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도파민치료, 우울증/불면증 치료를 한 번에. 이게 되네 ;
스님으로 살면 어떤 기분일까?
가끔 절에 갈 때, 그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머리까지 깨끗하게 밀고 속세에 대한 모든 집착을 한 올도 남기지 않은 그들은 어떠한 사연으로 스님이 되었는지, 인생무상의 깨우침으로 매일이 평온할지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스님처럼 살아볼 기회가 생겼다. 누군가의 순수한 기부에 의지해 먹고 자고 씻고 하루 종일 명상 수련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 핸드폰은 잠시 보이지 않는 곳에 묻어 두고 함께 수련하는 사람들과 10일간 어떠한 접촉도 소통도 하지 않고 묵언으로 수행할 기회였다.
비영리단체 '담마코리아'에서 진행하는 명상프로그램인데, 2,500년 전부터 내려온 인도의 고대 명상법을 배울 수 있는 합숙 코스로 인기가 많다. 숙식이 제공되는 만큼 신청자가 많아서 랜덤추첨으로 수련생을 받고 있고, 원래는 3번은 도전해야 한 번 당첨될까 말까 한다는데 나는 운이 좋게 한 번에 바로 됐다. 같은 명상코스를 운영하는 센터가 전 세계 200여 개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딱 1개밖에 없어 더 관심이 갔다.
이 명상코스를 신청할 때 내 마음은 꽤 비장했다. 도파민에 지배당해 버린 몸과 마음을 어떻게든 깨끗하게 헹궈내고 싶었다. 그리고 비상약처럼 불면증 약을 챙겨 다니는 일도 그만하고 싶었다. 최근 생긴 밀가루 알레르기를 치료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지금까지 꾸준히 약을 복용했지만 더 나빠지기만 했지 나아질 줄을 몰랐다. 어쩌면 마음의 병에서 출발한 심신질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어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보고 싶었다. 그게 나를 완벽히 가두는 지독한 수행일지라도.
설렘 반 긴장 반으로 들어간 명상원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시간표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명상시간은 하루에 10시간 이상 짜여 있었다. 이중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단체명상은 3시간 정도고, 나머지는 숙소로 돌아가 자기 방에서 혼자 수행할 수 있다. 그러니까 10일 코스를 마치고 나면 약 100시간의 내공이 쌓이는 셈이다. 이쯤에서 내 친구들은 궁금해한다. 정말로 100시간을 다 한 거야?라고. 적어도 진안으로 내려가는 고속버스에서까지만해도 내 마음은 '반드시 스케줄을 성실하게 지킨다'였다. 그런데 첫날 10시간을 꾸역꾸역 버티고 나니,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느꼈다. 퇴소날 얼추 계산해 보니 50시간은 채운 것 같다. 그래도 무려 50시간이나 진지하게 수련했다는 것에 스스로 박수를 쳤다. 박수가 절로 나올 만큼, 이곳에서 배우는 명상은 매우 높은 수준의 인내력과 참을성을 요구한다.
사실 나는 5일 차에 집에 갈 뻔했다. 핸드폰이 없는 건 괜찮았다. 묵언하는 것도 상관없었다. 저녁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오히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 같아 좋았다. 참을 수 없었던 건 10시간의 고된 수행이었다. 처음엔 새벽 명상도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3일 차가 고비 더니 4일 차에는 단체명상시간 조차 못 견디겠어서 그냥 눈을 감고 시간을 버텼다. 이 명상코스에 참여하는 인원이 총 50명 정도 되는데 그중 10%가 5일을 채 못 버티고 자진퇴소했다. 하나 둘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상한 오기가 났다. 어떻게 뺀 10일인데, 반만 더 버티자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7일 차부터 이상하게 명상이 수월해졌다. 8일 차에는 위빳사나 명상 수련법 중 최고 경지까지 경험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막힘없는 흐름으로 감각을 느끼고, 피부 표면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척수를 따라 감각을 느꼈다.
