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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준 Feb 05. 2017


모두를 위한 금융효율성(3)

시민투 연재 8

(Photo from CNN Money)


부채의 사회성


케인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If you owe your bank a hundred pounds, youhave a problem. But if you owe a million, it has." 

(당신이 은행에 1천 파운드를 빚지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문제요. 만약 당신이 1백만 파운드를 빚지고 있다면, 그것은 그 은행의 문제이다.)[1]


일부 사람에 대한 부채는 채무자의 문제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과도한 부채는 채권자(금융기관과 사회)의 문제가 된다. 이 케인즈의 말은 과다채무자에게 당장 몇 푼이라도 상환하라고 압력을 행사하는 것보다 채무자의 상환능력 개선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결과적으로 은행에 이익이 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누가 처음 그 채무를 요청했는가를 따지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물론 현실은 이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금융 제공자는 갑이고 금융소비자는 을이 되는 곳에서, 금융은 스스로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었다. 금융소외자에 대한 양산과 과다한 부채에 대한 무책임, 불완전 판매와 부당한 관행에 대한 금융 제공자에 대한 처벌은 약하고, 어찌 되었던 돈을 빌린 사람들이 늘 죄인이다. 금융이 거인이 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민은 왜소하다.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두 부류의 사람을 불러야 할 것 같다. 첫째는, 금융의 통치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신들과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싸우는 시민들이요, 둘째는 난공불락 금융 성벽을 파괴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진 혁신 기업가들을 마구 불러내는 것이다.


금융은 미래 소득을 당겨서 현재 소비하게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금융은 소비성 지출이 아니라 주거 및 교육 등 미래 가치를 위한 투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금융은 개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사회의 안정과 생산력 확충에 기여한다. 그러기에 금융부채는 개인의 선택이면서 사회적으로 요구되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가계금융시스템은 그동안 공급자 위주로 발달되어왔고 상품개발과 서비스의 질은 자산과 소득 상위층에 집중되었다. 최근 P2P 회사들이 등장하여 중금리 시장을 중심으로 혁신하기 전까지는 상당히 그랬다. 전통적인 금융기관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에 대하여 효율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고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느끼는 접근 제한성과 불공정한 관행에 대하여 민감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쓴 규칙과 우월한 위치에서 아쉬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금융의 시민 권리장전

 

2008-9년 금융위기를 겪은 오바마 정부는 월스트리로 대표되는 금융산업의 부당한 횡포를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도드-프랭크 법안 (The 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을 제정하고, 이에 따라 아래와 같은 목적을 지닌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이 2011년 설립되었다.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집을 사든 신용카드를 선택하든, 해외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을 하든, 다른 소비자 금융상품을 이용하든, 금융상품과 서비스가 누구에게나 유용한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 신설된 연방정부기관입니다.” (출처: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 한국어 웹페이지)


매사추세츠 상원 의원 엘리자베스 워렌이 설립을 주도한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금융분야에 시민 권리장전을 수립하는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연방정부의 소비자 금융법규를 실제로 이행하는 권한을 갖고 있으며, 이를 위한 규칙을 제정하고 명령과 권고 등을 한다. 소비자금융보호국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에서 승인하며, 예산은 국회나 행정부에서 할당받는 것이 아니라 Fed 로부터 받는다. 마치 중앙은행처럼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설계되었다. 소비자금융보호국이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월스트리트 금융기관에게 적지 않는 견제가 된다. 작년에 웰스파고 은행은 직원들이 고객의 동의를 받지 않고 신규 계좌를 오픈하거나 신용카드를 만드는 방식으로 불법을 저지는 것에 대한 대가로 $185 million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그중에서 $100 million은 소비자금융보호국이 부과한 것이었다. 웰스파고 은행은 제피 모건과 뱅크 오브 아메리카 등과 함께 미국 3대 대형 은행이다.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설립 이후 현재까지 $11.8 billion 에 해당하는 부당한 금융 관행에 철퇴를 가하고, 그 결과 29백만 명의 금융소비자가 구제받았다. 이는 (중복이 없다는 가정하에) 미국 전체 인구의 9%에 해당하고, 피해를 입은 금융소비자 1명당 보상받은 금액은 평균 $407이다. 부당한 금융행위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는 지난 금융위기의 반성으로 생겨난 도드-프랭크 법안을 철폐하거나 대체하려고 하며, 소비자금융보호국도 반헌법적이라고 하고 리처드 코드레이 국장을 해고하려고 한다.[2] 하지만 최근 트럼프의 반이민법 행정명령이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린 것처럼, 금융위기 이후 생겨난 법안들이 일부 개정은 될 수 있어도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매년 7만 건이 넘는 민원이 접수되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미국에서 소비자금융보호국(CFPB)가 설립되던 2011년도에 우리나라에서도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첫 발의되었다. 그러고 나서 6년 동안 폐기와 발의를 거듭했다. 

작년 6월에 입법 예고된 정부안은 금감원 하에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두는 것이고 불공정 금융에 대한 과징금은 부당 수입의 50% 한도로 부과하는 것이다. 한편 야당은 독립된 금융소비자보호원의 설립과 훨씬 강화된 징벌적 과징금을 제안한다.[3] 원리금 상환비율이 소득의 100%가 넘는 한계 가구가 158.3만에 이른다는 것은 내일 빚으로 오늘 빚을 갚는 가구가 이미 수백만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빚으로 인한 자살이 속출하는 나라에서 금융은 과연 무엇일까. 벼랑 끝에 서 있는 금융소외자들이 죄인인가. 아니면 그들을 만든 금융의 죄가 더 큰가. 시민의 힘에 의해 탄생할 새로운 정부는 금융의 영토에서 시민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시민들이 스스로를 구해야 하는가. 금융을 돈과 권력과 기득권자로부터 독립시키고 혁신을 추구할 시민적 가치와 공정한 효율성만으로 운영할 규칙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인가.  


금융소비자의 보호와 금융혁신은 함께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한편으로는 규제를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규제를 풀어라 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이 둘은 금융의 진정한 가치 실현과 효율성이라는 큰 목표에 수렴한다. 이때, 금융의 효율화는 모두를 위한 금융 효율화이다. 미국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의 사명처럼 금융상품과 서비스가 누구에게나 유용한 것이 되기까지 금융은 자신이 쓴 규칙과 성과로 효율적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1] 케인즈는 오래된 격언에서 따왔다. 

“The old saying holds. Owe your banker £1000 and you are at his mercy; owe him £1 million and the position is reversed.” 옛말에 이런 게 있다. 당신이 은행에게 1천 파운드의 빚이 있다면 당신의 운명은 그 은행가에 달렸다; 만약 당신이 1백만 파운드의 빚이 있다면, 서로의 입장은 뒤집힌다. 

[2] Lucinda Shen, Fortune, 2017.1.27

[3] 한겨레 신문, 류이근, 2017.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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