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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 람 Jul 28. 2019

황산행

경계의 모호함

십수 년을 벼르던 황산행

빈약속들을 미루다 결국 지켜낸 의동생과의 산행이다.

동생은 천하제일 명산을 보여주고픈 마음에 한껏 들떴다. 오랜만에 보는 흥겨운 모습이다. 맥주를 즐기는 동생이 바이주를 준비했다.

그는 집 근처 시시 관광특구 내의 스페인 레스토랑에 투자해서 제집처럼 손님 맞는 데 사용한다. 재밌게 사는 친구다.

남미가수의 공연과 반기문사무총장의 방문사진
오늘 비울 바이주

관광특구 내 스페인 식당이라 서양사람들이 많이 온단다. 하지만 대부분은 맥주 한잔으로 몇 시간 보내며 돈을 안 쓴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식당 특성상 임대료를 거의 내지 않아 그나마 큰 부담은 없다고 한다. 관광특구에는 유명한 식당이나 꼭 있어야 하는 식당들에겐 임대료를 전혀 받지 않거나 조금만 받는다고 하니 손님들을 모으기 위한 좋은 방편 이리라. 식사시간 이후를 위해 남미 베네수엘라 가수를 고용했다. 제법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여자는 노래보다 탁월한 춤 실력을 갖고 있다. 어릴 때부터 아빠 발등에 올라 스텝을 배웠다는 그녀의 춤은 일상화된 남미인들의 흥을 온몸 그대로 리드미컬하게 발산한다. 곡을 쓰고 연주하는 남자도 진지하면서 열정적이다. 낮에는 관광하고 밤에는 노래로 생활한다고 하는데 세상에 먹고살기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 신청곡 존 레넌의 imagine을 청하니 다음번에 오면 불러주겠다고 하면서 나보곤 시 한 편을 써오란다. 훗, 재미있는 거래다.  

항주 공장 외에 닝보, 태주, 푸장, 수조를 한 바퀴 돌며 5군데 공장 방문에 별일 없다면 황산을 갈 수 있는 2-3일 여유가 생길 듯도 하다.

막상 고속열차를 타고 가니 여러 도시 일도 그리 고되지 않다. 무섭게 발전한 중국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만만치 않은 거리였지만 워낙 헨리가 공장과의 일정을 잘 조율해서 큰 어려움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태주 공장 근처에 있는 수나라 시대의 천년 고찰도 잠시 방문하고 요즘 핫하다는 북경식 훠궈 집도 가게 되었다. 깊어가는 밤 물안개 피워 나는 천태산을 바라보니 시가 절로 나왔다.

닝보, 푸장, 수조 짬짬이 일 끝나고 숨겨진 현지 맛집 순회로 여독도 풀어가며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낯선 나라를 사귀고 있다. 현금이나 카드가 필요 없이 핸드폰으로 모든 결재가 이루어지는 생활상에서 정말 빠르게 진화하는 중국 IT산업의 현주소를 실감한다.


이제 4박 5일간의 비즈니스 일정을 마치고 황산으로 간다.

항저우에서 약 3시간 반 거리, 저장성 경계를 지나 안휘성에 위치한 중국 제일 명산, 황산으로.

입구에 자리한 경찰서-공안의 나라


TV를 통해서 봤던 황산의 유일한 운반수단인 짐꾼들, 이들은 거의 모든 것을 쉼 없이 나르고 있다. 쓰레기, 음식재료, 공사재료, 심지어 정상 곳곳에 있는 호텔 침구마저 매일 실어 나른다.


경치보다는 가도 가도 계단만 보인다.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오르다 방향을 바꿨다.


케이블카로 루트를 바꾼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빗속의 산행이 이렇게 멋 질준 상상을 못 했다.

빗소리, 그리고 산의 물안개와 함께 숨쉬었던 나의 호흡, 오롯한 적막과 고요함이 걸음걸음 속에서 나와 산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며 일체감에 젖어들게 한다.



비안개로 황산의 진면목이 가렸다고 호텔에서 자신들이 찍은 사진을 주며 그 아쉬움을 달래라한다.
안휘성 토속음식중 홍어를 삭힌것 처럼 생선을 7일간 삭힌 염장 생선

하루를 더 머물며 황산을 둘러보려 했지만 그칠 줄 모르는 비 덕분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산 계단을 내려왔다. 명나라 때부터 쌓아왔다는 계단길은 우리와 다른 중국의 등산문화를 두 다리를 통해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었다.

하마터면 이라인에 줄서며 케이블카를 타는 신세가 될뻔하였다.


항주를 대표하는 건축가의 손길에 의해 만들어진 멋진 인테리어

항주를 떠나는 날 이른 점심을 위해 찾아간 곳은

Grandma’s Home이라는 중국식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생각보다 저렴하면서 맛도 깔끔하고 잘 교육받은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 무엇보다도 항주 출신의 건축가 손에 의해 다듬어진 감각적인 인테리어, 이 모든 것에서 오너의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을 읽을 수 있었다. 중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녹아있는 듯하였다. 저장성에 20여 개의 식당을 임대료 하나 내지 않고 운영하는 이 곳 대표는 EMBA 경영대학원에서 경영기술을 전수한다고 하니 보통 수완이 뛰어난 분이 아닌듯하다.


떠나는 내게 건네는 두병의 술. 술이 익어가듯 우정도 익어가길 바라는 마음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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