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그리고 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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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이성과 그 반대의 것 중
무엇을 추구하고 살아야 더 가치있고 보람있는 삶이 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깨닫는 게 많길 바라며 글을 쓴다.
이 과정이 허무하다는 것을 안다.
언어로 쓰여진 글은 마치 모래성 같아서 얕은 파도에도 힘 없이 부서지지만
이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무기이자 원초적인 희망이다.
이 무기를 들고 내 마음 속을 파헤쳐 볼 것이다.
생각이 많은 나, 실천을 하기 까지의 결재라인이 길어 타이밍을 놓치고 때때로 생각은, 실천해야 할 이유가 아닌 실천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만들곤 한다. 나는 그러한 이유들에 합당한 변명을 만들어 놓는 게 실천을 위한 절차라 생각했고.
이러한 나를 지켜본 몇몇은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을 추천해주었고 인도에 가서 틈틈히 읽었다. 자유분방한 그는 이성과 논리보다는 본능과 행동으로 살아가며 그런 그를 카잔차키스는 동경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얻고자 했던 진리나 진실은 그 속에 없었다. 그것은 조르바의 몸짓과 춤사위에 있었다.
나르치스가 카잔차키스라면 골드문트는 조르바였어. 색깔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나르치스는 지성과 이성을 통한 마음의 평화를 추구했고 골드문트는 예술과 본능을 통해 그것을 추구했다고 본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조르바가 아닌 카잔차키스가 되어버렸다. 한국에 돌아와서 생각을 줄이고 글을 쓰지 않으며 본능적으로 살아보려고 애썼지만 마음의 파도는 더 거세어질 뿐이다. 본능을 통해 이것을 잠재울 수는 없을까. 받아들일 수 없을까. 이성의 힘을 사용한다면 충분히 잠재울 수 있지만 그것은 합리화일 뿐이라고, 그것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공대생이니 최근 진동학 시간에 배운 공진현상으로 설명을 해볼께.
모든 물체는 그 물체만의 고유주파수(Natural Frequency)라는 게 정해져 있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내가 두드리는 이 키보드나 당신이 보는 핸드폰 모두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물체에 외부하중이 가해졌을 때 그 외부하중의 주파수(Forced Frequency)가 물체의 고유주파수와 유사하거나 같을 경우 물체가 무한대로 진동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공진현상이라고 한다.
나는 진동계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하나의 외부하중이고 그 주파수는 내 고유주파수와 일치했다. 미약한 바람에도 공진현상으로 교량이 무너지듯 나의 감정 또한 심하게 흔들리다가 뿌리채 뽑혔다. 밤이 되면 끝 없이 침전했다. 불안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웠다. 무한대로 진동하는 내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다.
이 진동 전달률(Transmission)을 줄이기 위해선 댐퍼(Damper)가 필요하다. 현실과의 공명, 무한대로 발산하는 트랜스미션을 줄이기 위한 방진 시스템. 그것을 바로 이성이라고 한다.
아직 치료제를 발견하지 못한 나는 일단 진통제를 사용한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써보려고 한다. 다시 한번 이성의 힘을 믿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