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칠, “퀀텀의 세계”
다케다 슌타로, “처음 읽는 양자컴퓨터 이야기”
3월 15일 자 어린이과학동아에는 양자컴퓨터 기획 기사를 썼다. 언젠가 쓰고 싶었지만 기약 없이 미뤄지다가 딱히 인상적인 기삿거리가 없던 참에 이 주제를 다루게 된 것이다. 어린이 독자에게 양자컴퓨터를 설명하기란 예상대로 쉽지 않은 일이었고, 아쉬운 부분도 많았지만 취재하는 과정에서 나도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2019년 구글 시카모어가 양자 우월성(양자 우위)을 달성했다고 발표한 지 3년이 지났다. 당시에는 양자컴퓨터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책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개론서만 적어도 3권이 나와 있다. 앞으로 나올 책과 양자역학의 범위에서 양자컴퓨터를 다루는 책까지 포함하면 수는 더 많아져서, 양자컴퓨터에 관해 알기 훨씬 편한 환경이 되었다. 그럼에도 많은 일간지 기사들이 오류를 담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이번 기사를 쓰면서 읽은 두 권의 책에 대해 간단히 정리한다. 둘 다 2021년에 나온 책으로, 각자의 장단점이 달라 서로 보완이 되는 독서 경험이었다.
이순칠, “퀀텀의 세계” (해나무)
“양자물리를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인터넷 강의가 양자물리에 대한 모든 내용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가르쳐주긴 하지만 결정적인 비밀 하나를 절대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비밀이란 바로 양자물리는 들어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24쪽.
- 국내 최초로 병렬 처리 양자컴퓨터를 개발한 카이스트 물리학과 이순칠 교수의 저서. 양자컴퓨터는 물론 양자역학 전반을 조망하고 있다. 물질의 이중성, 불확정성 원리는 물론 EPR, 양자암호통신까지 양자 역학과 파생 기술에 대해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어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에 좋다. 나아가 각각의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그로버의 데이터 검색 알고리즘이나 양자암호통신의 원리 자체를 지나가는 말이라도 다뤄준 저서는 이 책이 거의 유일하다. 자세하고 친절하다.
다르게 생각하면, 내용이 자세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뜻. 양자컴퓨터가 뭔지 급히 알아야 하는 사람(과학기자라든가, 펀드매니저라든가)은 3부와 5부를 발췌독해도 되겠다. 물론 나는 다 읽었다.
- 국내 저자의 저서로, 읽는 맛이 번역서와는 비할 바가 없다. 거기에 저자 특유의 유머가 곁들여져 중간중간 쿡쿡 웃게 된다. 제목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물론 그 유머는 아재-할아버지 유머에 가깝다. 나는 분명 경고했다).
-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단연 맨 처음에 나오는 프롤로그. 근미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짧은 이야기인데 정말 ‘전율’의 도입부였음…. 교수님이 SF도 엄청 쓰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한 권의 책에서는 한 가지 주제에만 집중하셨어도 좋을 것 같다. 중간중간 ‘물리학자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소챕터도 있는데, 재미는 있으나 전체적으로 책의 내용을 산만하게 만든다는 생각도 든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읽지 않아도 문제없습니다.
- 여하튼 양자역학과 양자컴퓨터라니 상당히 어렵고 마이너한 주제 같은데, 이런 책이 잘 나갈까? 출판사 지인의 말에 따르면 테크쪽 투자자들의 수요가 있다고 한다. 미처 생각지 못한 타겟인데 그럴듯하군.
다케다 슌타로/전종훈, “처음 읽는 양자컴퓨터 이야기” (플루토)
“양자컴퓨터는 0과 1의 중첩인 양자비트 정보를 어떤 물리적 수단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물리적으로 변화시켜서 계산을 처리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양자는 전부 양자비트의 후보가 될 수 있다. 양자컴퓨터를 만든다면, 이론상으로는 어떤 양자를 선택해도 상관없다. 참고로 나는 광자를 좋아한다.” 169쪽(왜 이렇게 말하냐면, 저자가 광자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도쿄대에서 양자컴퓨터 개발을 연구 중인 저자가 쓴 책. 양자역학보다는 양자컴퓨터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볼륨도 상대적으로 얇은 편(250쪽 이하)이라 바쁜 사람들에게 더 맞겠다. 양자컴퓨터에 관한 오해를 풀면서 시작하는 1장부터 자신의 연구 현장의 모습은 어떤지 다루는 6장까지 챕터 구성이 깔끔하게 잘되어있다. 그렇다고 해서 양자역학 설명이 없는 건 아니고, 2장에 나와 있음.
-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일러스트. 기존 컴퓨터와 양자컴퓨터를 비교해서 설명하는 일러스트가 많이 실려있는데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일러스트의 양이 많을 뿐 아니라 하나하나 공들여 만들었음이 느껴짐.
- 문체와 번역은 평이하다.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