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면서 들었던 음악

7월 넷째 주, 코플란드와 브람스

by 김방통

7월의 후반부에는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도서관 스터디룸에서 보냈다. 공부를 했다기보다는 그저 앉아만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지만, 나와 동기들은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열두 시간을 예약했고 거의 언제나 그 시간을 채우고 나오곤 했다. 정말 고등학생 시절 이래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었네.

그러면서도 새로운 음악은 꾸준히 찾아들었다. 운동도 못 가고 소설을 읽거나 악기를 만지지도 못했으니 낙이라고는 음악 듣기밖에 없었다. 공부하면서 들었던 음악들 중 인상 깊었던 둘을 기록한다.



1. 코플란드의 클라리넷 협주곡


베니 굿맨이 클래식을 연주한 이 음반은 꽤 예전에 알게 되었음에도(2년 전 부산에서 읽은 노먼 레브레히트의 책에서 처음 보았다) 바로 찾아 듣지는 않았는데, 파스텔로 대충 그린 것 같은 커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베니 굿맨의 사진을 찾아보고서야 이 그림이 본인과 꽤나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이 음반은 스트라빈스키의 에보니 협주곡을 비롯해 번스타인, 모턴 굴드와 바르톡 등 베니 굿맨의 다양한 클래식 여정을 담고 있지만 단연 두드러지는 부분은 2번 트랙으로 수록된, 작곡가 본인이 최고의 연주로 꼽은 바 있는 아론 코플란드의 클라리넷 협주곡이다. 베니 굿맨의 위촉으로 작곡된 이 '클라리넷과 현악, 하프를 위한 협주곡'(사실 피아노도 들어간다)은 두 개의 악장과 악장을 연결하는 카덴짜로 이루어진 20분이 안 되는 짧고 간결한 곡이지만, 클라리넷 레퍼토리에서 빠뜨리기 아쉬울 정도로 멋진 곡이다. 카덴짜도, 타악기같은 피아노와 슬랩 베이스가 나오는 재지한 후반부도 좋지만 특히나 첫 악장의 섬세한 아다지오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하프가 파도처럼 베이스음을 왔다갔다 하는 가운데 현악기가 펼쳐놓는 정경이 클라리넷의 부드러운 소리와 잘 어울린다. 안개로 둘러싸인 아침 정원에서 습기 가득한 풀밭을 거닐다 마주 손잡은 이에게 고백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런데 평론가들은 이 아다지오를 작곡가의 사회적 고립(코플란드는 20세기 중반의 미국을 살다 간 게이였고, 공산주의자라는 혐의 또한 받았다)에서 비롯된 외로움으로 인한 "달콤씁쓸한 서정성bittersweet lyricism"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음악이라 평했다고 한다. 나의 달콤함과 작곡가의 씁쓸함이 한 음악에서 만난다. 이렇게나 음악은 개인적인 경험이다.



2. 부흐빈더와 아르농쿠르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4악장)


브람스는, 내게 브람스는 절대로 섹스하면서 들을 만한 종류의 음악은 아니다. 나는 몇몇 클래식, 예를 들어 드뷔시의 나른한 3온음이나 정밀하게 쌓인 구조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바흐의 열정은 농밀하다고 느끼곤 하지만, 내 마음속의 좌표에서 브람스는 사랑 이후에 오는 것들, 비에 젖은 낙엽, 흐리고 낮은 하늘, 물과 딱딱한 흰 빵에 더 가까운 위치에 있다. 물론 누군가는 헝가리 무곡 5번도 있고 피아노 사중주 1번의 마지막 악장도 있다고 말하겠지만 아무래도 내게 브람스는 슬픔즉효약이라서 그 이름을 들으면 교향곡 4번이나 클라리넷 오중주가 품고 있는 애상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내가 유독 특별하게 여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내가 품고 있는 브람스에 대한 고전적인 이미지답지 않게 유쾌하고 재기 넘친다. 22년 전에 작곡된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비교해보라. 그 1악장 도입부의 천둥과 폭풍같은 불길한 저음과 팀파니를, 다른 교향곡들만큼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25분짜리 악장을 떠올려보라. 거기에 비하면 호른과 피아노가 조용히 등장하는 2번의 시작 부분은 조용한 아침의 목가에 가깝다. 혹은 통통 튀는 피아노 주제가 갑자기 멜랑콜리한 현악으로 연결되는 4악장은 어떤가. 목관이 주제를 연주할 동안 고음부에서 종달새처럼 뾰로롱 나타나는 피아노는 어떤가.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가볍고 사랑스러운, 내가 아는 최고로 귀여운 브람스이다.

어쩌다 도서관 스터디룸에서 찾은 루돌프 부흐빈더와 니콜라스 아르농쿠르-로열 콘체르트게보우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내가 생각하는 이 곡의 귀여움과 우아함을 잘 드러낸다. 다른 연주들이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브람스의 흑백 사진처럼 진중하고 묵직하게 내딛는다면, 이들의 연주에서는 악기들이 주고받는 호흡이 전면에 투명하게 드러나 있다. 딱히 편성을 줄인 것 같지는 않은데 오케스트라의 악기군들은 명확히 구별되는 소리를 내고 있고, 피아노도 페달을 짧게 쓰는 건지 아티큘레이션이 참으로 깔끔하다. 여기에 곳곳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템포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주고받는 대화를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장대한 관현악보다는 훨씬 실내악처럼 들리는 낭만적인 브람스 연주가 나왔고, 나는 이런 해석이 매우 마음에 든다. 우아한 봄날의 브람스, 화창한 날의 브람스. 한동안은 이 연주를 많이 듣게 될 것 같다. 물론, 언젠가 침대 위에서 브람스를 틀게 되는 순간이 올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무척 회의적이지만.


teldec.jpg 부흐빈더와 RCO, 아르농쿠르의 연주. 재발매보다 텔덱에서 나온 커버가 더 예뻐서 가지고 와봤다.



* 부흐빈더와 아르농쿠르의 연주에 대하여 찾아보다 한글로 된 음반 해설을 발견하여 여기에 덧붙인다.

http://www.sonitus.co.kr/pages/page_63.php?act_module=board_blog&act_type=read&sn=12479&page=1&PHPSESSID=2fd9476edaf5fc423450d20e35108807&ckattemp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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