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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미친 세상

서태지

by 비둘기

미친 매니아들의 세상

밝은 미친 세상

<울트라맨이야 - 서태지>




<싱 어게인>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들에게 무대를 선물한 프로그램이다. 실력은 있지만, 기회가 없던 많은 가수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2024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싱 어게인> 우승자 이승윤의 공연을 봤다. 첫 곡부터 이승윤은 모든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의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에 감탄한 나는 옆에 있던 아내에게 말했다.

“역시 TV 나오는 사람은 다르네.”

아내는 짧게 답했다.

“확실히 연예인은 다르네.”

그는 단순한 오디션 가수가 아니었다. 락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이승윤은 중간에 관객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나 또 언제 올지 모르니, 말이나 좀 합시다. 밴드 붐이 오네마네 했잖아요. 저는 그걸로 안 끝났으면 좋겠어요. 혹시 음악 하시는 분이나 음악 하고 싶은 사람 있어요? ‘나는 미래의 락스타가 꿈이다!’ 하시는 분 손 한 번 들어주세요. 이 중에서 대한민국 ‘음악계의 왕’이 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크게 환호했다. 관객들의 환호가 조금 잠잠해지자, 이승윤 씨는 말을 이어 갔다.


“여기서 우리끼리 아웅다웅 해봤자예요. 결국 방송국에 가면 핸드싱크하는 게 밴드의 현실입니다. 제대로 밴드 연주를 하려면 방송국에선 큰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꼭 락 음악을 하는 사람 중에서 대한민국 ‘음악계의 왕’이 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밴드가 방송국에 가면 당연히 라이브를 할 수 있게 세팅되어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에는 이미 한 차례 음악계의 왕이 등장한 적이 있다. 바로 ‘문화 대통령’ 서태지다. MBC <특종 TV 연예>라는 프로그램에 작곡가, 작사가들이 신인 가수를 평가하는 코너가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 코너에 출연하여 <난 알아요>를 불렀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이 노래를 혹평했다. ‘멜로디 라인이 약하다.’, ‘가사가 진부하다.’, ‘춤이 너무 과격하다.’ 등의 평가를 한 후 역대 최저점을 주었다. 다음 날 지구에 원인 모를 지진이 일어났다. 기상청의 슈퍼 컴퓨터는 도무지 지진의 근원을 찾을 수 없었다. 얼마 후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졌다. 지진의 발생 지점은 바로 학교였다. 교실의 모든 학생들이 '난 알아요' 춤을 추는 바람에 땅이 버티지 못하고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했고, 최하점을 준 심사위원들은 굉장히 민망해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었다. 말 그대로 아이돌이었다. 소년, 소녀들이 학교에 쌓인 불만을 대변해주었다.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고 우릴 덥석 모두를 먹어 삼킨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교실 이데아 – 서태지와 아이들>



심지어 그들의 곡 ‘Come back home’을 듣고 집에 돌아온 가출 청소년들이 방송에 나왔다. 웹툰 <송곳>에서 구교신 소장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서태지와 아이들’은 청소년들에게 ‘좋은 사람’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6년에 갑작스레 은퇴 선언을 한다. 박수칠 때 떠나는 그들의 모습에 모두가 놀랐다. 눈물을 흘리는 소년 소녀들도 많았다. 은퇴 후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그러나 2년 뒤, 5집 앨범으로 돌아온 서태지는 또 한 번 역사를 썼다. 단 한 번의 방송 출연 없이, 서태지의 5집은 100만 장이 팔렸다. 한국 대중음악사에 전례 없던 일이었다. 서태지는 5집을 통해 ‘록’이라는 장르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2000년, 6집으로 복귀한 서태지는 또 한 번 음악계의 판도를 바꿨다. 그는 밴드의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 방송 프로그램에서 사전 녹화 시스템을 요구했다. 생생한 올 라이브 무대를 위해 자기 돈을 들여 녹화와 편집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음악캠프>에서는 완벽한 밴드셋 무대가 탄생했다. 대한민국 음악 방송 최초 사전 녹화였다. <울트라맨이야>를 불렀던 그 사전 녹화 무대는 지금 봐도 놀랍다. 강렬한 밴드 사운드, 미친 듯이 노는 관객,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무대. 그 위에서 목놓아 ‘울트라맨~~’을 외치는 서태지. 대한민국 음악 방송의 수준을 높인 결정적 순간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음악 방송에서 사전 녹화 방식을 도입했다. 문화 대통령이란 이름은 괜히 붙여진 게 아니다.

