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덕준 Feb 12. 2017

모두를 위한 금융효율성(4)

시민투 연재 9

Photo: Finance Magnates


미국의 핀테크 기업 민트(Mint)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개인의 금융 거래정보를 모으고 사용자의 기준으로 분류함으로써 예산과 소비 관리 등 개인의 금융생활을 편하고 효율적으로 만든다. 2007년 9월에 설립되어 2009년 11월에 $170 million 에 인튜잇(Intuit)[1]에 인수되었으니 벼락 성공 (overnight success) 케이스이다. 민트 얘기로 시작하는 이번 글의 주제는 ‘더 나은 금융효율성을 위한 규제정책’이다. 


규제와 혁신은 서로 상반되는가.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좋은 규제는 어떤 토양과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가. 사실 이것은 금융섹터만이 아니라 어떠한 산업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는 질문들이다. 정보통신기술이 이끄는 혁신의 바람은 금융뿐 아니라 교육, 의료, 교통, 에너지 등 실생활과 밀접한 모든 영역으로 불어오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전통적으로 기술 친화력이 높지 않고 규제의 벽이 높은 영역이다. 이 분야에서 규제와의 충돌은 모바일 앱을 만들거나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다가온다. 의료서비스에 유전자 분석과 인공지능이 적용되고, 도로에 무인자동차가 다니고, 드론이 실생활에 등장하게  되면 이전에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윤리와 책임의 가치판단 문제들이 따라온다. 


과거에 없던 산업이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규제에 대한 정태적인 관점은 곤란하다. 그렇다면 규제의 본질적인 가치는 무엇이고 시대에 맞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규제 정책의 효율성은 더 나은 시장의 효율성을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겠는가. 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규제는 누굴를 위해 왜 하는가이다. 그리고 이 규제를 만드는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는 없을까에 대한 고민이 따라온다. 


다시 민트 얘기로 돌아가자. 2015년 11월, 뱅크 오브 아메리카, 제이 피 모건 체이스, 웰스파고 등 미국 3대 은행은 민트가 은행 서버에 보관된 고객의 계좌정보를 긁어가는 것(scraping)을 금지했다. 고객 계좌 정보의 안정성과 서버의 과부하 등을 이유로 내걸었다. 민트는 고객의 자기 정보 이용 권한을 제한하는 행위라며 반발했다. 민트와 미국 대형 은행 사이에 이러한 싸움이 1년 이상 계속되다가 2017년 1월 말 제이 피 모건 체이스 은행이, 이어서 2월 초에는 웰스 파고 은행이 민트(i.e., 인튜잇)와 고객 정보를 공유한다는 협약을 맺음으로써 마무리되었다. 합리적인 타협이었고 민트에게는 중요한 성과였다. 합의된 방법은 아래와 같다.

 

인튜잇 고객들이 민트(Mint), 퀵북(QuckBooks) 또는 터보택스(TurboTax) 등에 로그인하여 웰스파고 계좌를 연결하고자 할 때, 웰스파고의 보안 서버로 연결된다. 웰스 파고로 들어온 후, 고객은 인튜잇과 공유할 자신의 데이터를 승인한다. 인튜잇 뿐 아니라 다른 핀테크 회사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웰스파고의 보안 서버로 제공되는 플랫폼을 이용할 수 있다. [2]


핀테크 회사들이 은행의 고객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향상되면, 저축과 소비, 예산관리, 세금관리, 신용관리, 투자활동 등 소비자와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서비스에 대하여 다양하고 혁신적인 서비스가 촉진될 것이다. 미국 핀테크 업체들의 은행 고객 정보 접근성은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2008-9년 금융위기의 교훈으로 제정된 도드 프랭크 금융개혁법과 이에 의해 설립된 소비자 금융 보호국(CFPB)의 리처드 코드래이(Richard Cordray) 국장의 강단 있는 지원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트를 비롯한 핀테크 회사와 대형 은행 사이의 고객정보 접근성에 대한 다툼이 한창이던 2016년 10월 , 코드레이 국장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Money 20/20 콘퍼런스에 참석하여 아래와 같이 연설했다. 이를 찾아 읽는 순간 숨겨진 보화를 찾은 듯 기쁨이 몰려왔다. 새로운 금융감독기관의 리더십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중간 일부와 마지막 두어 단락을 인용하고 번역해본다. (그의 스피치 전문은 CFPB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We feel an affinity for those seeking to harness new technologies to better serve customers since we ourselves are a new agency. We are committed to being data-driven, and we have adopted innovative approaches to fulfill our mission. For example, we have handled over one million consumer complaints to date, which we make publicly available and accessible through an API. Users have the abilityto search, sort, and filter data based on specific criteria or tags, and candownload data in their desired formats.


