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아일랜드>를 구독하며 떠오르는 단상
이 글은 종이에 펜으로 쓰였다. 이렇게 쓰면 어떤 글이 나올까 내심 기대하면서.
몇 달 전부터 제주에서 쓰는 손편지를 구독하고 있다. 실제 종이에 누군가의 필체가 꾹꾹 눌러 담긴 에세이 같은 편지가 매달 한 번씩 우리 집 우편함에 꽂힌다.
<로그아웃아일랜드>
이 서비스를 처음 알게 된 건 지난봄 명상원에서 만난 수련생을 통해서다. 내가 브런치에 명상원 후기를 올렸을 때, 그 수련생이 우연히 내 글을 보고 나를 기억한다며 메일을 보내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답장을 쓰다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물어봤다. 그분은 개인 계정은 현재 없고 대신 사이드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게 있다며 한 계정을 알려줬다. 그게 로그아웃아일랜드였다.
제주에 사는 래리. 그분이 직접 쓴 손편지가 매달 우리 집에 온다. 마치 처음부터 나에게 쓴 편지처럼, 늘 내 이름을 부르며 시작한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덤덤히 써내려 가는데, 처음 경험하는 방식의 위로였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나에게 쓴 편지인데 이토록 몰입하고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니.
나는 그 힘이 손글씨에서 나온다고 느낀다. 필자의 손버릇이 담긴 글씨체는 마치 그 사람의 모습 같아서 사진을 보지 않아도 보이고 느껴진다. 어떨 땐 목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그래서 로그아웃아일랜드를 통해 받는 편지는 이메일로 1초 만에 전송되는 텍스트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사람 냄새가 난다. 나는 그게 너무 독특하고 아름다워서 첫 편지를 받았을 때 희한한 감동이 마음을 간지럽혔다.
최근 독서모임에서 <경험의 멸종>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마침 그 책에서도 손글씨에 대해 언급했던 게 생각났다. 그 책에선 기술이 바꿔놓은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기술로 얻은 건 곧잘 알아차리지만, 잃은 건 셀 수도 없고 심지어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손글씨도 그중 하나였다.
손글씨 없이 생활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손글씨가 사라지면 우리는 수천 년간 손과 필기구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던 즐거움을 잃게 된다. 잉크와 종이가 주는 감각적인 경험, 손글씨가 주는 시각적인 즐거움도 잃게 된다. 우리가 손글씨와 상호작용하는 광범위한 방식은 키보드로 빠르게 입력하면 끝나는 글과 비교할 수 없다. 손글씨는 그런 식으로 무언가를 반복해서 재생산하는 게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인간성, 반응성, 변화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손글씨를 래리와 힌지(로그아웃아일랜드의 발신인)는 쓰고 있다. 나처럼 그들의 글을 받는 독자가 종이글을 통해 인간성을 느끼고 손글씨만의 고유한 시각적 즐거움을 잃지 않도록. 그래서 난 이 ‘정기 종이글’ 서비스가 애틋하고 귀하다. 어디 계약서에 사인할 때 빼고는 손으로 펜대를 쥐고 직접 글씨를 쓸 일이 거의 없는 요즘, 손글씨를 ‘읽는’ 경험이라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게 해 주니까.
래리와 힌지의 글솜씨는 뭐랄까. 처음 보는 손맛이다. 엄청나게 대단한 경험이나 신기한 에피소드가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 좋다. 밤잠 설치며 느꼈던 허리 통증이라든지, 사람들에게 말한 적 없는 마음속 불안이라든지, 마피아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라든지. 소소한 주제지만 그걸 전혀 소소하지 않게, 깊은 맛 나는 장처럼 담가낸다. 그 진한 맛을 느끼고 있으면, 난 가만히 있다가 온기를 받는다.
요즘 시대에 손글씨가 계속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로그아웃아일랜드>처럼 손글씨를 계속 쓰는 사람들은 있다. 필요해서라기보다, 이게 더 다정하고 마음이 가서 선택하는 사람들. 나는 비록 디지털로 다이어리 쓰기를 선호하는 사람이지만, (내가 뭐라고)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안도를 느낀다.
AI로 쉽게 요약하고 유튜브로 간접경험하는 게 익숙해서 ‘멸종 위기 경험’이 하나 둘 생겨나는 요즈음, 손글씨를 읽는 경험 하나쯤은 두고두고 가져가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