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기 있다면

6월 둘째 주의 음악, 아케이드 파이어의 "We Exist"

by 김방통

화관을 둘러쓰고 친구와 신나게 퀴어 퍼레이드를 즐긴 다음날 밤, 미국에서 전해진 소식을 들었다. 올랜도의 게이 클럽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져 5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했다. 프라이드 위크에 벌어진 일이었다. 버지니아를 뛰어넘는 역대 최악의 총기 참사라는 이야기도 들렸다. 마음이 무거워 한참을 뒤척거리다 겨우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대부분의 언론이 올랜도 참사를 보도하고 있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언론들이 강조하는 부분과 축소하는 부분은 제각각이었는데, '테러 세력과의 연관성'이 의심되는 '무슬림 이민자'가 '게이 클럽'에서 벌인 '총기 난사' 사건이니 각자의 입맛대로 끼워 맞추기가 얼마나 쉽겠는가. 뉴스피드가 이슬람과 LGBT 운동, 이민자 혐오 같은 여러 상충하는 주제로 빽빽이 들어차는 가운데 "난 언제 누구에게 살해를 당할까"라고 쓴 친구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조그만 한 줄이 비명처럼 들렸다. 가장 작았지만 가장 멀리 울려 퍼지는 소리. 마지막까지 마음에 남아있을 소리.

퍼레이드 행렬이 떠올랐다. 퀴어퍼레이드에 늦게 도착한 나와 내 친구는 퍼레이드 행렬의 끝에서 시작해 앞으로 되짚어 올라갔었다. 그 유명한 러쉬 차량에서 시작해 김보미 씨가 손을 흔들고 있는 대학생 그룹을 지났고("별로 재미가 없어!") 일본에서 오신 분들이 타고 있는 차량을 종종걸음으로 추월한 뒤 마침내 친구사이 행렬에 자리를 잡았다. 일본에서 온 트럭에서는 글로리아 게이너의 "I Will Survive"가 나왔다. 어디서는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도 나왔다. 사람들이 퀸의 노래를 따라 불렀고 아바에 맞춰 춤을 췄다. 내가 없었던 자리에서 다른 신나는 노래들과 수많은 게이 앤썸, 소수자를 위한 노래들이 나왔겠지만 올랜도 이후로 내가 일주일간 들었던 곡은 아케이드 파이어의 "We Exist"였다.


reflektor.jpg


아케이드 파이어의 네 번째 앨범 <Reflektor>는 물론 2013년의 가장 훌륭한 앨범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하였)지만 전작들에 비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는 더블 앨범이라는 철 지난 과잉자아 프로그레시브 앨범 같은 부피의 영향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전작들이 워낙에 대단해서가 주된 이유가 될 테다. 역사적 맥락이라는 것이 앨범의 평가에 덧입혀지게 마련이니까, 2000년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앨범으로 꼽히는 <Funeral>이나 인디락의 이름으로 그래미까지 수상한 <The Suburbs>를 어떻게 또 넘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인디락-잡탕-오케스트라로 시작해 거대한 사운드스케이프를 구축한 아케이드 파이어는 <Reflektor>에서는 아이티 전통 음악과 자메이카의 요소들을 끌여들인다. 혼란스럽고 지저분한 소리에 프로듀서로 제임스 머피까지 끌어들였더니 나온 결과물은 댄서블한 아트락에 가깝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노래가 "We Exist"다. 톡 쏘는 기타와 캐치한 멜로디가 신스 베이스와 디스코 리듬을 배경으로 진행되다가 스트링과 만나면서 풍성해지고 종국에는 여기에 남녀 합창이 가세한다. 점점 증폭되는 긴장감을 향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는듯한 이 결말은 가사와 만나면서 더욱 풍성한 의미를 전달한다.



아빠에게 커밍아웃한 게이 소년은 자신들을 못 본 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They walk in the room / And stare right through you / Talking like We don't exist), 제발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애원한다(Oh Daddy don't turn away / You know that I'm so scared / But will you watch me drown?). 앤드류 가필드가 트랜스젠더로 분하여 춤을 추는 뮤직비디오는 더 직접적이다. 바에서 폭력을 당하던 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내려쬐이고 어느새 댄서들이 등장한다. 꿈결과 같은 장막을 통과하면, 그는 어느새 무대 앞에 서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존재하지 않길 간절히 기도하겠지만(You're down on your knees / Begging us please / Praying that we don't exist), 그러나 우리는 존재한다(But we exist, we exist), 여기 살아있다고 말하는 윈 버틀러를 지나 주인공은 아케이드 파이어 무대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른다. 춤을 추며 관중을 둘러본다. 함성 소리와 함께 WE EXIST라는 단어가 점멸한다. 그 마지막 장면은 2014년 나왔던 뮤직비디오 중 아마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으리라.

간단히 말해서 "We Exist"는 깔끔한 길거리에 대한 곡이다. 정상을 넘는 것으로 여겨지는 그 어떤 소동과 요란함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무시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시는 누군가에 대한 가장 간단하며 직접적인 공격 방법이다.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원래부터 없던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TV에 나오지 않는다. 비만인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조롱당한다. 올랜도 총기 난사 사건을 방송하는 매체들은 '게이 클럽'이라는 단어를 빼버린다. 장애인들은 높은 버스를 타지 못한다. 이렇게 그들은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진다. 이렇게 사라지는 사람들은 고민과 비판의 여지와 함께 사회의 시선 밖으로 밀려나므로, 무시는 또한 가장 저열한 공격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존재한다. 길거리에 장애인과 살찐 사람들, 레즈비언 커플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존재한다. 퀴어퍼레이드가 그 선언의 일부이며, "We Exist" 또한 그 선언의 일부일 것이다. 제목부터 "우리가 존재한다"이지 않은가. 음악은 정치적 메시지를 감정과 함께 전달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였고, 권력의 프로파간다로 쓰인 만큼 소수자들의 훌륭한 목소리가 되어주기도 했다. 바그너와 즈다노프와 마빈 게이와 김민기를 거쳐온 지금도 이 사실은 마찬가지이고, "We Exist"가 그 훌륭한 본보기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퀴어일 것이고,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미워할 것이며, 그럼에도 모두들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자신의 장애나 외모, 성 정체성과 같은 그 어떤 이유로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한다. 그들이 편견과 혐오에 억눌리지 않고, 언제 누구에게 살해당할지 걱정하지 않고 잠에서 깨기를 바란다. 그들이라 생각해왔던 사람들이 실은 나의 일부분이고, 나와 다를 바 없는 그들과 같은 곳에서 우리는 함께 살고 있으니까. 내가 "We Exist"를 자꾸 듣게 되는 이유이다.








* 위키에 의하면 "We Exist" 뮤직비디오는 트랜스젠더 뮤지션인 로라 제인 그레이스로부터 "트랜스젠더의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뮤직비디오를 만드는데 직접 참여한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듣고 로라 제인 그레이스는 입장을 바꿨다고.


** "We Exist"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부분은 아케이드 파이어의 코첼라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공연 때 촬영된 장면인데, 관중들이 찍은 영상에서 실제 공연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뮤직 비디오 중간에 나온 네 명의 댄서 아저씨들이 중간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넷 다 춤 엄청 잘 추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염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탄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꾸 저 중에 한 분이 헤밍웨이를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Songs for Lul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