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피아노를 칠 수 있다면
내 꿈은 아침의 피아노.
햇볕이 들어오고 눈이 떠지면 바로 일어나 피아노로 향한다. 잠옷 차림도 좋다. 눈 주위에 잠이 남아 있다면, 커피 한 잔을 내려도 좋다. 피아노는 동창으로 들어오는 볕을 받아 밝은 갈색으로 빛난다. 그 앞에 앉아 우선 바흐의 작품 중 연습곡 두 곡을 연주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다. 손가락을 움직이며 몸에 따뜻한 피가 돌고 마음이 맑아지면, 그래서 오늘 하루도 살 수 있겠다는 의지가 생기면, 그제야 의자에서 일어나 씻고 하루를 시작한다.
내 꿈은 아침의 피아노.
정확하게 아름다운 음표를 만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내 손에 잡히는 삶은 그렇지 못하다. 어둑한 원룸에 핸드폰 알람이 울리면 겨우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한다. 회사와 게임과 트위터와 조급함과 불안이 어젯밤의 잠을 갉아먹으면 아침 시간은 아무런 온기를 가지지 못한다. 나의 아침은 바쁘고 몸은 무거울 뿐. 손바닥만 한 원룸에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직장인에게, 피아노는 사치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포기하기엔 아쉬운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아침에 어울리는 모차르트의 생기발랄함. 봄날 아지랑이 같은 드뷔시의 화음과 브람스 Op. 118 인터메조의 갈색 아름다움. 그리고 내가 직접 손가락을 움직여 만든 소리를 이런 음악의 형태로 빚어본다는 것.
나는 피아노를 연습한다. 매일 작은 노력을 쌓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음악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서. 조금씩 모인 시간이 내 삶에 나만의 리듬을 부여하길 바라면서. 그리하여 언젠가는 피아노의 명징한 소리가 내 삶의 필수적이고 견고한 벽돌 하나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그래서 나는 오늘도 좋아하는 구절을 읽으며 출근한다. 아침의 피아노를 꿈꾸며.
“지난 80년 동안 나는 하루를 똑같은 방식으로 시작했습니다. 기계적인 일과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어떤 것이에요. 아침에 일어나면 피아노로 가서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 중 두 곡을 칩니다. 그것 말고 다른 방식으로 일과를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어요. 이것은 집에 내리는 일종의 축복 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계를 재발견하는 것이고 내가 그 세계의 일부분이라는 데서 오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파블로 카잘스,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29쪽에서 발췌.
2019년 1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