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우리
나와 이웃사촌 어리와의 동거는 물 흐르듯 자연스레 진행됐다. 매일 저녁 식사를 함께하던 우리는 일 년 후 어리의 집 전세 만기가 도래하면서 어리가 우리 집에 들어오는 것으로 살림을 합쳤다.
혼자 살던 집에 둘이 사는 데도 살림살이는 크게 늘지 않았다. 어리가 풀 옵션 집에 살았던지라 어리 소유의 가전이나 큰 가구가 없었고, 둘 다 원체 짐이 많지 않은 편이었다. 그나마 겹치는 물건들은 다 처분해 버렸다. 집안일은 서로 잘하는 걸 맡아서 했다. 장보기, 쓰레기 버리기 등 바깥일과 요리, 설거지는 어리가 했고, 그 외에 청소와 빨래, 살림살이 챙기기 등 나머지 집안일은 내가 맡았다. 그렇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살기로 했다. 집과 차를 공유하고, 살림에 들어가는 비용을 반반씩 나누니 경제적으로도 절약됐다.
한집살이 전까지는 사실 좀 두려웠다. 나는 오감이 지나치게 예민한 감각 과민증을 가졌고, 혼자 있는 걸 가장 좋아하고 혼자 있어야 에너지 충전이 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같이 잘 살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막상 같이 친구와 살아보니 생각보다 좋은 점이 훨씬 많았다. 즐거웠고, 평화로웠다. 혼자 살면 내가 싫어하는 일도 다 해야 하지만, 둘이 살면 서로가 싫어하는 걸 대신해 줄 수 있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이곳에 와서는 삶이 편안해졌다.
◇ 집안일은 왜 나만 하는 것 같지?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며 조화롭게 잘 살아가는 듯했지만 문제가 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청결 강박이었다. 난 외출복을 입은 상태로는 현관에서 화장실까지의 동선을 제외하고는 집안을 돌아다니지 않고, 심지어 휴대폰 케이스도 외출용과 실내용을 구분해서 쓴다.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화장실로 들어가 외출복을 벗어 털고, 샤워하고 나와선 외출용 휴대폰 케이스를 에탄올 솜으로 소독 후 실내용 케이스로 갈아 끼운다. 나의 오랜 생활 습관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독립한 후부터는 나만의 기준이 더 확고해졌다.
내 기준에 상대를 맞추려 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외면하고 적응하려 애써 봐도 어리의 행동이 눈에 자꾸 들어왔다. 어리가 결코 다른 사람에 비해 위생적이지 않거나 지저분한 편은 아니었지만 나와는 스타일이 달랐다. 어리는 외출 후 집에 오면 손발만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그날의 할 일을 다 마치고 자기 전에야 샤워했는데, 바깥의 먼지를 유지하며 몇 시간이나 집안에서 씻지 않고 돌아다니는 건 내 기준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몸이 자꾸 근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지적하고 싶어 입도 근질거렸지만 그래도 용케 그 마음을 잘 누르고 참았다.
나는 아토피 때문에 먼지에 취약하다. 실내공기를 항상 청정하게 유지하고, 하루에도 여러 번 내 기준에서 어긋나는 것을 정리하고, 쓸고, 닦고, 소독해야 직성이 풀린다. 집안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청소에 시간과 정성을 많이 들인다. 청소할 때도 맨손으로 설거지나 걸레질을 하거나 더러운 것을 여러 번 만지고 나면 어김없이 피부에 발진이 올라와 완치까지 한동안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특별히 더 조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청소를 맡은 건 더러운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고, 나의 공간과 나의 물건을 다른 사람이 청소하거나 정리하면 내 성에 차지 않아 결국 다시 하게 되기 때문이다. 참 이상하고 불편하고 피곤한 성격이라는 걸 알지만, 이걸 고치는 게 쉽지 않다. 사실 청소와 정리는 내 삶을 통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나만의 질서를 만들고, 주변을 잘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어리는 내가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에 매우 만족해했다. 내가 잔소리만 하지 않는다면 고급 가사도우미를 이용하는 것 같다며 좋아했다.
둘이 살면 혼자 살 때보다 여러모로 효율적이지만 집안일에 들이는 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늘어났다. 재택근무를 하는 나와 달리 어리는 출퇴근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나 혼자 살 때보다 집안에 먼지는 많아졌고, 청소하는 데도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빨래 양도 늘어나니 세탁기도 더 자주 돌렸다. 함께 산 지 두 달쯤 지나자 문득 집안일은 나만 하는 것 같은 옹졸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슬슬 언짢아지기 시작했고, 계속 참다가는 우리 사이마저 틀어질 것 같았다. 결국 서로 다른 위생 관념과 집안일 분배에 대한 불만이 터져버렸다. 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집안일 항목과 담당, 소요 시간, 주기 등이 자세히 적힌 집안일 분담표를 만들었다. 문서로 정리하고 보니 생각보다 집안일에 들이는 시간이 꽤 많았다. 집안일 분담표를 사이에 두고 어리와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이게 우리가 일주일 동안 하는 집안일 목록이야. 아무래도 재조정이 필요할 것 같아. 잘 살펴보고 하기 싫은 일과 조정했으면 하는 일 있으면 말해줘.”
