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의 의미

<환승연애 4>를 보며 느낀 점

by 설다운
충격에 빠진 패널들

최근 환승연애4에서 한 사람의 X가 두 명 등장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패널들이 너무 놀라 앉아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때, 동시에 나도 안고 있던 쿠션을 던지며 비명을 질렀다. 동시간대에 본방을 사수하던 시청자들도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벙쪘을 것이다. 한국 정서상, 헤어진 연인과 출연한다는 설정 자체에 거부감이 있음에도 <환승연애>가 시즌4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인기 비결은 타 연애 리얼리티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실제 커플이 가진 고유한 서사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한 사람과 사귀었던 각기 다른 연인이 동시에 나온다는 설정은 ‘선을 넘었다’는 평가가 많다.


사실 나라고 처음부터 이 프로그램을 좋게 봤던 건 아니다. 제목부터 '환승연애'라니, 저급한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매 시즌 본방날만 기다리게 된 이유는 하나다. 나는 <환승연애>가 인간의 애착 관계를 해부하는 사회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이 실험은 연애라는 인간관계를 가족 다음으로, 혹은 가족보다 더 깊게 의미를 부여했던 사람들이 X와 한 공간에서 살아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관찰한다. 혹자는 도대체 왜 그런 실험을 하냐며 치를 떨지만, 나는 ‘그런 실험’이기 때문에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부모 다음으로 가장 깊게 빠진 애착 관계, 즉 연인 관계의 해체를 극복하는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방송을 통해 다른 사람들은 연인과의 애착 관계를 통해 어디까지 상처 입고 어디까지 감내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한 사람의 또 다른 X가 입주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선을 넘었다고 말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선을 넘었다‘는 말 너머에 있는 본질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시즌 4니까 뭔가 더 자극적인 걸 하려고 애쓴다는 의미로 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단순히 자극적인 그림을 만들기 위한 연출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나는 이 연출이 이 실험의 본질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본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대해 생각보다 쉽게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힌다고. 세상에 힘든 일은 그것보다도 더 많다고. 하지만 막상 깊숙이 사랑했던 누군가와의 관계가 해체되는 과정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시간이 결코 빨리 지나가지 않고, 지난하며, 얼마나 처절하고 아픈지. 내 존재가치를 비추어보는 잔인한 일인지를. 그러니까 ‘선 넘네’라는 표현은 실은 연인과의 애착관계를 유지하거나 해체하는 전 과정이 얼마나 지리멸렬하고 고된 인내의 시간인지 다들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상황을 '잔인하다' 혹은 ‘선 넘는다’고 표현할 수 없다.


시즌 4회차를 모두 본 시청자로서 주목할 수 있었던 지점은 시간과 마음은 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귄 기간이 짧으면 그만큼 덜 아플 것이라고, 헤어진 지 오래됐으면 그만큼 무뎌졌을 거라고 보는 사회적 통념이 쉽게 부서지는걸, 이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했다. 관계는 절대 평균을 낼 수 없다. 모든 연애는 개인적인 것이다. 이번 회차에서 한 여성 출연자가 헤어진 지 5년 된 남자친구와의 X룸에서 수십 장의 편지를 마주하고 오열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누가 보면 초상집인 줄 알겠다며 공감하지 못했다. 심지어 이게 이 정도로 슬플 일이냐며 웃음이 터진 리액션 유튜버들도 많았다.


그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씁쓸했던 이유는, 타인의 연애란 원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관계는 오로지 함께했던 두 사람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3개월을 사귄 커플이나 13년을 사귄 커플이나, 내가 상대방에게 여전히 의미 있는 사람이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헤어진 지 6주 만에 나온 커플이든 5년 만에 나온 커플이든 X룸에서 지난 연애의 흔적을 보고 무너지는 것 또한 다르지 않았다. 즉, 마음에 뚜렷하게 각인된 누군가가 있다면, 시간의 경과와 무관하게 똑같이 마음이 동요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실험은 확인시켜 준다.


또 하나 눈에 띄었던 점은 매회차에서 출연자들이 가장 많이 뱉었던 말이다. 하나는 X가 내 앞에서 새로운 이성과 썸 타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나를 너무 존중하지 않는 거 아니야?"라며 서운함 혹은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비슷한 맥락에서 "넌 내가 신경 안 쓰여?"라며 원망 섞인 눈빛을 보내는 말이었다. 헤어진 사이에 존중을 기대하고 상대에게 여전히 내 존재가 신경 쓰이길 바라는 마음은 결국 ’내가 여전히 상대에게 특별한 사람, 의미 있는 사람으로서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강력한 욕구‘의 표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미 관계가 끝난 헤어진 사람에게서까지 그래도 의미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을까? 상대방의 기억이 곧 나라는 존재의 가장 빛나던 순간을 보증하는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깊은 애착 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한때 그 사람의 세계에서 내가 가장 중요한 좌표였다는 의미다. 내가 상대에게 던지는 "나를 존중해줘," "넌 내가 신경 안 쓰여?"라는 질문은 실은 ‘나의 가치를 인정해줘’, ‘나는 너에게 그만큼 중요했던 사람이었어’라는 간절한 외침이다.


헤어진 후에도 상대에게 의미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욕구는, 상대를 향한 미련이라기보다는 자기애의 방어 기제에 가깝다. 그 관계의 깊이가 헛되지 않았음을,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그토록 깊은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음을 전 연인의 태도를 통해 재차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결국 환승연애는 이별의 슬픔을 넘어, 인간이 자기 존재의 가치를 어떻게 증명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치열한 다큐멘터리다. 누군가는 그들의 '잔인한' 고통을 관찰하며, 자신의 애착과 가치관을 확인하기도 하고,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며 위로받는다. 그들이 겪는 혼란은,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자리한 관계와 존재의 질문을 대신 던져주기 때문이다.


X가 둘인 출연자, 그리고 그런 상대를 바라보는 두 명의 X. 나는 이들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식으로 관계를 정리할지 지켜보고 싶다. 마음에 새겨진 관계의 자국이 얼마나 뚜렷한지에 따라 애착관계라는 게 얼마나 상대적인지, 또 얼마나 복잡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일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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