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희곡집
누군가 강력하게 추천한 책에 실망한 적이 많다. 평점 2점짜리 영화가 너무 재밌어서 몇 번을 다시 본 적도 있다. 취향이 보편적이지 않다 보니 누군가의 추천은 흘려듣는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무엇을 권유하기도 꺼린다.
김중혁 작가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 인디 밴드를 좋아하는 것도,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나와 비슷했다. 그가 좋아하는 영화도 궁금해졌다. 김중혁 작가는 장진 감독의 영화를 추천했다.
김중혁 작가가 추천한 영화. <아는 여자>, <킬러들의 수다>를 봤다.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 그때 이후로 김중혁 작가가 추천한 책, 영화, 음악, 그 이외에 모든 것은 믿고 즐겨보기로 했다. 김중혁 작가는 어떤 책에서(무슨 책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장진 희곡집>을 추천했다. 빨리 읽어보고 싶었지만, 절판되어 구할 수가 없었다. 온라인 중고서점을 통해 오래된 책을 겨우 구했다.
죽은 자들의 유쾌한 대화. <아름다운 사인>
살인 사건 범인을 쫓는 과정을 생중계하는 <박수 칠 때 떠나라>
택시를 운전하며 만나는 다양한 도시의 소시민 <택시 드리벌>
전쟁 중에도 평화로운 유토피아 <웰컴 투 동막골>
어딘가 서툴고 착한 강도 <서툰 사람들>
총 다섯 편의 희곡이 실려있다.
다섯 편의 극본 모두 매력적이었다.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연극으로 보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찾아봤지만, 절판된 책처럼 연극도 모두 막을 내렸다.
책 표지엔 장진 감독의 사진이 있다. 사진 속 그는 말했다.
“광대 몇 명만 있다면,
난 다시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그에게 펜과 종이를 들고 가서 따지고 싶다.
“약속대로 어서 빨리 이야기를 쓰시죠.”
장진 감독의 이야기.
장진 감독의 극.
어떤 것이든 다시 보고 싶다.
108p. 좋은 말이구만. 박수 칠 때 떠나라, 질리게 기다려 봤자 앵콜 안 나오니까 그냥 박수 쳐 줄 때 떠나라…….
<박수칠 때 떠나라>
212p. 그렇지. 이 차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놈의 땅 이놈의 도시가 만들어 낸 불행한 사람들이지. 누군들 잘나 이 차 타서 돈 내고 누군들 못나 핸들 부여잡아 먹고살겠어……? 모두가 불쌍한 이 도시의 소시민인걸.
<택시 드리벌>
337p. 이 여자가 사람을 뭘로 보고… 내가 그렇게 나쁜 놈처럼 보여. 칼 들고 도둑질 하러 다닌다고, 사람 다 그렇게 보지 마. 나 그래도 사나이다운 의리와 양심은 있는 놈이야……. 그리고 기본적인 도덕성은 가진 놈이란 말이야.
<서툰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