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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우 Oct 08. 2019

서른이 돼도 안 괜찮아요.(1)

파란만장했던 회사 생활, 31살... 퇴사하겠습니다.

20살 때는 주변 눈치 보느라 망해버린 수능으로 꾸역꾸역 맞는 대학 들어가 대학 생활을 했고,

21살 때는 주변 눈치 신경 쓰여 더 좋은 대학에 가보려고 편입 준비도 했었다,

22살 때는 취업에 도움되겠다 싶어서 복수전공을 선택했고

23살 때는 뒤늦게 선택한 복수전공에 졸업 늦어질까 풀로 학점을 당겨 들었다.

25살, 가을학기 졸업이 뭐 자랑이라고 주변 눈치, 모르는 사람 눈치 봐가며 졸업하기 싫어서 졸업식도 안 갔다.

26살, 취업 못해 백수 소리 듣는 것도, 백수라고 안쓰러워하는 주변 사람들 눈치 보는게 싫어, 대강 취업을 했다.

28살, 억지로 들어간 회사가 안 맞아 결국 상처란 상처 다 받고 도망치듯 퇴사를 했다.

29살, 운 좋게 30이 넘어가기 전, 내가 원하는 포지션과 비슷~한 포지션으로 입사를 했다.


여자보다 남자, 사무직 보단 영업직 위주로 승진이 돌아가는 희한한 승진 체계와 2년의 연봉 동결을 꿋꿋이 참아낸 직원들을 모아놓고 니들이 잘했으면 동결이 됐겠냐며 욕하던 대표.

이사도 대표도 승인한 디자인을 지나가다가 힐끗 보고 대표님 귀에다 ‘좀 별로다’란 말 한마디로 모든 디자인을 엎어버리는 실장, 포토샵 한 번 열어본 적 없는 신입사원에게 도서 지원된다며 책 한 권 던져주고 교재 표지 디자인, 배너, 각 종 행사 물품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한 번에 맡기는 대표의 대범함을 꿋꿋이 참아냈었다. 그렇게 3년을 버텼다.


그동안 같이 일하던 똑똑하고 능력 좋은 동기는 좋은 회사로 이직하고, 마음 좋고 참을성 좋던 차장, 부장, 과장들은 목이 날아갔고, 회사 안 쓰는 노트북 골라다 미국 유학 간 아들에게 택배 붙여라, 온라인 쇼핑에서 산 물건 반품해라, 손님 왔으니 커피 타라, 회사 유리문 지문 닦아라, 남자 화장실 핸드타올 떨어졌으니 가서 채워놔라(여자 과장임), 과자 사달라 등등 온갖 대표의 심부름을 하던 경영지원팀 과장은 탈모가 왔다. 그리고 31살의 봄, 난 대표에게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며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퇴사한 뒤, 안좋은 몸 추스려 가며 이직 준비하던 어느 날 문득 내가 31살이나 먹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내년이면 32살인데, 나 취업 할 수 있는 걸까?

어떤 드라마 속의 나오는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라는 말, 드라마 속 주인공은 그 말이 위안이 된다 했지만 되려 난 조연의 말에 공감한다.

‘나이 먹으면 괜찮아져요? 우울해서 힘빠져.’ 그런데 우습게도 현실은 우울에서 끝나지 않더라.

‘나이 먹는다고 안괜찮아져요,’

벌써 31살, 곧 32살. 퇴사했고, 백수다. 경력도 변변치 않은 32살이 나이먹고 살아보니 일어나는 나이와 별개 없이 여전히 힘든 세상과

그리고 꾸역꾸역 살면서 어떻게든 좋은 점을 찾아보려는 32살의 아둥바둥 사는 체험기를 공유해보려고 한다.



1.


내가 원하는 포지션과 딱 떨어지진 않지만 나름 비슷~한 포지션에 입사한 지 2년째,  나보다 한 살 어린 남자 영업사원이 신입으로 들어왔다. 대표는 지방에 사무실을 차리고 거기 첫 영업사원으로 그 직원을 보냈다. 팀장도 없고, 아무도 없이 그 직원은 혼자 덜렁 그 지방 사무실에 있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대표의 대범한 인사에 쌍욕을 내뱉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대표도, 상사도, 다른 직원 마저도,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 놀 그 사원을 부러워했다. 모두가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그 사무실에서 일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며 부러워했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어디서 영업 잘하는 팀장을 데려와 그 직원 위에 앉혔다. 어디서 데려왔는지 진짜 일을 잘한 팀장은 그 해 꽤 좋은 성적을 거둬냈다. 그리고 입사한 지 1년이 넘어도 여전히 엑셀도 못 다루는 신입사원은 대리로 승진을 했다. 그날 대표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 회사는 ‘능력 위주’로 갑니다, 능력이 없으면 승진 못해요. 능력이 있으면? 이렇게 바로 승진하는 겁니다!”  


그 날 나는 경영지원팀 과장과 술을 마셨다.