https://youtu.be/7AdA8OuyXdA?si=WZK6e47cUpo8p2Wu




서태지는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첫 만남의 순간을 선사했다. 윈앰프를 아는가? 하얀 네모 위에 번개 모양 아이콘이 있던. 오디오 프로그램의 전설 윈앰프. 곰오디오, 다음 팟 플레이어 이전에 윈앰프가 있었다. 소리바다를 아는가? 상당히 촌스러운 파란 배경에 소리의 파동이 물결치던 불법 음원 다운로드 프로그램. 대한민국이 저작권 무법지대였던 시절. 음반은 팬이나 사는 거고 노래는 당연히 공짜로 듣는 거란 생각이 만연했던 시절. 소리바다가 있었다.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와서, 아빠가 소리바다에서 다운받은 ‘울트라맨이야’를 윈앰프에서 들었다. 그 곡은 내가 처음 들은 락이었다. 강렬한 기타 리프에 난 빠져들었다. ‘we are the youth youth youth’라는 가사를 정확히 듣지 못해서 들리는 대로 따라불렀다. ‘위 아더 주스, 주스, 주스’. 가사는 중요치 않았다. 나에게 <울트라맨이야>에서 중요한 건 ‘울트라맨’뿐이었다. 꽤 가늘었던 서태지의 보컬이 괴물 목소리로 급변하는 그 순간. 나는 함께 포효했다. 바로 뒤 가사도 모른 채.



울트라맨~~~ 어려빠라빠빠빠

울트라맨~~~ 여기찌쩌빠라빠라빠

울트라맨~~~ 이제부터 찢어 난

울트라맨~~~ 슈퍼 초 울트라맨이야!!



최신판 히어로 벡터맨이 나오자 울트라맨에 관한 관심도 사라졌다. 매일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과 대화하려면 울트라맨이 아닌 벡터맨을 봐야 했다. 확실히 최신 영웅이라 그런지 벡터맨은 울트라맨보다 더 외모도 훌륭했다. 그렇게 울트라맨과 멀어지고, 서태지와도 멀어졌다. 이후 <연예가중계>에서 서태지 7집 Live wire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관심 없었다. 그때 나에게 최고의 락밴드는 버즈였다.



나에게 다시 서태지가 나타난 건 2009년이었다. 당시 8집 앨범 곡인 ‘Moai’를 들었다.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이젠 내 가슴 속에 남은 건

이 낯선 시간들

내 눈에 눈물도 이 바닷속으로

이 낯선 길 위로 조각난 풍경들

이런 내 맘을 담아서

네게 주고 싶은걸

In The Easter Island

<Moai – 서태지>



서태지는 평소와 달리 적극적으로 방송 출연을 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진 않았지만, 여러 인터뷰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에서 서태지의 음악적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서태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가 좀 더 좋아졌다. 서태지의 7집, 6집, 5집을 모두 들었다. 서태지와 관련된 영상은 모두 찾아보았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해체했던 이유,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었던 5집 솔로 앨범 등. 글 초반에 적은 많은 내용은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 아니다. 당시 봤던 영상에서 알게 된 내용들이다. 난 서태지의 팬이 되었다. 그때부터 그를 대장이라 불렀다.



서태지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밴드 음악과 오케스트라를 결합하는 시도를 한다. 서태지 밴드는 영국의 ‘로열 필하모닉’과 협연을 한다. 연주를 잘하기로 정평이 난 세션들을 모두 모은 서태지 밴드의 사운드에 오케스트라까지 결합하면 얼마나 환상적인 무대가 될지 궁금했다. 꼭 한 번 직접 보고 싶은 공연이었다. 하지만 난 어렸고, 공연이 펼쳐지는 서울과 한참 떨어진 광주에서 사는 컨츄리 보이였다. 난 그 풍성한 사운드를 휴대폰 DMB를 통해 즐길 수밖에 없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언젠가 그런 특별한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다시 올까?




이제 서태지는 활동을 멈추고 가끔 소식을 전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그의 음악과 영향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밴드 붐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대한민국을 휘젓어 놓을 서태지같은 락스타가 나와야 한다. 혹시나 서태지가 돌아와 그런 역할을 해준다면 참 좋을텐데. 그래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서태지의 라이브를 다시 볼 기회가 생기면 정말 좋을텐데. 슈퍼 초 울트라맨이자 우리의 대장. 그의 소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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