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덕준 Jul 31. 2016

그리드(Grid) 밖으로 나가는 투자

시민투 연재 4

(표지 사진: 과테말라, 산 비센테 파카야 화산 봉우리)


고등어 구이가 미세먼지 주범이라고 하는 것. 관공서 실내온도를 일괄적인 지침으로 통제하는 것. 모두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는 진단이며 득 보다 실이 많은 조치들이다. 그렇다고, 값싼 산업용 전기료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대기업을 몰아세울 것인가? 제철업체나 화학업체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국내 대표 제조업체들이 에너지 효율성을 낮을까? 가정이든 기업이든 단기적인 절약이나 효율성의 문제에 집착하면서, 저탄소 클린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거시적인 효율성을 추구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모든 분야에서 혁신이 필요하지만, 에너지 분야의 혁신이야말로 인류가 번영을 지속하는데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성장 엔진은 꺼져가고 있다. 이미 엔진은 꺼졌고 지금은 관성의 힘으로 굴러가는 것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구세대 엔진을 교체하고 달려야 하는데 너무 지체하는 느낌이다. 


작년 파리 기후협약에서는 인류가 최악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온도가 산업화 이전 시점을 기준으로 섭씨 2도 상승 밑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16년 1월,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BloombergNew Energy Finance)와 지속가능 에너지 분야 권위 있는 비영리단체 세레스(Ceres) 및 켄 록클린(Ken Locklin)은 클린 에너지 전력 프로젝트 개발에 투자자본이 얼마나 필요한 지 발표하였다. 현재의 계획대로라면 세계는 향후 25년 동안 재생가능 전력에너지에 $6.9 trillion가 투자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파리 기후협정에서 정한 섭씨 2도 미만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투자 계획보다 75% 많은 $12.1 trillion 의 추가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앞으로 25년 동안 매년 평균 $485 billion에 해당하는 투자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1]


기후변화는 하나의 지구 위에 사는 우리 모두가 당면한 현실적인 위기이다. 이에 대한 접근으로 시민들의 의식 을 일깨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앙트러프러너와 금융의 혁신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개인적인 윤리만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크고 복잡한 문제들이 시스템으로 얽혀있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인간의 본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문제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을 뽑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이기심을 인정한 자본주의 제도가 남겨준 유산이다.


깨끗한 에너지에 대한 혁신은 실리콘밸리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력망이 없거나 안정적이지 못한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많은 지역에서는 태양광, 풍력 등 대체에너지가 기존의 가정용 등유와 산업용 디젤 생산 전기를 글자 그대로 대체하고 있다. 전력망 그리드 밖의 21억 명이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했다. 태양열을 필두로 한 깨끗한 전기는 소규모 지역단위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저개발 국가가 전력 접근성을 향상하는 데 있어서 전국 단위의 전력망이 필요 없다. 이는 마치 통신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저개발 국가가 지상선 구축하지 않고 바로 모바일 통신 네트워크로 넘어(leapfrog) 가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지난 글에서 실리콘밸리에서의 클린테크 혁신 기업으로 솔라시티를 예로 들었다. 솔라시티가 전력망이 미비한 국가로 간다면 어떤 모습일까? 샌프란시스코에 2012년 7월에 설립된 썬펀더(SunFunder)는 탄자니아, 케냐, 르완다, 우간다, 에티오피아, 인도, 파키스탄 등에서 태양열 에너지를 공급하는 설비 제조업체, 유통회사, 설치회사들에게 금융을 제공하는 회사이다. 이들이 공급하는 태양열 에너지 제품은 간단한 램프부터 시작하여 200W 가정용 시스템에서 500kW 상업용 디젤 전력 대체품까지 다양하다. 소비자는 기존의 등유나 디젤보다 싼 가격에 태양열 전기를 이용할 수 있다. 이 깨끗한 전기는 가족들의 건강과 환경에 좋고 아이들이 집에서 밤에 더 오래 공부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썬펀더의 창업자는 라이언 레빈슨(Ryan Levinson)이라는 청년으로 캘리포니아 웰쓰파고 은행에서 오랫동안 에너지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경험했다. 4년 전 법인설립후 그의 첫 작품은 $4,000을 크라우드 펀딩 하여 필리핀 팔라완 지역 100 가구에게 태양열 전등과 모바일폰을 충전할 수 있는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솔라시티 등 미국의 태양광 공급 회사는 뒤집어보면 금융 서비스 회사이다. 태양광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고, 고객에게는 다양한 파이낸싱 옵션을 제공한다. 썬펀더는 바로 이러한 태양광 금융을 이머징 마켓에 적용하였다. 이 회사의 태양광 대출 실적은 2015년까지 누적적으로 $3m 이었는데, 올해는 $13m를 기록하며 J 커브 성장을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 위험관리능력도 뛰어나, 그동안 부실대출은 1% 미만으로 유지하고 있다. 최근 $50m 규모의 Beyond the Grid SolarFund 라는 채권펀드를 론칭하였는데, 이 중에서 $15m를 미국 정부의 개발금융기관인 OPIC(Overseas PrivateInvestment Corporation)과 MCE 소셜 캐피털 및 록펠러 재단이 투자하였다. 2014년에 이 회사의 채권 발행규모는 $1m에 지나지 않았던 점에 비추어 그만큼 비즈니스 모델이 안착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썬펀더는 태양광 채권펀드에 대하여 종류별로 5-9% 정도의 이자율을 투자자에게 제공한다. 이 회사가 발행한 채권은 작년까지 소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하여, D3쥬빌리도 참여하였다.


