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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 람 Oct 09. 2023

한양도성길

가벼워진 욕망의 무게

남산은 자주 가는 편이지만 유명해진 한양도성길을 좀처럼 따로 갈 기회가 없어 벼르던 참에, 이번 한글날 연휴기간에 탐방해 보기로 했다. 적절한 시작지점이 백범광장이 좋을 것 같아 광장 쪽에서 내려가보니 좀 더 아래쪽 힐튼호텔에서 성곽길이 시작되는 게 보인다. 아쉽다고 다시 내려갔다 오르는 건 아닌 듯싶어 이쯤에서 출발하는 걸로 타협했다.


백범광장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보이는 남산타워 아래에 있는 독특한 건물은 지금 서울교육정보원이란 곳이 사용하고 있지만 70년대엔 어린이회관으로 불렸다. 초등학교 때 형과 같이 아래층에 있던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꼭대기 회전전망대에서 오므라이스를 먹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어린 동생을 수영 가르친다고 다짜고짜 물에 빠뜨려 헤엄쳐 나오게 한 기억은 참 웃기 힘든 어두운 기억이다. 그래도 오므라이스는 맛있었다.

축성된 성벽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하였는지 전문해설사와 함께 마련된 유적지를 보며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서울의 모습에 감탄이 나온다. 보여주는 정치의 혜택도 있다.


낮게 깔린 풀잎빛이 가을을 알리고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자연스럽게 체중을 옮겨본다. 무릎이 지렛대가 아닌 골반이 지렛대가 되어 체중을 옮기다 보니 어느덧 정상이다. 엊그제 올랐던 백운봉, 자운봉이 멀리 보인다. 저곳을 올랐다니 왠지 뿌듯하다.


내려오는 소월길에서 마주한 멋진 괴목이 불현듯 지나온 삶의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좀 더 걸어야겠다는 생각에 자연스레 발걸음을 한강 쪽으로 옮겨본다.


오랜 시간 욕망하는 것이 불편했다. 살아온 시대가 우선 생존해야 했고 성장해야만 하는 분위기가 컸다. 부모는 역할을 바꾸었고 형제는 많았다.

뭔가 바라는 마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배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욕망 없이는 해석될 수 없다. 욕구와 욕망의 묘한 차이가 있지만 큰 의미로 바라는 마음 정도로 말하고 싶다.

삶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처럼 가만히 보면욕망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겨난 것이다. 이놈이 워낙 매력적이라 생겨진 것을 알아차릴 때 덥석 쥐어 잡고 이것이 내 것이 다하면서 또 다른 욕망을 덧씌운다. 이렇게 한 겹 두 겹 덧입히다 보니 이놈이 어디서 와서 어떻게 된 건지 잊어먹고 팔각의 링에서 거칠게 나뒹구는 격투기선수처럼 욕망과 하나가 되어 나와 너를 구분 못하는 상태로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욕망을 버리자니 삶을 버리는 것 같고 욕망을 쫓자니 끝이 안 보인다.


욕망은. 있는 거다.

버릴 것도 쫓을 것도 아니다.

삶이 그러하듯  있다가 사라진다.

사는 동안 욕망은 삶처럼 주어진 선물이다. 세상만물이 그 주어진 조건에 따라 생긴 모습이 다르고 나타났다 사라지듯 욕망도 그러하다.


몸의 체중을 무릎에서 골반으로 지렛대 삼아 옮겨 걷는 것처럼 삶의 중심을 살짝 바꾸어 본다.

한걸음 한걸음 걷듯이 선물같이 주어진 욕망을 좀 가벼이 대하며 삶을 즐기는 지혜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

풀잎을 쓰다듬는 바람결에서 거친 욕망의 소용돌이로 상처받은 자신과 상처 준 이들의 아픔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아름다운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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