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알레르기

자고 일어나니 알레르기가 생긴 건에 대하여

by 설다운

작년 가을부터 이상하게 식욕이 잦아졌다. 밥을 먹고난 다음엔 빵이나 케이크같은 디저트를 입 안에 밀어 넣어야 식사가 끝났다는 느낌이 들고, 오후 3시즈음이면 배가 딱히 고프지 않은데도 과자같은 걸 계속 집어먹고 싶었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는 길에도 편의점에서 과자를 한 두봉지 사던 게, 나중엔 주말에도 나가서 네봉지씩 사오곤 했다. 그냥, 계속, 뭔가 먹고 싶었다.


"밀가루를 끊으셔야 합니다."

평소 식습관과 다르게 먹은 게 탈이었을까. 올해 초부터 자꾸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와 피부과에 갔더니 면역 체계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표면적으로는 밀가루 알레르기지만 정확히는 글루텐 알레르기 반응이었다. 건강검진 결과에도 염증수치가 10점 중 9점이 나왔으니, 비상이었다.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사진처럼 두드러기가 온 몸에 올라온다


이별의 첫단계는 부정이라고 하던데, 밀가루와의 이별도 그랬다. 처음엔 내 몸이 이겨내게 만들어야지하고 무식하게 더 먹어댔다가 감당할 수 없이 올라오는 두드러기에 녹초가 됐다. 어떤 날은 어차피 올라온 거 더 먹고 마지막에 약을 먹어야지 했다가 온몸에 흉터가 남기도 했다.


정말로 끊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즈음엔 밀가루를 필사적으로 피하면서 의도치 않게 밀가루 전문가가 됐다. 그동안 내가 먹어온 음식 중 대부분엔 밀가루가 들어갔는데, 겉으로는 밀가루가 안 들어간 척 하지만 들어간 음식이 많았다. 카레, 어묵, 짜장소스, 냉면, 맥주, 막걸리, 심지어는 쌀떡, 쌀과자까지. 나는 그동안 글루텐을 얼마나 먹고 살아온 걸까.


못 먹는 음식이 생기면 사회생활도 쉽지 않다. 알러지가 생겼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렸지만 대부분 금새 잊어버렸다. 점심메뉴를 정할 때면 십중팔구 밀가루였는데 못 먹는다는 말을 못 해서 그냥 먹었다. 그리고 약을 허겁지겁 삼켰다. 그런 날엔 알 수 없는 자괴감이 무겁게 밀려왔다. 그놈의 못 먹겠단 소리를 못 해서 퇴사일을 이미 잡아놓고도 하루를 더 앞당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먹자는 사람에게 못 먹는다고 하는 건 배려해달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스스로에겐 엄격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만 관대하게 살았던 터라, 그 말이 그렇게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밀가루와 이별은 '못 먹어요'라는 말을 잘하게 될 때 비로소 가능할 것 같다. 그즈음이면 오히려 밀가루를 먹어도 아무렇지 않게 회복했을 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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