우리는(소비자금융 보호국, CFPB는) 우리 자신이 새로운 기관이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더 나은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활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혁신적인 입장을 취해 왔으며, 특히 데이터의 활용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금까지 백만 명 이상의 금융 소비자 민원을 처리했고, 그 데이터를 API를 통해 공개하고 누구든지 액세스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용자는 데이터를 자신들의 기준 또는 태그 하여 데이터를 정렬, 분류, 검색할 수 있고 자신의 원하는 형식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중략)


We recognize that such access can raise various issues, but we are gravely concerned by reports that some financial institutions are looking for ways to limit, or even shutoff, access to financial data rather than exploring ways to make sure that suchaccess, once granted, is safe and secure.


우리는 (핀테크 회사들이)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고객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인식하지만, 어떤 금융 기관들은 (핀테크 회사들이) 안전하게 데이터 접근성을 허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보다는 접근성을 제한하거나 아예 차단하려고 한다는 보고를 접하고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Let me state the matter as clearly as I can here: We believe consumers should be able to access this information and give their permission for third-party companies to access this information as well. In the Dodd-Frank Act, Congress likewise stated that, subject to regulations issued by the Bureau, consumers should be able to access information maintained by a financial provider about the consumer’s use oftheir products. Congress also specified that the information “shall bemade available in an electronic form usable by consumers.” We look forwardto productive engagement with all stakeholders on this topic to find solutions that put consumer interests first.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최대한 명확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금융소비자가 자신의 정보에 접근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타사에게도 접근성을 허용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드 - 프랭크 법안을 의결한 의회도 같은 시각을 갖고 있으며, 소비자 금융 보호국의 규정으로도 뒤받침하고 있습니다. 금융 소비자들은 금융 기관들이 갖고 있는 금융상품의 사용에 대한 정보에 대하여 마땅히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회는 또한 정보는 "소비자가 사용할 수 있는 전자(디지털) 형태로 제공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비자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이 주제에 대한 모든 이해 관계자들과의 생산적인 참여를 기대합니다.


***

The Consumer Bureau is still a new agency with our sights setfirmly on the future. We are not content to sit passively by as mere spectators watching these technologies develop. Instead, we intend to move forward alongside the industry, keeping an eye out to protect consumers even as we encourage innovative providers to put consumers first and find ways to make their lives better. Likewise, most FinTech companies understand that your long-term interests depend on providing great value and service toconsumers. In these ways, our deepest interests are closely aligned. It is within our reach here to change the world and make it vastly better for consumers. Let’s do that together. Thank you.


금융 소비자 보호국은 미래지향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고,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새로운 기관입니다. 우리는 이 분야에서 기술이 발전하는 것을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소비자를 보호하며 업계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혁신을 만드는 업체들이 소비자를 맨 앞자리에 두고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격려합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핀테크 기업들의 장기적인 이해는 소비자에게 큰 가치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의 이해관계는 밀접하게 일치합니다. 소비자의 삶을 현저히 개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 우리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함께 만들어 봅시다. 고맙습니다.




미국 소비자금융 보호국 CFPB은 금융기관의 불공정 행위에 대하여 대규모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감독기관이다. 소비자금융 보호국의 금융기관에 대한 처벌은  대형 은행이라고 봐주는 법이 없다.  불공정 금융 행위에 대한 과징금을 뒤집어보면 그 피해를 당한 소비자에 대하여는 빚의 탕감이요 사회 정의의 실현이다. 혁신을 만드는 벤처 기업에게도 소비자 보호라는 기준은 똑같이 적용된다. 하지만 엄중한 벌칙만이 금융의 불공정성을 제거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어디까지나 혁신에 있다. 이는 새로운 참여자들이 마음 놓고 들어올 수 있도록 격려하고 막혀 있는 부분을 뚫어줄 때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더 나은 규제로 나아가는 길이다. 


혁신은 상품과 서비스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규제 하나를 만드는 것도 대단한 혁신이 될 수 있다. 사심에 흔들리지 않고 좋은 규제를 만들 수 있는 공무원은 성공한 기업가에 못지않게 훌륭한 혁신가이다. 기업가는 제품과 서비스를 혁신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한 분야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는 규제의 혁신이 필수적이다. 이런 사명에 서로 공감할 때, 규제와 혁신은 긴장 속에서도 함께 일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나쁜 규제도 소비자 보호를 내세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시장 지배자의 이해가 반영되는 경우가 있다. 심한 경우는 규제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뇌물과 전관예우 관행으로 속살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전체 효용을 증대하기 위해 소수는 배제하고 희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공리주의적 사고로 자주 합리화한다. 이러한 규제는 단기적인 성과를 추구한다. 


