영국에서 가장 정치적인 노래로 재탄생한다. 음악적 재창조뿐만 아니라 그 음악이 배치되는 사회와 정치적 지형의 변화를 통해서도, 리메이크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포티셰드의 "SOS"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섬세하게 조탁된 음악으로써,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새로운 메시지를 담은 음악으로써 리메이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변화의 폭을 보여주는 적절한 예로 인상 깊게 기억될 것 같다.


이렇게 6월에 들었던 음악을 정리하였다. 겨우 네 꼭지를 쓰는 일인데 미루고 미루다 보니 벌써 7월의 반이 지났다. 돌이켜보건대 2016년의 6월은 다사다난한 한 달이었다. 올랜도에서는 참사가 벌어졌고 반이 살짝 넘는 영국 시민들은 EU를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 모든, 슬프고 때로는 즐겁고 모두가 복잡한 이야기들을 음악을 통해 기억하려 애써보지만, 7월은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2016년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올해의 겨우 반이 지났을 뿐이다.

나는 다만 뒤늦게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을 정리하면서, 회고적 시선으로만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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