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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 람 Jul 26. 2018

바람의 길, 사람의 길

바람의 부녀 차마고도를 가다

여행 1일 차 해발 2300미터 별들의 군무


여행을 앞두고선 늘 설렘 반 불안감 반이 뒤섞인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과 몸담고 있는 익숙한 현실을 떠나야 하는 불안감.

즐거운 갈등이다.

이번 차마고도 여행은 일단 월말 결제일만 피한 것 확인하고 바로 결정하였다.

지난 몽골 여행을 놓친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입버릇처럼 몽골에서 말 타고 달리는 모습이 내 꿈이라고 했는데, 막상 큰딸이 여행 계획을 말할 땐 머뭇거리고 쉽게 나서질 못했다. 어기적거리는 아빠를 뒤로하고 큰딸은 거침없이 예약을 진행했고, 유별남작가와의 몽골 여행을 멋진 추억으로 만들어 갖고 왔다.

속이 쓰렸다. 딸과 함께 오랜 꿈을 이루고 추억을 만들 절호의 기회를 눈 앞에서   놓친 게 스스로 납득이 되질 않았다. 과연 그것을 피할 만큼 절실한 이유가 있었는지 곱씹어봐도 답을 얻질 못하였다.

차마고도..

2000년 어느 언저리에 KBS에서 방영한 차마고도 다큐멘터리, 협곡과 대자연을 헤치고 만들어간 아슬아슬한 삶의 길, 그 대자연의 광경을 기억에서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서점에 바로 들러 책을 사두곤 책장만 차지한 지 십여 년이 지났다.

내게 있어 책장 속에 묻어두었던 오랜 아쉬움을 큰딸은 이번 휴학 중 버켓 리스트 가운데 하나라며 예약을 진행했다  

2007년 발간된 차마고도

아빠도 원한다면 같이 가자고. 이번엔 나 역시 일정 확인하고 바로 예약하였다.

6월 중순, 일단 올해 가을상품 준비는 기획 수량만 조정하면 된다.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이다. 급한 일정은 없어 보인다. 예약금 먼저 송금하고 차분히 일정과 내용을 짬짬이 살펴보았다. 기억을 더듬어 먼지 쌓인 ‘차마고도’ 책을 꺼냈다가 덮어버렸다. 애써 기대감을 낮추고 미리 상상하지 않으려 한다. 여행은 날씨가 반일 테니 특별한 계획과 점검보다는 벌어지는 일 그대로 겪어내 보자는 심산이다.


드디어 출발 일이 내일로 다가왔다. 딸이나 나나 성격이 너무 비슷하다. 내일 아침 인천공항에서 7시 50분 동방항공으로 출발하는 일정인데 아직 가방도 꺼내놓지 않았다.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둘이서 주섬주섬 짐을 싼다. 적당한 크기의 캐리어에 둘의 짐을 반반씩 채워 넣었다. 그리고 각자 백팩을 하나씩 준비한다. 몇 년 전 샀던 후지 x100카메라, 어느새 앤틱이 되어버린 카메라인데 짐이 될까 아님 도움이 될까 주저하게 된다. 요즘은 아이폰 하나면 웬만한 사진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준다. 그것도 내 아이폰 7 플러스는 줌도 된다. 여분의 충전기를 챙기고 짐이 되더라고 폼이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x100을 백팩에 구겨 넣었다. 큰딸과 둘만 떠나는 일정에 고3인 둘째 딸과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 꾹 가슴에 담는다. 배려해준 아내가 고맙다.

새벽 4시 44분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에 몸을 실었다. 그 새벽에 아내는 정류장까지 배웅을 나섰다. 오늘은 새벽부터 자정까지 줄기차게 이동하고 대기하는 게 반복되는 일정이다. 상그릴라가 있는 리장까지는 충칭을 거쳐서 가야 하는데, 인천에서 동방항공 동일 항공편을 이용하기 위해선 연태에서 충칭을 가기 위한 연결 편을 6시간 기다려야 했다. 살짝 일정에 대한 아쉬움을 가이드에게 드러내니, 단체로 움직이는 여행에선 연결 편을 넉넉히 잡을 수밖에 없다고 부드럽고 조용하게 설명을 해준다. 연륜 있는 가이드이다. 차분한 어조에서 편안함과 신뢰감이 묻어난다. 삼십 대 후반에서 사십 대 초반까지 보인다. 묵직한 어조와 행동 뒤에 삶의 피로감도 엿보인다. 차차 알게 되겠지.  