좋은 규제는 현상 유지가 아니라 시장에서 끊임없이 혁신이 추구되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규제 공무원이 자신의 사적인 이해를 혼합하지 않고 전적으로 소비자와 사회의 시각에서 룰을 세팅하는 것이다. 이러한 규제는 금융 소비자에 대한 보호와 금융 소외자에 대한 포용을 중시하고 장기적인 효율성을 추구한다.


미국 소비자금융 보호국(CFPB)은 금융서비스는 모든 소비자에게 유용해야 한다는 사명을 추구하고, 금융 소외자의 포용과 소비자 보호라는 철학 아래 기술혁신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다. CFPB 가 2012년에 (설립 후 그 이듬해) 시작한 프로젝트 캐털리스트(Project Catalyst)는 바로 이러한 관점의 결정체이다. CFPB는 금융소비자들이 수입과 지출의 변동성을 극복하고 고금리의 단기 대출을 줄이고 신용관리와 저축을 더 용이하게 하는 소비자 금융의 기술적인 혁신에 관심이 많다. 이러한 혁신을 만드는 수백 개의 업체들을 만나 서로 대화하고 인사이트를 얻는다. 이를 “오피스 아워 Office Hours”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는데, 규제 당국이 멘토가 되어 기업가를 조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가들로부터 듣고 혁신을 고무하는 입장이다. 


프로젝트 캐털리스트의 두 번째 중요한 내용은 “비 조치 의견서, No Action Letter”이다. 이는 핀테크 기업의 혁신적인 금융 상품이나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이점이 있고 위험을 줄여주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지게 되는 경우, 이 신규 상품이나 서비스에 적용될 규제의 불투명을 없애주는 것이다. 


창업자들이 어떤 새로운 서비스를 세상에 내어 놓을 때 규제 당국에 사전 질의하면 대답을 명확히 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규제의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혁신 창업가들이 ‘교도소 담장을 걷는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하도록 하는 사회는 제 발등을 찍는 것과 같다. 혁신 스타트업에 대한 법적 불안정성을 제거해주고 그 혁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 그토록 많은 전시적인 지원보다 더 낫다.


세 번째 내용은 서면 위주의 소비자 공시 및 동의 절차를 디지털이나 비대면으로 시도할 수 있도록 일정 정도 허락해주는  Trial Disclosure Waiver 정책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핀테크 기업들의 규제 관련 리스크를 완화해주고 시간과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것들이다.


CFPB는 프로젝트 캐털리스트가 소비자 금융 혁신을 매우 효과적으로 이끄는 촉매가 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2016년 10월 보고서(ProjectCatalyst Report: Promoting consumer-friendly innovation)를 출간했다. 금융 규제당국이 소비자 보호와 금융산업의 효율성, 그리고 핀테크를 중심으로 한 금융의 혁신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자신감이다. 이것은 미국만 가능한 얘기일까.




미국 CFPB 에 해당하는 영국의 금융 규제기관은 FCA(FinancialConduct Authority)이다. CFPB보다 조금 늦게 2013년 4월에 설립되었다. FCA 의 목표는 금융시장이 소비자들에게 공정하게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금융 시장의 공정한 경쟁 유지를 매우 강조한다. CFPB와 마찬가지로 FCA도 금융기관의 불공정 관행에 대하여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한다. (모두를 위한 금융효율성 시리즈 첫 번째 글에서 FCA 의 과징금 부과 예시를 들었다)  이것도 물론 건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것은 소비자의 보호와 이익으로 수렴한다. 


(자료: FCA 홈페이지)


FCA는 효과적인 경쟁의 이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며, 그 차원에서 핀테크 기업의 진입을 적극적으로 도운다. 가장 효과적인 규제란 공정한 경쟁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FCA의 경쟁촉진 정책 중에서  Innovation Hub은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초기단계부터 관련 규제 환경을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필요한 승인과정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존의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소비자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기존의 규제를 새로운 혁신에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Innovation Hub은 지금까지 200개의 혁신 기업을 도와서 20개 기업이 승인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프로그램은 Regulatory Sandbox(규제 샌드박스)이다. 이는 핀테크 기업들이 혁신적인 상품이나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과 판매 메커니즘을 실제 환경에서 테스트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1기 접수는 2016년 7월에 마감되어 현재 18개 기업이 시장 테스트를 하고 있다. (2기 접수는 현재 선정을 완료하고 기업에 개별 접촉하는 단계로 보인다.) FCA가 승인해 준 핀테크 회사들을 보면, 가상통화와 블록체인을 활용하여 해외 송금하는 BitX 나 Epiphyte, 외환의 수요와 공급을 효율적으로 찾아주는 방식으로 외환 송금을 저렴하게 하는 Transferwise, 개인의 금융활동을 통합하여 관리하게 해주는 Bud, 여러 대출 상품을 특징을 비교하고 부채 솔류션을 제공하는 Citizens Advice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금융규제 당국이 스타트업 기술혁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금융산업의 효율적인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의 삶을 개선하려는 것은 영국 FCA나 미국 CFPB나 마찬가지이다. 

