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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서란 Oct 01. 2022

내 평생의 동반자 ‘아토피’

모든 것은 언젠간 괜찮아진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토피피부염을 앓고 있다. 아토피에 대해선 할 말이 아주 많기도 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지 않은 주제이기도 하다. 아토피를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내가 가장 아프고 힘들었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 괴롭고, 아토피를 경험하지 않은(하지만 주변에 아토피를 경험한 사람이 있는) 사람과의 대화는 “어디서 보니까 뭐가 좋다더라”, “어떻게 해봐라” 등등 여러 조언들로 불편하다. 물론 걱정돼서 하는 이야기라는 건 알지만, 40년 넘게 아토피를 앓아온 나에겐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정보이거나 써본 방법들이다. 이런 이야기를 수백 번 듣다 보면 듣는 입장에서는 결국 다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다.


아토피는 원인이 복잡하고 다양한데다, 완화와 재발을 반복하기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은 난치병에 속한다. 정신적 스트레스도 아토피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아토피가 심해지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야기하는데, 심각한 경우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반대로 우울감의 정도가 가려움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결국 ‘스트레스-아토피-우울증’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쉽게 치료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심한 아토피로 인한 가려움과 쓰라림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 경우 정확히 아토피피부염을 진단받은 것은 열두 살 무렵이었다. 단골로 다니던 피부과가 있었는데, 어느 날엔가 갑자기 의사 선생님이 어떤 책자를 펼쳐 보이며 엄마에게 “이 아이는 아토피성 피부염입니다”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엄마 말로는 병원에서 아기 때는 ‘태열’이라고 했고, 조금 더 커서는 ‘습진’이라고 했다고 하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 유치원에 다니던 무렵부터 엄마가 연고를 발라주던 기억이 난다. 집에는 항상 처방받은 스테로이드 연고가 있었고, 나는 얼굴, 손, 발, 다리 어디든 발진이 올라오면 강도 높은 스테로이드 연고를 화장품 바르듯 마구 발라댔다. 스테로이드 연고의 위험성은 알지 못했고, 널리 알려지지도 않던 때였다.


오랜 병원 치료와 한약 섭취, 민간요법에 지쳐 모든 것에서 해방되고 싶던 20대 초반, 나는 한 번에 모든 치료를 중단했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한 번에 끊자 피부가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한의원에서는 상태가 호전되면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명현반응이니 나아질 거라고 했고, 피부과에서는 극단적인 탈스(탈 스테로이드)는 위험한 행동이라며 경고했다. 그 후로 2년 동안 손발을 잘라버리고 싶을 만큼 고통스런 아토피를 경험했다. 마치 온몸의 독소가 다 피부로 올라오는 것마냥 피부가 온통 진물로 뒤덮였다.


미칠 것 같은 가려움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일상은 엉망이 되고, 안 그래도 예민한 성격은 더 예민해졌다. 피가 나고 살이 파이는 걸 보면서도 가려움을 참지 못해 계속해서 긁었고, 피부에선 항상 진물이 흘렀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자다가 일어나 샤워하거나 수지침으로 열 손가락 끝을 하나하나 찔러 피를 빼고 찬물에 손을 담그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일시적으로 체온이 내려가 잠시나마 가려움이 진정됐다. 상처 부위에 붕대를 감고 면장갑을 끼고 자는데도 아침이면 이부자리에 진물과 피가 묻어있는 건 예사였다. 이런 날 보며 엄마는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같이 울기도 했다.


처음 일 년은 발을 중심으로 하체에, 다음 일 년은 손을 중심으로 상체 전반에 아토피가 올라왔다. 상처와 진물이 심해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팔과 다리의 오금 피부는 하도 긁다 보니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해지고 까맣게 변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얼굴만은 멀쩡했다. 발이 심할 땐 걷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발 전체에 붕대를 감아줘야 했고, 손이 심할 땐 손 전체를 한 번에 붕대 감으면 손을 사용할 수 없으니 손가락 하나하나, 손등과 손바닥에 따로 붕대를 감고 살았다. 그 상태로 직장생활을 하며 컴퓨터 작업도 하고 사람도 만났지만, 결국 몇 개월 버티다 너무 힘들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도시 탈출이 시급했다.


엄마와 함께 서울을 떠나 당시 아버지의 근무지였던 시골에 가서 3개월간 요양을 했다. 시골에 살면서 하루 세끼 버섯, 두부, 채소 중심의 밥상으로 챙겨 먹고 하루 두 시간씩 등산을 하거나 바닷가를 산책했다. 조금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피부는 3개월이 지나자 놀랍게도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혼자 살며 식사도 대충 때우다가 시골에서 맑은 공기 마시고 매일 규칙적으로 엄마가 차려준 건강한 밥상을 챙겨 먹고 운동했으니, 몸이 좋아진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고통스러웠던 지난 경험은 비록 지금은 힘들더라도 언젠간 괜찮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다. 지긋지긋했던 아토피가 나에게 준 깨달음이다.


오랜 경험으로 아토피가 어떤 상황에서 심해지는지 알기 때문에 지금은 재발하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 덕분에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내가 아토피를 가졌는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다. 완치법도 없는 상황에서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더 유난스러워야 하는지,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 좌절도 많이 했다. 재발과 호전을 반복하는 질환이기 때문에 여전히 조금만 방심하면 어김없이 피부 발진이 올라온다. 하지만 아토피를 내 평생의 동반자라 생각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산 이후로는 전처럼 불안하거나 스트레스 받지는 않는다. 이제는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짧으면 며칠, 길면 한두 달 정도 신경 써서 관리해 주면 괜찮아지기 때문이다. 깨끗한 환경에서 잘 먹고 잘 쉬는 것. 내가 도시를 떠나야 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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