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키드
TV 속 그들은 슈퍼맨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 모두가 슈퍼맨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히어로처럼 보이진 않았다. 단지 슈퍼맨을 동경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슈퍼맨 영화를 본 후, ‘슈퍼맨이 되겠노라!’ 결심한 소년. 엄마에게 슈퍼맨 옷을 사달라 조르고, 바지 위에 빨간 팬티를 입어보고, 엄마의 보자기를 등에 메고, 주먹을 하늘로 뻗으며 침대에서 점프해보는 소년. 그런 소년 5명이 모인 밴드. 내가 처음 본 슈퍼키드의 모습이었다. MBC 오디션 프로그램 <쇼바이벌>에서 였다.
슈퍼키드는 다소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곡, SG워너비의 <살다가>를 준비했다. SG워너비는 당시 최고 인기 가수였다. <살다가>는 SG워너비의 손꼽히는 명곡이었다. 슈퍼맨 티셔츠를 입고 부르는 <살다가>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숙제하러 방에 들어가려다가 이 무대만 보고 들어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잠시 후 슈퍼키드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쿵짝. 쿵짝. 느린 뽕짝 리듬이 나왔다. 꽃미남 보컬 ‘파자마징고’는 뽕짝 리듬에 맞춰 노래했다. 허스키한 보이스가 꽤 뽕짝 리듬과 잘 어울렸다.
살다가 살다가 살다가 너 힘들 때
나로 인한 슬픔으로 후련할 때까지~~~~~
그는 노래를 멈추고 이별의 고통에 가슴을 부여잡으며 말한다.
“내가 살다가 살다가…”
그 뒤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개구쟁이 보컬 ‘허첵’이 노래를 이어 부른다.
“살다가~~”
변성기가 오지 않은 듯한 하이톤 목소리에 묵직한 밴드 사운드가 더해진다.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내가 걷는 게 걷는 게 아니야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내가 웃기는 게 웃기는 게 아니야
무대가 너무 재밌었다. 개구쟁이처럼 무대를 뛰어다니는 그들의 모습이 좋았다. 슬픔을 유쾌하게 이겨내는 법을 배웠다. 그날 이후, SG워너비의 <살다가>보다 슈퍼키드의 <살다가>를 훨씬 더 많이 들었다. 슈퍼키드는 여러 명곡을 슈퍼키드답게 재해석했다. 싸이 <연예인> + 이상은 <담다디>, 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계>+김광석 <일어나>. 어떤 곡이든 그들이 매만지면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곡으로 재탄생했다. 엄마는 늘 슈퍼키드 무대를 보면서 한마디 했다.
“쟤들은 늘 노래를 요상하게 부르더라. 그런데 신나기는 해.”
매주 토요일, TV 앞에 엄마와 앉아 슈퍼키드를 기다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쇼바이벌>은 시청률 부진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는 <공부의 제왕>이 차지했다. TV 앞에서 슈퍼키드를 기다리던 그 시간은 책상 위에서 숙제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다행히 <쇼바이벌>은 사라졌어도 슈퍼키드는 사라지지 않았다. 슈퍼키드는 그들 노래처럼 ‘Rock star’가 되었다.
I'm a Rock star Let's get the show in the club
화려한 조명 아래서 너의 맘 이미 내게로
I'm a Rock star 춤을 추는 너에게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무너지는 넌 내게로
홍대 라이브 클럽은 슈퍼키드를 섭외하려 애썼다. <잘 살고 볼 일입니다>라는 명곡이 담긴 싱글 앨범도 발표했다. 모든 밴드의 꿈인 단독 콘서트도 했다. 좋은 노래를 만들며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나갔다. 홍대에서 머나먼 광주에서 나도 그들을 응원했다. 언젠가 그들의 무대를 직접 볼 날을 꿈꾸며, MP3로 슈퍼키드 노래를 들었다.
여행 갈 때 우리 가족은 차 안에서 항상 노래를 들었다. 블루투스가 되지 않던 시절. MP3에 AUX 선을 연결해서 들었다. 하루는 누나의 MP3. 하루는 내 MP3. 혹은, 가는 길은 누나 노래. 오는 길은 내 노래를 들으며 갔다. 아빠와 엄마는 우리 노래를 들으며 우리와 가까워지려 했다. 누나와 나도 플레이리스트 중간중간 아빠와 엄마가 좋아할 만한 노래를 슬쩍 끼워 넣었다. 송창식의 <고래사냥>, 조용필의 <단발머리>,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자연스레 우리 노래에 섞여 나오게 했다. 우리 가족이 서로를 배려하는 하나의 리추얼이었다.
그날도 여행가는 길이었다. 차에서 내 MP3로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때 슈퍼키드의 <어쩌라고>가 나왔다. 황급히 노래를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슈퍼키드는 이미 충격적인 가사를 쏟아내는 중이었고, 내 MP3는 앞자리에 앉은 누나 손에 있었다. 누나는 말했다.