 

(자료: FCA 홈페이지)


우리나라에서는 금융위원회에 의해 우수한 핀테크 회사 중의 하나로 선정된 해외 송금 회사 센트비가 기획재정부로부터는 불법이라는 유권해석을 받았다. 비슷한 솔류션을 개발한 영국의 핀테크 회사는 비 조치 의견서를 받고 감독 기관의 지원 아래 당당하게 제품을 시장에 내어 놓았는데, 우리나라 창업가는 여전히 교도소 담벼락을 걷고 있는 형국이니, 어찌 통탄할 노릇이 아닌가. 센트비의 주요 고객이 필리핀 이주 노동자여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가. 2017년도 $600 billion 규모로 예상되는 전 세계 해외 송금(remittance) 시장이 너무 작아서 그런가.  


영국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벤치마킹하는 국가들이 늘어가고 있다. 홍콩은 작년 9월에 핀테크 기술을 촉진하기 위하여 규제 샌드박스 제도 도입을 발표했으며, 싱가포르 금융청 (TheMonetary Authority of Singapore) 은 작년 11월 규제 샌드박스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으며, 호주는 작년 12월에 도입을 발표했다. 규제환경에 안주하던 우리나라 금융산업도 최근 1-2년 사이 모바일 결제, 송금, P2P금융, 크라우드 펀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핀테크 산업이 올라오고 있다. 고무적 이게도 핀테크 창업가들과 스타트업 생태계의 목소리에 금융당국도 호응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와 비슷한 의미로 보이는 금융규제 테스트베드 제도를 도입하고 비 조치 의견서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무엇이 과연 중요한가. 알파고 나오면서 AI, 포켓몬 유행하면서 AR,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이다 하는 식으로 발표되는 정부의 투자 정책은 시류에 휩싸이는 듯하다. 핀테크도 마찬가지이다. 핀테크는 단순히 금융+디지털 기술을 넘어서는 의미이다. 핀테크는 금융에 대한 본질과 참여방식을 변화시키고, 금융이 중심이 되어가는 사회에서 시민들이 공유할 룰을 새로 찾는 것과 관련된다. 기술의 빠른 발전 속에서도 현기증을 느끼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문제를 천착하는 성실성과 인문학적 통찰이 요구된다. 외국의 트렌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에 적용하는 스스로의 철학과 실행력이 중요하다. 금융 산업의 비 조치 의견서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1년에 도입한 제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거의 유명무실하였지 않았는가. 좋다고 하는 제도는 가장 먼저 도입하지만 정작 핀테크 벤처가 만들어내는 혁신적인 서비스에 활용하여 숨통을 틔어줄 생각은 왜 스스로 못했을까.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짓누르는 사례는 너무 많다. 더치트는 2006년 1월 개설한 국내 최초의 사기 피해 정보공유 사이트로서, 하루에 수백 개, 지금까지 누적 99만이 넘는 사기 거래를 막고 있다. [3] 사이버 경찰의 대부분이 사용하여 사기꾼도 잡아내고 그래서 더치트에게 포상도 했었는데, 갑자기 이 모델을 카피하여 ‘사이버캅’이라는 서비스를 만들고 오히려 더치트를 위법으로 몰아갔다. 스마트 정부 정책이라는 과욕이 실효성 없이 비용을 낭비하고 자율적인 혁신을 짓누르는 사례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런 것을 바로 잡는 것이 빠진 핀테크 육성 정책은 씁쓸하다.

 

피상적으로 외국의 핀테크 열풍과 지원정책을 따라가다 보면 왜 CFPB 나 FCA 같은 금융규제 당국이 앞에 있는지 선뜻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금융 규제는 금융의 본질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어야 한다. 금융의 사명은 소비자들이 경제생활에서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도록 도우는(empowering) 효율적인 수단이 되는 것이다. 금융은 자산가나 금융기관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과 소비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금융 소비자에 대한 보호, 금융 소외자에 대한 포용 그리고 금융의 효율성, 이 세 가지는 서로 맞물려 있다. 금융 규제란 이 목표들을 함께 추구해야 하는 것이기에 예술에 가까운 혁신적인 행위이다. 한 산업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창업가의 몫이 있고 규제자의 몫이 있다.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1] 개인과 중소사업자를 위한 회계, 세무, 인건비 관리 등을 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회사.

[2] The Wall Street Journal, Emily Glazer, Feb.3, 2017 6:03 a.m. ET

[3] 디쓰리쥬빌리는 더치트의 투자자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