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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과 씁쓸함 그 어딘가

by 충만한삶

인생을 살다 보면 늘 좋을 수는 없는 것 같다. 그토록 사랑하던 연인도, 새로 사 흥분했던 새 노트북도, 심지어 사랑스러운 아이까지..실망하기도 하고 질리기도 하고 밉기도 한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좋으면서도 싫은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경우도 많다. 한마디로 양가감정이 들 때가 참 많다.


타버릴 듯 뜨거운 지금의 여름도 그렇다. 여름엔 시원한 바닷가나 휴양지, 늦은 밤까지 놀 수 있는 여유 때문에 늘 겨울보다 여름을 사랑한다. 그런데 최근 숨이 막힐 것처럼 뜨거운 날이 이어지면서 더불어 올라가는 짜증지수 덕에 애꿎은 아이를 잡는 나를 보면서 이제 여름이 싫다는 마음도 든다.




좋으면서도 싫은 많은 것 중에서도 일이라는게 특히 그렇다. 쳇바퀴처럼 도는 직장인 생활이 너무 싫었는데,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보니 또 일이 그립다. 인간은 오랜 시간 노동을 해왔기에 노동을 하지 않고 사는 DNA가 없어서일까? 휴직 후 그렇게 홀가분하고 좋던 내가 2년이 넘게 쉬다 보니 슬슬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댄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일이라는 것은 회사에 혹은 사회에 무언가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나에게 줬다. 확실한 결과물로 돈이라는 것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사실 집에 머물며 꽤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확실한 결과물인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집안일이라는 것은 가정에 큰 기여를 하는 훌륭한 일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하는데 마음으로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다. 아이들도 크면서 제 할 일을 찾아가면 그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리 두려워하는 것일수도 있다.


홈스쿨링 모임을 하면서 엄마들끼리 자주 나누었던 이야기들도 이런 것들이었다. 머리로는 집에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도 귀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하는 집안일들이 허드렛일 같고 그런 일을 하는 자신이 가치가 줄어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엄마들이 많았다. 그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가치있는 일을 하는거라며 스스로를 설득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생애 첫 육아휴직 기간에 자존감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고, 그땐 독서로 자존감을 끌어올렸지만 이번 휴직에서는 독서로도 자존감은 끌어 올려지지 않는다. 지인들과의 비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함께 회사를 그만두자던 동기는 실제 그만두고 열심히 사업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함께 육아했던 동생들도 이제는 일을 하며 보람을 찾는다. 그 와중에 나만 거꾸로 가는 것 아닌가 싶은 두려움에 싫던 일이 좋아지기도 하는 것 같다.




최근에 재미로 챗GPT를 이용해서 꿈해석을 해보곤 했다. 그 해석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지만 최근 나의 심리가 챗GPT가 해준 꿈해석에서 많이 드러나 있었다. 챗GPT에 따르면 나는 자아 정체성과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부딪히고 있으며 그 역할을 조율하려고 노력중이기에 그런 꿈들을 꾸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주로 꾸는 꿈은 화장실 꿈인데, 늘 깨끗한 화장실을 찾는데 실패하거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이는 곳에 있어 들어가지 못하는 꿈이다. 화장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건강한 나만의 공간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무의식에서 나의 자아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표현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럼 나는 이러한 양가감정을 어떻게 소화시켜야 할까? 현재 일을 하지 못하는 나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고 말해주면 될까? 그러면 진짜 괜찮아질까? 아니면 작게라도 일을 벌려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까? 그 어떤 일이라도 돈을 벌 수 있다면 괜찮아질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뭐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조금씩 그게 나를 좀먹어 갈 것이라는 것이다. 일단은 이 정도 깨달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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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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