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정성 들인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는 기쁨
우리는 채식을 한다. 나는 20년 넘게 채식을 하고 있고, 육식을 선호하지 않았던 어리는 나와 함께 밥을 먹으며 채식으로 전향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몸 자체가 동물성 음식의 섭취를 거부했던 것 같다. 엄마젖이 나오지 않아 분유를 먹어야 했는데, 분유가 몸에 맞지 않아 미숫가루를 먹고 자랐다고 한다. 크면서도 자연스럽게 채식 위주의 식사를 선호했다. 고기는 밥상에 있으면 조금씩 먹고 없으면 굳이 먼저 찾아 먹진 않았다. 위장의 소화 능력도 현저히 떨어져 고기를 먹으면 비위도 상하고 속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 성인이 되면서 감정을 느끼는 생명을 먹는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고, 여기에 극심했던 아토피가 이런 생각에 정점을 찍으면서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 이런 나의 의식과 체질이 일치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시골에서 몇 달간 완전 채식을 하며 아토피가 치료된 경험을 한 후부터는 채식을 하지 않으면 아토피가 다시 심해질 것 같은 불안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이후로 내 몸에는 채식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에 계속 채식을 이어가고 있다.
집에서 하는 식사에서는 20년째 비건 채식을 주로 하고 있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는 이를 고수하기가 어렵다. 지금이야 채식 식당이 많이 생겼지만, 2000년대 초중반 아니, 10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조차 채식이 가능한 식당을 찾기가 어려웠다. 외식할 때면 대부분 주어진 식단에서 최대한 육류를 빼고 먹었다. 유난스런 사람 취급받는 것도 유쾌하지 않은 일이고, 일행이 있다면 일종의 타협이기도 했다. 특히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들이 내 눈치 보느라 가고 싶은 식당에 못 가는 걸 보면 미안함이 컸다. 나 혼자 불편하고 말자고 생각했다. (결국엔 서로 배려하다가 모두가 불편한 상황이 되어 버리곤 했지만.) 그래서 회식이 너무 싫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아주 조금의 동물성 식재료에도 민감해지기 때문에 지금도 가급적 남들과의 식사 자리는 피하는 편이다.
어리도 원래 육식을 즐기진 않아서인지 함께 살며 아무런 거부감 없이 채식을 하고 있다. 성향만큼이나 식성이 잘 맞는다는 건 동거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둘 중 누구 하나 술과 육식을 즐긴다면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해 서로 많이 아쉬웠을 텐데, 둘 다 술도 안 마시고 고기도 안 먹으니 아쉬울 게 없다. 남들이 볼 때는 무슨 낙으로 사느냐 하겠지만 매일 함께 차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수다 떨며 나름 잘 먹고 산다.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마을 텃밭을 분양받았다. 우리가 자주 먹는 채소 위주로 가지, 토마토, 바질, 루콜라, 쌈 채소 등을 심었다. 농사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팔뚝만 한 가지가 수두룩하게 달렸고, 방울토마토와 토종토마토도 우리가 충분히 먹고도 남을 만큼 계속 열렸다. 허브는 역시 번식력이 대단해서 바질도 무성하게 잘 자랐다.
수확 철이 되자 매일 토마토와 가지, 바질 요리를 먹고 또 먹었다. 남아도는 바질을 없애기 위해 값비싼 국산 잣을 사서 바질페스토를 잔뜩 만들었다. 배보다 배꼽이 컸다. 바질페스토 요리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물려서 몇 년간 바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특유의 식감 때문에 가지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어리를 만나 가지의 맛에 눈을 떴다. 어리는 토마토와 가지를 주재료로 하는 맛있는 요리를 자주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며칠에 한 번씩 차에 농기구를 싣고 집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텃밭에 가서 채소를 가꿨다. 그러다 둘 다 일이 바빠지기도 하고 게을러져서 2년 만에 텃밭 농사를 그만두었다. 우리가 텃밭 농사를 그만둔 건 텃밭 딸린 단독주택에 살고 있지 않아서라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면서. 역시 텃밭은 집 바로 앞에 있어야 부지런히 가꿀 수 있을 것 같다.