썬펀더의 금융이 제공된 태양광 시설: Orb Energy 100kW system, Meerut, Uttar Pradesh, India


D3 클린테크, LLC [2]는 썬펀더가 설립되고 1년이 지난 시점인 2013년 시드 라운드 참여하여 주주가 되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 바로 몇 주 전에 창업가 라이언은 12명의 초기 투자자들을 샌프란시스코의 한 레스토랑으로 불러 조찬을 함께 했다. 내 옆에는 마침 썬펀더에 최초로 투자한 사람이 앉았는데, 그는 라이언이 웰쓰파고에서 에너지 프로젝트 파이내싱 업무를 할 때 함께 거래 구조를 짜고 계약서를 검토하던 변호사였다. 초기 엔젤투자자로서 동질감을 느끼며 질문했다. “당신이 웰쓰파고 은행의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서 라이언의 능력과 인격에 대하여 신뢰가 생겼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미국 내 프로젝트였고, 이머징 마켓에서 솔라 파이낸싱 사업을 하겠다고 뛰어드는데 최초 투자자가 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 같다.” 그의 답은 이렇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오프 그리드에 사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고, 그리 큰 금액도 아니었고 실패해도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했다. 아내도 같은 생각이었다.” 모든 위대해 보이는 기업도 처음에는 실패할 가능성 높은 스타트업이었고, 아주 작은 규모이지만 인류애적인 마음으로 투자하는 초기 투자자들이 있었다. 어차피 높은 위험을 각오하고 투자할 거라면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혁신을 추구하는 벤처 라야 한다. 이것이 내가 단지 재무적 수익만 목적으로 하지 않고, 시민적 가치를 투자에 결합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한편, 지난 글에서 소개했던 실리콘밸리의 DBL이라는 벤처캐피털은 미국 내에서만 투자해 오다가, 작년 10월 처음으로 미국 외 지역에 투자를 단행했다. 그 대상 회사는 아프리카에서  태양열 시스템 -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일체 – 를 제공하는 Off-Grid Electric라는 벤처이다. 이 회사의 창업가는 중고서적 온라인 플랫폼으로 유명한 소셜벤처 Better World Books를 20대에 창업하고 $60m 매출을 만들어낸 바 있는 재이비에르 헬게센(Xavier Helgesen)이다. 미션을 가진 청년 기업가들이 다양한 섹터와 지역을 넘나들면서 연쇄적으로 창업하고 있다. 엘런 머스크가 지칠 줄 모르는 연쇄 앙트러프러너로서 종국적으로는 지구 밖 우주여행도 가능케 하려고 하는데, 재이비에르는 지구 안에 남아 있는 그러나 그리드(Grid) 밖의 사람들에게 나아가고 있다.


에너지 혁신은 기본적으로 화석 연료에서 저탄소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뜻한다. 이것의 의미는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맑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뿐 아니라, 주택, 자동차, 농업 등 주요 산업을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에너지 혁신에는 또 다른 중요한 사회적 측면이 있다. 그것은 지역별 에너지 독립과 지역 경제 공동체 형성을 촉진하게 되어, 위에서 아래로의 중앙 관리식 경제개발 방식을 지역의 수요에 맞게 민주적인 방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독일이나 덴마크에서 보여주는 지역 커뮤니티 기반의 클린에너지 개발 방식은 배울 점이 많아 보인다. 


석탄과 석유는 산업화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었다. 우리가 저탄소 경제로 가고자 하는 것은 탄소에너지의 개발과 이에 기반한 경제성장 방식이 훼손하는 인간과 자연의 가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풍력이든 수력이든 태양광이든 자연 에너지는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자연은 모든 사람의 것이고, 자연에서 나오는 에너지도 그 지역 사회를 위해 개발되어야 한다. 클린에너지로의 전환은 우리 삶과 경제를 놀랍게 바꿀 것이다. 한 가지 전제는 지역주민의 참여와 민주적 절차이다. 시민적 가치에 규율받지 않는 자본은 클린에너지 개발 자본이라도 그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지역 시민의 자율적인 참여와 경제적 혜택의 공유 없는 클린에너지는 누구를 위해 깨끗할 것인가? 클린에너지는 소수에게 사유화되지 않아야 할 최후의 자원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재는 계속됩니다)
      


[1] "Mapping the Gap: The Road From Paris", Bloomberg NewEnergy Finance, Ceres and Ken Locklin, 2016.1.27 

[2] D3 클린테크, LLC에 대하여는 이전 글 (시민투 연재 3)에서 소개되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