“엄마, 아빠 이거 들어봐. 비오, 요즘 이런 노래 들어.”
어쩌라고, X발 X도
어쩌라고, X발 X도
어쩌라고, X발 X도
어쩌라고, X발 X도, X도 X미.
내 얼굴은 조금씩 붉어졌다. 그때 엄마, 아빠가 말했다.
“뭐라고 하는지 잘 안 들린다. 뭐라는 거냐?”
누나는 확인 사살을 했다.
“이거 욕이야. 우리가 아는 욕.”
엄마 아빠는 드디어 깨달았다. 정말 민망하게도. 이 노래는 40초 동안 저 가사만 나온다. 저 부분을 총 네 번 반복한다. 즉, ‘어쩌라고, X발 X도’는 4×4=16. 총 16번 나온다. 40초가 영원 같았다. 내가 왜 이 노래를 미리 삭제하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아빠는 말했다.
“노래가 욕 밖에 없다잉.”
엄마는 말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노래를 듣는 갑다잉.”
누나는 다시 한번 확인 사살했다.
“요즘 애들이 듣는 거 아니야. 이런 건 비오만 들어.”
나는 구차하게 변명했다.
“사운드가 좋아서 듣는 거야.”
사실 욕 때문에 들었다. 시작부터 욕을 쏟아내는 이 노래가 좋았다. 방송에 나오는 노래는 정말 빙산의 일각이구나. 수면 아래엔 더 큰 세상이 숨어있구나. 그 세상에선 자유롭게 욕도 쏟아낼 수 있구나. 중2병에 걸린 소년은 방구석에서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느꼈다. 지금 <어쩌라고>를 들으면 느낌이 다르다. <어쩌라고>는 단순히 욕설이 가득한 엽기적인 노래가 아니었다. 슬픔과 분노가 공존하는 이별의 상황. 그 감정을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해 결국 내뱉는 청춘의 단어.
X발 X도.
거칠고도 아름다운 단어다.
슈퍼키드는 숨겨진 이별 노래 장인이다. <어쩌라고> 이외에도 다양한 이별 노래가 있다. 이별을 인정할 수 없는 남자는 말한다. <그리 쉽게 이별을 말하지 말아요>.
그리 쉽게 이별을 말하지 말아요
진심이 아니란걸 눈을 보면 아는데
모질게 말을 해도 그대의 눈물이
아니라고 말해요 이대로 못 보내요
이별을 막지 못한 남자는 애써 괜찮은 척하며 말한다. <그럭저럭> 괜찮아.
너 없이 죽을 정돈 아니지만 솔직히 요즘 좀 망가져 있어 난
널 다시 잡을 정돈 아니지만 아직은 니가 좀 남겨져 있어 다
그럭저럭 괜찮아
한참 뒤, 남자는 사랑했던 그녀의 <청첩장>을 받는다. 씁쓸한 표정으로 구차하지만 솔직한 감정을 토로한다.
적어도 너보단 더 잘 살고 싶었어
내 소식을 궁금해하거나 혹시나 알게 될 수도 있어
너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싶었어
그래야 내 맘이 편해 너를 편히 보내 줄 수 있을 것 같애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나도 그들도 많이 변했다. 슈퍼키드는 이제 더 이상 스스로를 <Rock star>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Rock star가 아니라오’라고 고백한다. 그들은 변했다. 성숙해졌고, 겸손해졌다. 모든 것은 변해간다. 불교의 첫 번째 가르침이다. 20대에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음악을 했다. 지금 그들은 이 순간 슈퍼키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을 하고 있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슈퍼키드는 예나 지금이나 다정한 우리들의 친구다.
슈퍼키드 공연은 딱 한 번 봤다. 어떤 페스티벌에서였다. 기대만큼 재밌었다. 앞으로 자주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2020년 <북극곰>이라는 노래를 발표하고, 그 이후에 소식이 없다. 그들이 락스타든 락스타가 아니든 상관없다. 무대에 다시 선 그들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딱 한 번만이라도.
나는 락스타가 아니라오
나는 락 스피릿도 잘 모르구요
락커다운 락커 그닥 욕심두 없구요
잘 몰라요 락 앤 롤
나를 락 스타로 보지마오
나는 나쁜 남자도 아니구요
락도 좋아하지만 락보다
그저 음악을 더 좋아할 뿐이라오
<비둘기 추천 슈퍼키드 플레이 리스트>
1. Rock star
2. 어쩌라고
3. 그리 쉽게 이별을 말하지 말아요
4. 잘 살고 볼 일입니다.
5. 집에 가자
6. Music show
7. Life
8. 바라던 바다
9. 청첩장
10. I'm not a rock 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