과일을 좋아하는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호사는 여름엔 수박, 겨울엔 딸기를 마음껏 먹는 것이다. 다른 것엔 돈을 아껴도 수박과 딸기를 사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수박은 둘 다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라 여름이 되면 우리 집 냉장고에 수박이 떨어지는 날이 거의 없다. 수박을 사 오면 수박 손질 전문가 어리가 한입에 먹기 좋게 직사각형으로 잘라 보관 용기에 차곡차곡 담아 냉장고에 넣어둔다. 덕분에 나는 혼자 살 땐 먹기 힘들었던 수박을 편하게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됐다. 나란히 앉아 시원한 수박 한 조각 베어 물면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다. 사흘 주기로 무거운 수박을 사 오고, 손질하고, 수박 껍질을 버리는 일은 어리의 여름철 집안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집에 있으면 우리는 점심과 저녁 하루에 두 번 요리한다. 가급적 가공식품보단 자연식물식 위주로 먹으려 하고, 끼니마다 국이나 찌개 같은 메인요리 하나와 반찬 한두 가지를 먹는다. 둘 다 밑반찬을 즐겨 먹는 타입은 아니어서 덮밥이나 떡볶이, 파스타 같은 단품 요리는 반찬 없이 먹기도 한다. 밥상은 소박하지만 매번 메인요리를 새로 해 먹기 때문에 메뉴를 정하는 것이 늘 고민이다. 한 달에 하루 이틀 정도는 냉장고 정리도 할 겸 냉장고 속 재료를 다 꺼내 난해한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나의 ‘소울 푸드’이자 ‘최애 음식’은 김밥이다. 너무나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식이 김밥인 영우는 김밥에 대한 명대사를 남겼다.
“김밥은 믿음직스러워요. 재료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예상 밖의 식감이나 맛에 놀랄 일이 없습니다.”
나는 이 대사가 김밥을 참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한 조각씩 썰어진 김밥은 모든 내용물을 한눈에 볼 수 있으니 정직하고, 먹는 사람을 당황하게 하지 않는다. 또 재료에 따라 온갖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완전식품인데다 먹기도 간편한 완벽한 음식이다. 이렇듯 믿음직스러운 김밥이지만 직접 만들려면 재료 준비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어서 자주 먹기는 어렵다. 식당에서 사 먹으면 간편하겠지만, 비건 채식하는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반 식당에서 “계란 빼고, 햄 빼고, 맛살 빼고, 어묵 빼고 야채만 넣고 싸주세요”라고 말하면 “다 빼고 뭘 넣느냐”라든지 “그럼 무슨 맛으로 먹느냐” 하며 난감해하거나 언짢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니 웬만해선 사 먹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지만 자주 영접할 수 없는 김밥을 늘 갈망해 왔다. 이런 날 위해 어리는 생일이나 특별한 날, 위로가 필요한 날 같은 때마다 김밥을 싸준다. 나와 살면서 김밥을 처음 싸봤다고 하는데, 김발도 없이 뚝딱 잘 만든다.
혼자 살 땐 밥을 먹는 행위 자체가 그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어야만 하는 의식 같은 거였다. 한 끼 때우는 개념으로 음식을 먹었다. 식욕도 없고 요리 자체에 흥미도 없어서 15분 이내의 간단한 요리를 선호했다. 떡국은 10분이면 끓일 수 있어 몇 주 동안 집에서 떡국만 끓여 먹은 적도 있고, 그게 아니면 김밥 가게에서 야채만 넣은 김밥을 사서 먹곤 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살았는데 어리와 함께 살면서 비로소 먹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어리는 이런 날 의아해했다.
“이렇게 잘 먹는 사람이 옛날에는 맛없는 거 먹고 어떻게 살았어?”
어리의 음식 솜씨가 좋아 즐겁게 맛있게 함께 먹다 보니 열여섯 살 때부터 한결같았던 몸무게에 변화가 일어났다. 내가 살이 찐 건 당연한 건데 이상하게도 어리는 살이 빠졌다. 규칙적인 식사로 몸의 균형을 찾게 된 거라 말하긴 했지만,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엄마가 가끔 어리를 볼 때마다 측은하고 고마운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그거와 상관이 있는 걸까.
시간과 정성을 들인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건 깊은 애정의 표현 같다. 식구라는 말이 가진 따뜻함.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집밥 역시도 사랑을 바탕으로 한 엄청난 희생의 결과임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식구로 다정하고 따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