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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서란 Oct 03. 2022

집이 바뀌니 삶에 여유가 생겼다

두 번째 집에서 누리는 평온한 일상

어리와 함께 살며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동안 세상은 코로나19로 어수선해졌다. 우리는 이사를 고민했다. 둘 다 ‘자발적 집순이’로 사는 걸 좋아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밖에 나가는 것이 극도로 조심스러워지면서 좁은 집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집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방 2개에 좁은 거실, 주방이 있는 15평 정도의 빌라에서 살고 있었지만, 작은방은 옷과 짐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안방과 거실만 사용했다. 집에서의 더 안락한 휴식을 위해 우리는 거실이 넓은 집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리곤 그 이듬해 전세 계약이 끝나면서 우리는 드디어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해 이사했다.


현재 살고 있는 우리의 두 번째 보금자리는 첫 번째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파트로, 방 3개와 우리가 원하는 넓은 거실을 갖추고 있다. 두 식구 살기엔 좀 큰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쾌적하고 여유 있게 살고 싶었다. 덕분에 침실을 제외하고도 각자의 방과 각자의 화장실이 생겼다. 각자의 방에 침대를 두지 않고 별도의 침실을 함께 사용하는 건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생활공간과 잠자는 공간을 분리할 수 있고, 여름철 에어컨과 겨울철 보일러도 한 공간만 틀면 되니 생활비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린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하다가 휴식 시간이나 운동할 땐 거실에서, 잘 때가 되면 침실에서 만난다.


여유로워진 공간만큼 새로운 살림살이도 늘어났다. 비움과 여백의 미를 사랑하던 우리였는데, 넓어진 공간을 만나니 그동안 좁은 집에 둘 수 없어 구입을 망설인 덩치 큰 가구들을 들이게 되었다. 책상 겸 식탁으로 오래 쓴 저렴한 테이블은 내보내고, 세라믹 상판의 원목 식탁과 각자 사용할 넓은 책상 두 개를 구입했다. 침실에도 원목 싱글침대 두 개를 들였다. 시간적 여유로움을 위해 로봇청소기도 들였다. 하지만 역시 청소는 손맛이다. 사람이 해야 구석구석 깨끗하다. 로봇청소기는 기존 무선 청소기로 손이 닿지 않는 침대 아래와 소파 아래를 청소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다.


집안 살림 중 가장 잘 산 물건을 꼽으라면 식기세척기가 단연 1위다. 식기세척기는 우리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선물했다. 설거지 담당인 어리는 꼼꼼하게 설거지하는 대신 치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서 요리와 설거지를 끝마치고 나면 오랫동안 서 있어서 늘 피곤해했다. 설거지는 꽤 오랫동안 우리의 갈등 요소였다. 힘들면 내가 하겠다고 해도 어리는 툴툴거리면서도 끝까지 본인이 하겠다며 설거지하곤 했다. 식기세척기를 사겠다고 해도 싫다 하고, 도와주겠다고 해도 싫다고 하면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설거짓거리가 많은 날이면 잔뜩 찌푸린 채로 설거지하는 어리를 보며 나는 너무나 불편했다. 이런 상황이 자꾸 반복되기에 그냥 식기세척기를 사버렸다. 식기세척기의 성능을 의심하며 돈 아까우니 절대 사지 말라던 어리는 이제 티스푼 하나도 손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이러다 모자도 넣을 기세다. 어리는 식기세척기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예찬론자가 되었다. 이사 후 계속 과한 소비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다른 것에 사용할 돈을 아껴 시간과 마음의 여유로움을 위해 투자한 것이니 잘한 소비라 생각한다. 10년 이상 사용할 것을 기대하면서.


어쩌다 보니 우리에게 TV도 생겼다. 둘 다 그동안 TV 없이 쭉 살아왔는데, 전 집주인이 일 때문에 이곳에서 사시다가 정년퇴직하시고 본가로 들어가면서 에어컨, 대형 냉장고와 함께 대형 TV를 두고 가셨다. 처음엔 관심이 없어서 방치했다가 친구 부부가 이사 선물로 크롬캐스트를 선물해 준 덕에 우리는 주말이면 아이패드와 TV를 연결해 넷플릭스를 봤다. 우리는 함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쓸데없는 부분에 꽂힌다. 혼자선 조용히 보다가도 둘이 같이 보면 꼭 잔소리하고 싶어 TV를 보는 사람들처럼 옥에 티를 찾아내고 내용에 딴지를 건다. 그렇게 온갖 참견을 다 하고 그게 또 재미있다며 낄낄거린다. 이렇게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던 TV가 일 년 만에 메인보드 고장으로 화면이 나오지 않자, 재미를 잃어버린 우리는 결국 새로운 TV를 샀다. 10년 된 TV를 고치기엔 수리비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영화를 자주 보진 않지만, 큰 화면으로 보면 아이패드로 볼 때보다 더 참견할 맛이 난다. 확실히 우리는 좀 이상한 것 같다.


