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노래, 새들의 노래

8월 첫 주, 아이노유하니 라우타바라의 <Cantus Arcticus>

by 김방통

부고 3 : 아이노유하니 라우타바라Einojuhani Rautavaara의 부고를 들었다. 7월 27일, 향년 87세의 나이였다. 라우타바라는 얀 시벨리우스 이후로 핀란드에서 태어난 가장 유명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으며, 평생 다양한 형태의 음악 기법을 시도하였다. 고인은 아홉 편의 오페라, 여덟 편의 교향곡을 비롯해 실내악에서 성악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왔으며 죽기 직전인 작년까지도 꾸준히 작곡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나는 아이노유하니 라우타바라를 인터넷에서 현대 음악을 마구 그러모으던 중학생 때 알게 되었다.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 희생자들을 위한 애가"를 듣고 충격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역사적 배경은 전혀 모른 채로 처음 들어보는 작곡가('하이든'이나 '모차르트'처럼 수면이 보장된 이름만 아니면 괜찮았다)만 나오면 마구잡이로 구해서 들어보곤 했다. 코릴리아노를 접하고 전율하던 것도, 루이지 노노의 테이프 작품을 들으며 공포에 질린 것도, 스티브 라이히를 홀린 듯이 듣다가 잠들어 버린 것도 그때였다.

비록 대부분의 음악을 기겁을 하면서서 빛이 들지 않는 내면의 구석으로 던져버리긴 했지만 극소수의 음악은 남았고, 라우타바라도 그 저인망식 필터링을 통해 발견한 이름들 중 하나였다. 그는 일찍이 시벨리우스의 추천을 받아 미국에서 음악공부를 하면서 코플란드를 비롯한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작곡 스타일도 시기에 따라 많은 변화를 보이는데, 초기에는 신고전주의적인 곡을 썼으며 60년대에는 한동안 음렬주의의 영향을 받(고 창작의 위기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후 라우타바라는 1980년대에 이르러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구축한다. 그의 작품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도 이 무렵인데, 종교적인 주제의 차용 등으로 인해 당시의 작품은 신비주의적인 분위기를 띄며 그러한 점이 비슷한 시기의 아르보 패르트나 고레츠키같은 작곡가와 비교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라우타바라의 곡들은 그가 신낭만적인 노선으로 회귀하는 60년대 후반 이후에 작곡되었는데, 아무래도 이때의 곡들이 멜로디를 찾기 쉬우면서도 현대 음악 특유의 날카로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인 듯하다. 예를 들어 1969년에 발표된 피아노 협주곡 1번은 한 마디 안에서 23, 22, 22로 묶이는 괴기한 왼손 아르페지오와 함께 짐승 같은 톤 클러스터가 몰아치는 피아노의 독주로 시작된다. 흰건반 여덟 개가 포도송이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화음들은 어떻게 해도 20세기의 소리(혹은 어린 사촌이 피아노를 마구 두들기는 소리)로 들리지만 그럼에도 멜로디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이 불협화음의 세계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낭만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라우타바라의 명실상부한 대표작으로 불리는 "칸투스 아크티쿠스Cantus Arcticus(1972)"이다. '새들을 위한 협주곡'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음악은 원래는 대학의 첫 박사 수여식에서 쓰일 축전용 칸타타를 작곡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만들어졌는데, 라우타바라는 이 곡을 영 범상치 않은 형태로 완성했다. 곡은 마치 새의 지저귐, 혹은 봄의 아지랑이 같은 플루트의 서주로 시작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끝없는 목관악기들의 트레몰로 사이로 진짜 지저귐이 들리기 시작한다! 작곡가는 이 곡을 위해 북부 핀란드의 습지에서 직접 새소리를 녹음해왔고, 무지크 콩크리트의 사도들에 의해 변조되고 부서진 현대 음악의 소리를 만드는 핵심 재료로 쓰여왔던 테이프 레코더는 여기서 자연을 되살리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악기들은 새들의 울음소리를 받쳐주거나, 혹은 비슷하게 따라 하는 역할을 한다. 말 그대로 새들을 위한 협주곡인 것이다.

조용한 "멜랑콜리" 악장을 지나 "백조의 이주"라는 부제를 가진 마지막 악장에 이르면 곡은 이주를 준비하는 백조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절정으로 치닫는다. 현악이 서서히 원호를 그리며 상승하는 멜로디를 연주하는 가운데 심벌즈가 팡파르를 울리고 브라스가 울음소리를 흉내 낸다. 아마도 현대음악에서 접할 수 있는 가장 특이하고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에는 현대음악에서 으레 기대하게 되는 괴로움과 두려움 대신 자연을 형상화한 아름다움과 벅참이 가득하다. 마침내 백조들은 저 멀리로 날아가고, 울음소리가 서서히 잦아들며 곡이 끝난다.


정말 많은 사람이 떠나가는 한 해이다. 레미 킬미스터를 시작으로(정확히는 작년 12월 28일이었지만) 데이빗 보위가 있었고, 더욱 충격적인 프린스의 죽음이 있었고, 이사오 토미타의 아스라한 부고도 들렸다. 아직 올해가 반절 가량 남았는데, 이제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핀란드 작곡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8월 첫 주에는 "칸투스 아크티쿠스"를 계속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게 그 곡에서 나오는 백조들의 울음소리는 말 그대로 백조의 노래였다.



이 글을 위해 가디언의 부고 기사와 그라모폰의 칼럼을 참조하였다.

https://www.theguardian.com/music/2016/jul/28/einojuhani-rautavaara-obituaryhttp://www.gramophone.co.uk/classical-music-news/the-finnish-composer-einojuhani-rautavaara-has-d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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