“과장님, 난 팀이 달라서 모르겠는데, 걔가 그렇게 일을 잘해요? 개국공신 과장님 제치고, 동기 나가고 상사 나가서 모든 일을 혼자 떠맡고 있는 나 제칠정도로? 연봉 동결 참고, 말도 안 되는 잡무에, 주말 업무까지 해가며 일 해치우는 우리보다?”


“야, 걔 능력 없는 거? 회사에 모르는 사람 있을 것 같냐? 엑셀도 못 다룬다. 엑셀도 못 다뤄. 내가 다해주고, 걔네 팀장이 다 해서 떠다 먹여준 거지. 남자인 데다 영업이니까 승진시켜준 거 아니겠냐. 영업이 원래 좀 직급 높게 쳐주잖아.”


“아니 과장님, 그러면 도대체 능력 없으면 승진 안 시켜준다는 대표님 말은 뭐야? 그런 말이라도 하지 말던가. 난 뭐 그럼 능력 없어서 회사에 붕어 똥처럼 붙어 있는 애야? 우리가 능력이 없어서 2주만에 대형 세미나 준비했어? 직원들 다 튀어나가서 작년에 직원 4명이 붙어서 했던 이벤트 준비를 올해 알바도 없이 나 혼자 진행하게 했어?”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뭐... 어쩌겠냐, 돈 많이 벌어오는 팀이 최고인 거야. 대표님도 영업맨이었잖아. 영업만 이뻐 보이는 거지.”


과장님과 한탄을 하며 술을 잔뜩 마신 그 다음 날, 아름다운 불금의 날, 내가 있는 팀은 공중분해되었다. 인사이동이지 공중분해나 다름 없었다. 영업에만 모든 걸 치중하겠다는 대표의 경영 방침이었다.

그리고 난 경영지원팀으로 이동하라는 제의를 받았다. 내 커리어가 한방에 꼬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한 달 뒤 난 퇴사 절차를 밟았다.


31살, 늘어난 건 나이뿐이고, 회사에서 얻어온 건 몇 푼 안 되는 퇴직금과 극악스러운 고질병 뿐이었다.


30살 생일, 친구들 앞에서 “20대엔 고생만 했으니까 30대엔 꽃길만 걷자!”라고 외쳤던 내가 한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마치 대학만 가면 세상이 달라질 것처럼, 대학만 가면 세상이 전부 쉬워질 것처럼 느꼈던 10대의 나처럼, 20대에 나도 30살이 되면 뭐가 바뀌지 않을까라는 희망이 있었다. 세상이 쉬워질 것 같았다. 더 어른스럽고 유연해져서 모든 위기에 멋지게 대응하는 프로가 될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현실은 31살 백수일 뿐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르쳐 줄 사수도, 회사 정치에서 우리를 보호해줄 중간 관리자도 없어 꾸역꾸역 버티던 1년 차 때 일이다.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때려치우고 나가는 타팀 차장의 송별회에 참석했었다. 임원진들 끼리만 무르익은 분위기, 직원들은 속타는 마음으로 고기만 집어먹는 애매한 분위기에 빠질 수가 없어 집에 늦는다 연락을 하려고 잠깐 밖으로 나왔다. 가게 밖에 있는 벤치에는 이사님과 오늘의 주인공인 차장님 두 분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차장님은 이사님을 보며 이런 말을 했다. 단, 한 번만이라도 ‘힘들지? 고생했다, 잘했다.’ 이런 말을 들었다면 더 버텼을 거라고...

그때 이사님이 차장을 보며 그런 말을 했다.


“니가 했던 일이 말도 안 되게 힘든 거 알지. 어려운 것도 알아. 맨땅에 헤딩하는 일이지. 그런데 내가 너한테 위로해준다고 해서 안 되는 일이 갑자기 잘되진 않잖아. 동기부여는 스스로 하는 거지 남이 해주는 게 아니다.”


그 날 얼음처럼 차갑던 차장님은 이사님을 옆에 두고 훌쩍훌쩍 울었다. 한 가정을 책임지는 40대 중년 남자의 눈물을 그때 처음 보았다.


차장님은 다른 회사에 더 높은 직급으로 스카우트되면서 나간 거였다. 모두에게 축하받았던 사람이 이사님의 한마디에 눈물을 보였다.

저 눈물을 알 것 같았다. 서운함... 그동안의 굴욕들... 술도 마셨겠다 말랑말랑해진 가슴에 끝까지 위로 한마디 안해주는 이사님의 단호함이 비수처럼 눈물샘을 자극한 것이겠지. 대표님 성질에 전직원 회의에서 대놓고 매번 모욕을 받았으니 일도 일이지만 사람 때문에 고생했을 차장님을 보면서 참 착찹했었는데... 차장님처럼 나이 마흔이 넘어도 서러운 일이 한가득인데... 난 뭘 믿고 30이 되면 세상이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서른이 되고, 마흔이 돼도 사는 건 계속 어렵고 힘들 것이고, 나이는 계속 먹겠지.

뭘 기대했냐.


서른이 넘은 서른 하나가 돼서야 새삼 나이의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서른이 넘어도 여전히 나는 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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