우리는 긴 대화를 나누었다. 어리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어리는 요리를 잘하긴 하지만 요리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진 않았다. 그동안 티를 내지 않아 전혀 몰랐다. 게다가 혼자 살 땐 대충 먹고 살았는데, 저녁 한 끼라고 해도 매일 둘이 먹는 음식을 새로 준비하려니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해서 힘들다고 했다. 어리는 매번 요리할 때마다 최선의 맛을 구현하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퇴근 후 집에 와 음식 준비와 설거지까지 하고 나면 금세 밤 9시가 넘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유치하지만 진지한 회의 결과, 식사는 메인요리 1개만 하고, 전체적으로 집안일을 줄이기로 했다. 하루 2번씩 하던 청소는 하루 1번으로 줄이고, 주 1회 화장실 청소는 어리가 맡았다. 또 빨래별로 분류해 주 2~3회 하던 세탁도 주 1~2회로 줄였다. 그리고 고맙게도 어리는 생활 습관을 바꾸기로 했다.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면 지체하지 않고 바로 샤워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제발 좀 무뎌져 보기로 했다. 먼지가 조금 있어도 괜찮다, 물건이 널브러져 있어도 괜찮다, 세균은 눈에 안 보이니 괜찮……지 않지만, 그러려니 하고 그냥 좀 살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맞춰갔다.
◇ 다른 듯 닮은 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게 뭐냐를 묻는다면 난 ‘비슷한 식성’과 함께 ‘비슷한 위생 관념’을 꼽는다. 만약 위생 관념이 많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난다면 습관과 성격이 상호보완적이거나, 그 차이를 좁힐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오래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다.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과 성격을 고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나와 어리가 잘 지낼 수 있는 건 그 간극이 아주 크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에게 맞출 수 있어서였다.
어리는 나에 대해 “겉으로 보기엔 예민하고 까칠해 보이지만 ‘먼지’라는 한 요소만 없애주면 의외로 단순하고 맞추기 쉬운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어리가 만약 나의 청결 강박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편해했다면 같이 살기 힘들었을 거다. 어리는 나의 청결 강박을 그러려니 받아들였고, 어느 정도 비슷한 면도 있다. 어리도 나름의 규칙이 있어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질색한다. 식사 후 개수대에 그릇을 포개 놓으면 설거지하기 힘들다며 싫어하고, 화장실 거울에 물 얼룩이 생기면 바로바로 닦아야 한다. 어리가 주방 일을 할 때 보면 나보다 더 깔끔하게 설거지하고, 매일 가스레인지를 포함해 싱크대를 꼼꼼하게 닦는다. 이렇듯 우리의 깔끔함과 예민함은 다른 듯 닮았다.
함께 살다 보니 서로 닮아가는 것도 있겠지만 우리의 성격은 꽤 잘 맞는 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일부의 사람과만 깊은 교류를 하는 반면, 어리는 다른 사람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지만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잘 지낸다. 결과적으로 친구를 잘 만나지 않는 건 똑같다. 우리는 둘 다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고, 계획적이며, 효율을 매우 중시한다. 집에 있는 걸 가장 좋아해 웬만하면 외출을 잘 안 하는 편이지만, 한 번 외출할 때면 해당 동선에 맞는 모든 볼일을 한 번에 다 해결하고 온다.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계획을 열심히 세우고 밑바닥 체력까지 끌어올려 최선을 다해 여행을 즐긴다. 마음먹기가 힘들지 한 번 마음 먹으면 열심히 한다.
생각해보면 효율을 중시하기 때문에 집안일 분배도 쉬웠다. 횟수나 시간이 아닌, 철저하게 개인의 능력(?)과 성향으로 집안일을 나눠 맡았다. 시간만 두고 보자면 나는 하루 평균 2~3시간 정도, 어리는 그 절반 정도를 집안일을 하는 데 사용하는 편이니 불공평한 분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음식물쓰레기 처리 같은 일을 시간으로만 계산하긴 어렵다. 비위가 약한 나는 1시간 청소와 5분 음식쓰레기 버리는 일 중에 선택하라면 고민 없이 청소를 택한다. 반면 어리에게는 음식물쓰레기 수거함 뚜껑을 여는 일 따윈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하는 일을 택하는 게 효율적이다. 주방일 담당은 어리이지만, 설거지 후 건조된 그릇을 싱크대에 넣어 정리하는 건 나의 몫이다. 이것 역시 서로의 기준에서 효율을 택한 결과다.
대화 코드도 잘 맞는 편이다. 동거 초반, 우리는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새벽까지 수다를 떨곤 했다. 매일 저녁,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과 보고 들은 뉴스, 같이 살기 이전에 경험했던 일, SNS에서 본 시답잖은 유머들까지 이야기하다 보면 서너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함께 산 지 1년이 넘어가면서 대화 시간이 전보다 줄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대화를 많이 나누며 산다. 평화로운 날들이지만 부작용도 있다. 혼자 살 땐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집 밖에 나가야 했는데, 집 안에 좋은 친구가 있으니 굳이 밖에 나갈 필요가 없어졌다. 이러다 우리 사회성이 떨어져 이제 어디 가서 말 한마디 못 하는 거 아닐까, 그나마 있던 친구도 다 사라지는 거 아닐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삶에 녹아들며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