새로 들인 가구와 가전으로 덩치 큰 살림살이가 많아졌지만, 살림살이 총 개수는 크게 늘지 않았다.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가 정한 규칙 중 하나는 집에 물건 하나를 들이면 기존 물건 하나를 내보내는 것이다. 나는 원래부터 안 쓰는 물건을 집에 쟁여두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물건 다이어트를 한다. 우리는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제외하고 집안에 필요한 물건을 살 때 상대방에게 결재받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구입하려는 물건이 꼭 필요한 물건인지를 한 번 더 생각한다. 나는 쇼핑을 할 때 여러 조건을 꼼꼼히 비교 분석하며 사는데, 시간 낭비 같은 그 행위를 거치면 내 옆에 오래 남을 물건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입한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을 때까지 몇 번이고 비슷한 물건을 계속 사기도 한다. 그러다 궁극의 물건을 갖게 되면 그 물건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사용하는 편이다. 시간을 금이라 생각하는 어리가 볼 때 그런 나는 금(=시간)을 펑펑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물건 사는 거 자체를 자제시켜야 하므로 결재를 깐깐하게 해주곤 한다. 그렇게 우리 집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


물리적인 공간에 여유가 생기니 정신적인 여유도 생겼다. 시골이다 보니 인근에 고층 건물이 없어 창문 너머의 ‘밭 뷰’를 감상하며 멍때리기 좋다.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탁 트인 창밖 풍경을 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이 고요해진다. 덕분에 창밖을 보며 차를 더 자주 마시게 되고 생각하는 시간도 더 늘어났다. 삶이 여유로워지니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 감사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 가만히 살펴보면서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연습을 많이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기억 저편에 숨어 있었던 과거의 내 모습들이 문득 떠올라 부끄러워질 때도 있다. 전에는 가끔 어리와 부딪힘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적도 거의 없다. 예민함이 다듬어지고 또 다듬어져 조금은 둥글둥글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넓어진 거실에서는 여유 있게 각자의 요가 매트를 깔고 요가도 한다. 첫 번째 집에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이다.


전 집주인이 가전제품과 함께 두고 간 몇 개의 화분은 나를 본격적인 식물 집사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원래 식물을 가꾸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볕이 잘 드는 창가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을 보니 더 애정이 생겼다. 두고 가신 화분에 내가 기존에 키우던 몇 개의 화분과 농장에서 새로 구입한 화분들을 더하니 자연스럽게 창가 주변엔 화분이 가득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애정을 쏟는 만큼 식물들은 쑥쑥 잘 자랐고, 계속해서 가지치기와 포기나누기를 하면서 화분은 점점 증식했다. 나는 더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매번 모든 화분을 들고 화장실에 가 물을 주는 것이 버거워져 결국 주변에 화분 나눔을 하면서 개체수를 조절하고 있다. 역시 뭐든 적당한 게 좋다.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키우는 나와 달리 어리는 이끼만 키운다. 이끼 덕후인 어리를 위해 원목 선반 장을 구입해 한쪽 벽에 별도의 ‘이끼 존’을 만들어주었다. 그곳에 둘이 함께 몇 차례 테라리움 교육에 참여해 만든 유리 화분들을 놓아두고, 어리는 매일 아침 그 앞에서 다양한 종류의 이끼와 상록넉줄고사리에 물을 분무하며 정성으로 돌보고 있다. 둘 다 식물 집사이지만 선호하는 식물이 다르다 보니 우리는 각자의 식물을 돌보며 즐거워할 뿐 서로의 식물엔 간섭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함께 하려 했던 동거 초반과 달리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함께하되 서로의 취향과 속도를 존중하며 일상을 나누고 있다.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곳, 살고 있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나에게 따뜻하고 편안한 기운을 북돋아 에너지를 충전해주기도 하고, 나를 더 나다울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또 함께 사는 이와의 관계를 더 나아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더 나다울 수 있는 숲속에 우리의 취향이 반영된 집을 짓고 사는 꿈을 꾼다. 그 꿈을 향해 준비해 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이곳에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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