어젯밤 혹시나 해서 책장을 뒤져 가져온 한 권의 책, ‘기사단장 죽이기’를 쓴 무라카미 하루끼의 마법 같은 글 솜씨를 기억하고 망설임 없이 백팩에 넣었던 ‘색채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꺼냈다.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단 한 장의 그림을 갖고 2권을 책을 엮어낸 희대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끼. 한국인에게 일본이란 가깝고도 멀다.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애증 섞인 역사로 인해 쉽게 마음을 열 수 없는 일본인이지만 한 장의 그림으로 일본의 근대사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는 국적을 잊고 빠져들게 만드는 탁월한 매력이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글로서 그림과 음악을 생생하게 느끼게 만들 수 있을까.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언어의 마술사, 시공을 주무르는 마법사. 문득 떠오르는 서양의 코엘료와는 다르게 동양작가에서 느끼는 뭔지 모르는 편안함이 있다. 오랜 벗의 향이라고 할까. 동아시아에서 늘 한국은 세 자매 중 둘째 같이 낀 느낌이다. 아니, 자매의 위치라도 될까? 중원의 주인이 바뀔 때나 바다 너머의 통일세력이 꿈틀댈 때마다 그 거친 기세를 그저 온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던 지난 천년의 설움이 내겐 아직도 진행형 같이 느껴진다. 보리 혼식, 폐지수집을 초등학교 때 권면했던 시대에서 2018년 세계 12대 무역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20세기 한국이 이루어 낸 성취에 대한 자긍심이 있지만 여전히 주변 강국의 기세엔 마음을 놓을 순 없다. 지난 2000년도부터 드나들었던 중국의 변화상을 몸소 느낄 때마다 긴장감이 배가 된다. 나라를 팔아먹을 정도의 뻔뻔함이 없는 소심한 시민으로선 강자들의 무자비한 정책과 결정 앞에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쨌든 살아내야 한다 하는 마음은 한국전쟁을 치르고 12년 만에 태어난 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나 보다. 무라카미 하루끼는 과연 이번 책에선 어떤 마술을 펼칠까 하는 기대감에 펼쳐 든 책. 아직 여행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 있던 일상에서의 의식 패턴이 멈추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순식간에 나를 다자키 쓰쿠루의 의식세계로 훌쩍 납치해버린 하루끼의 마술에 빠져들었다. 6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나는 어느새 쓰쿠루의 이야기에서 나의 20대를 왔다 갔다 하였다. 역시 마법사였다. 시간여행을 했던 설레는 마음을 달래는 사이 충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리장에 저녁 8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리장공항, 티벳항공기가 보인다. 멀리 왔나보다.

 온몸이 오랜 비행과 기다림으로 퉁퉁 부었다. 이제 더 이상의 비행은 없다. 리장 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4대의 SUV. 무슨 대장정 전사들 같은 현지인 4명의 드라이버를 앞세운 SUV 4대, 내가 아는 도요타, 닛산을 제외한 현대차를 닮은 이름 모를 중국산 SUV를 포함해서 4대가 야밤에 해발 2300미터 객잔으로 출발한다고 한다. 각자 어느 루트를 통해 객잔까지 갈지 잠시 의논하더니 곧바로 출발한다. 뒷자리를 차지한 나와 딸은 안전벨트를 찾았지만 뒷자리에서는 찾을 길이 없다. 앞자리의 여전사 같은 운전자와 가이드만 안전벨트를 매고 있다. 이 묘한 불안감을 잊고 싶은 마음에 딸과 함께 서로를 기대며 잠을 청한다. 아마도 딸은 나의 불안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2시간여의 산악 드라이브는 하늘의 달을 서서히 차량 허리를 감싸며 바퀴 밑 아래로 밀어 내렸다. 달이 시야 아래에서 떠가고 있다. 참 신기한 풍경이다. 밤 11시가 지나 객잔에 도착했다. 다행히 밤이어서 얼마나 위험한 도로를 지나쳐 왔는지 알 길이 없다. 그 여전사 같은 운전자가 몰았던 중국산 SUV는 더 이상 차로 갈 수 없는 길까지 다다르고서야 멈추어 섰다. 캐리어를 이끌고 거친 길을 너머 계단을 올라선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테이블에 앉아 뒤늦은 저녁밥을 기다리고 있다. 긴 여정에 지쳤는지 하나 둘 소박하고 푸짐한 시골밥상을 뒤적이다 지정된 방으로 들어가는 와중에도 나와 딸의 식성은 그 정도쯤은 아랑곳 않고 연신 수저를 움직인다.

오래된 얘기들이 들릴듯 말듯한 객잔의 모습

지정된 객잔 방에 들어가는 길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별이 쏟아진다.

아이폰을 들어 사진에 담아보려 애쓰는 딸이 말한다. 도저히 저 별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다고. 불현듯 x100이 생각난다. 삼각대는 없지만 한 번 시도해볼까?

밤하늘을 보면서 바람결에 별빛과 함께 춤추는 밤 구름의 춤사위에 마음을 맡겨본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하염없이 별에 취해본다. 바람결에 펄럭이는 깃발의 소리만이 밤하늘의 정적을 깨뜨릴 뿐이다. 딸에게 비긴 어게인 2에서 들었던 하림 곡을 청한다. 이럴 때 어울릴만한 곡, 이번 여행의 테마곡 같은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힌다’의 음률이 퍼진다. 너무도 아름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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