위빳사나 명상법에서 가르치는 주요 포인트는 두 가지다. 모든 것은 일어나고 사라진다(영원한 것은 없음), 나는 내가 아니다. 그래서 명상을 하면서 내 몸에 집중할 때 느껴지는 감각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걸 지켜보며 영원한 것은 없음을 직접 느끼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내 것'에 대한 집착에서 모든 고통이 시작된다고 강조하며 내 몸은 내가 아니라는 어려운 이론을 이해시킨다. 그러니까 명상 중에 다리에 쥐가 나서 마비된 느낌이 들어도 '아 다리가 아프네. 근데 이 다리는 내가 아니야. 그리고 이 고통은 영원하지 않아. 어디 얼마나 가는지 지켜보자.'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전에 템플스테이에서 한 스님이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 몸은 마치 우주복 같은 거라서 내가 이 몸을 잠시 빌려 입은 거니까 이 몸이 느끼는 감정은 내가 아니니 그냥 지켜보면 된다"라고 그렇게 평정심을 계발할 수 있는 거라고 알려준 적이 있다. 나는 이번 10일 동안 그 연습을 정말로 많이 했다. 그러니까 내 몸은 지구복 같은 거고, 지구복의 설다운이 느끼는 갈망과 혐오는 모두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나는 그걸 어~너 지금 화나는구나. 어~ 너 지금 슬프구나. 하면서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는 연습을 했다.
지금까지 내가 쓴 에세이에서 내가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바로 획득했다는 경험기를 쓴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노력한 만큼 정직하고 확실한 결과가 있었다. 명상원에 있는 10일 동안,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불면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내 사람, 내 물건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니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훨씬 가벼워졌다. 한 번은 같이 합숙하는 사람이 공용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며 '캬악-'하는 소리를 굉장히 거슬리게 내서 마음속으로 흉을 본 적이 있다. 5일 차 즈음이었는데, 그때 아 내가 지금 혐오하고 있구나 하고 바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 혐오감도 금방 사라질 거야, 하며 평정심을 찾았다. 그다음 날 똑같은 소리를 들었을 땐 오히려 동정심이 들었다. 저렇게 하루 세 번 양치할 때마다 목구멍에서부터 다 끓어올려야 하는 본인은 얼마나 답답할까. 또 다음날 들었을 땐 창밖의 까마귀 울음소리처럼 아무런 타격감이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집에서 유튜브를 보고 10분, 30분 따라한 명상이 약국에서 사 먹는 피로회복제 같은 거였다면 이번에 수련한 '위빳사나 명상'은 장장 10일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대수술은 실제로 고엥까 선생님께서 쓴 표현이다. "여러분은 지금 수술대 위에 올라있어요. 이미 배를 열었죠. 그런데 수술 중에 갑자기 집에 간다면 어떻겠어요? 위험하겠죠. 여러분은 마지막날까지 피와 고름을 계속해서 짜내야 합니다. 여러분의 무의식에 딱딱하게 굳어 있는 마음의 습관들과 괴로움을 계속해서 짜내세요.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다리에 쥐가 나기를 여러 번, 어떤 때는 명상 중에 도저히 집중이 안 돼서 눈을 뜨고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고, 명상을 하다가 지난 상처가 불쑥 생각나 남몰래 울기도 했다. 그 모든 것들이 다 피와 고름이었을까. 전주역에서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가벼워서 몸과 마음 사이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이곳에서 보낸 10일간의 수련 시간은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변곡점이 되어줄 것 같다. 굉장히 거창한 표현이지만 대체할 표현이 없을 정도로, 인생 2막의 출발점을 찍었다. 하지만 너무 또 들뜨지는 않게, 집에 오는 길에 최유리의 '들뜨지 않는 마음'을 들으며 이 기분 좋은 평정심을 오래오래 머금었다. 담마코리아와 고엥까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