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방통 Nov 14. 2021

수학 천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로버트 카니겔, "수학이 나를 불렀다"


인도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에 관한 이야기 중에는 '1729' 일화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라마누잔이 치료받던 병원을 찾아온 수학자 하디가 자신이 타고 온 택시 번호가 1729가 '다소 따분한 숫자'라고 말하자, 라마누잔이 "흥미로운 숫자다. 두 방법으로 두 세제곱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작은 숫자"라고 답했다는 이야기(12^3+1^3, 10^3+9^3)
이 일화는 '인도에서 온 신비로운 수학자'의 천재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언급되곤 하는데, 실제 맥락은 조금 다르다. 라마누잔의 전기인 <수학이 나를 불렀다The Man Who Knew Infinity>를 쓴 로버트 카니겔은 "뜻밖의 통찰력은 아니었다. 몇 해 전 그는 이 사소한 산술을 알게 되었고 노트에 기록해 둔 것이다. 순자에 친밀한 것이 그의 습성이었기에 그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라 쓰고 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여전히 수많은 곳에서 이 이야기를 꾸준히 확대 생산한다. 수학에 대한 그의 애정과 탐구심을 볼 수 있는 일화가 많은 곳에서 단순히 그의 천재성에 양념을 치기 위한 단편적 용도로 쓰인다는 것이 아쉽다. 라마누잔뿐만 아니다. 다른 연구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러 매체에서 어떻게 전승되는지(그리고 변주되는지) 지켜본다면, 과학계의 위대한 천재에 관한 신화가 어떻게 구성되고 가공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수학이 나를 불렀다>는 생각보다 읽을 만했다. 혼자 추측했던 것처럼 책 전체가 한 천재에 대한 신화 만들기로 가득 차 있던 것도 아니었고, 여러 정치사회적 맥락을 다루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특히 사후 라마누잔이 어떻게 인도인의 민족적 자긍심으로 탈바꿈하는지 맥락에 대해서 서술한 부분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라마누잔의 연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 자체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아마도 작가 본인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고로, 일반인과 라마누잔의 접점에 대해 쓴 마지막 장의 한 문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는 바로 그 지점.

* 이 책은 최근에 동명의 영화로 나왔는데, 평이 그리 좋지많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라마누잔의 연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육받지 않은 언어로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겨우 몇 사람, 전 세계에서  수백 명, 아마 수천 명 정도의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에게만 직접적인 기쁨을 주었다. 나머지는 방관자로 앉아 있다가 전문가들의 설명에  갈채를 보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막연하고 비유적이며 필연적으로 부정확한 그의 연구를 어렴풋이 본 것에 의존해야 한다."  376쪽.


함께 읽어볼 만한 글 :

호라이즌에는 최윤서 교수님이 쓴 '라마누잔의 수학'이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자연수의 분할과 원 방법, 초기하 급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고 PDF로도 받을 수 있다(절대 쉽지 않다). 반다나 싱의 SF 작품집인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에는 라마누잔에서 영향을 받은 중편 "무한"이 포함되어 있다. 수학을 깊게 파고들지는 않지만 남인도의 정경, 이슬람교와 힌두교 사이의 분쟁과 이를 이겨내는 우정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구의 깊은 역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