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싶은 게 많다는 것과 가진 게 많다는 것의 의미
언제부턴가 집에 택배가 너무 자주 온다. 그렇다고 부르지 않은 손님이란 얘기는 아니다. 열어보면 내가 주문한 것들이 맞다. 후라이팬 걸이, 욕실 선반, 운동할 때 입으려고 시킨 상의, 요거트 메이커, 유청 분리기. 앞으로 곧 시켜야 하는 것들도 이미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다. 식기세척기 전용 타블렛, 얼마 안 남은 키친타올, 그리고 보리의 화장실 모래까지.
분명 필요해서 산 것들인데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뭔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자잘한 소비를 쉼 없이 불렀다. 예를 들면 이렇다. 최근 건강 관리 겸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식물성 단백질을 먹고 싶어서 매일두유 12개입을 박스째 시켰다. 여러 번 주문할 필요가 없으니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라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런데 문득, ‘두유 요거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지금처럼 요거트를 따로 시킬 필요가 없을테니까.
그렇게 네이버와 유튜브를 분주히 오가며 우유팩을 통째로 넣을 수 있어 효율적이라는 요거트메이커를 주문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요거트메이커는 요거트까지만 만들어줄 뿐, 꾸덕한 그릭요거트를 원하면 유청분리기라는 걸 또 사야 한단다.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검색하기 시작했다. 식기세척기가 있으니 식기세척기에 넣을 수 있는 제품을 찾아 스크롤을 끝없이 오르내렸다. 얼마나 열심히 비교하고 찾았는지 멀미가 날 즈음에서야 주문을 완료했다. 그렇게 며칠 뒤, 집 앞에 요거트 메이커와 유청분리기가 나란히 도착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다. 우연히 홍대의 한 쇼핑센터에서 권진아의 LP 음반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특히나 애정하는 앨범 <우리의 방식>이었다. 들었다 놨다를 여러 번, 수록곡을 확인하고 가격을 확인했다. ’어차피 집에 턴테이블도 없어‘라고 생각하며 내려놨지만,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며칠 뒤, 인터넷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우리의 방식> LP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을 음미하기도 전에 이미 결제수단을 누르고 있었다. 자, 이제 턴테이블이 필요해졌다(?). 다시 유튜브를 켰다. 성능 좋은 턴테이블을 찾기 위해 온갖 리뷰를 섭렵했다. 제대로 된 소리를 들으려면 스피커도 따로 구비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렇게 데논이라는 고가의 턴테이블을 알게 됐고, 평소 관심도 없던 제네바 스피커까지 장바구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8만원짜리 LP가 60만원대 턴테이블과 110만원대 스피커까지 이어진 것이다. 물론 둘 다 당근에서 정가보다 저렴하게 구했지만, 그래도 8만 원짜리 음반을 듣겠다고 80만원이 넘는 돈을 더 썼다. 그 과정에서 캠핑이나 자전거 마니아들이 왜 장비 갖추기에 빠져드는지 이해되기도 했다. 사실 우리 집엔 이미 많은 욕구들이 진열돼 있었다. 공기청정기, 식기세척기, 디자인 가구와 조명까지. 공기가 쾌적했으면 좋겠다는 욕구, 설거지 노동을 줄이고 싶다는 욕구, 내 취향을 반영한 가구를 두고 싶다는 욕구. 돌이켜보면 욕구는 또 다른 욕구를 불러온다. 그리고 그 욕구는 소비와 세트다. 욕구를 해소하려면 결국 뭔가를 ‘사야’ 하니까.
턴테이블과 스피커, 그리고 LP가 나란히 진열된 거실장을 바라봤을 때의 기분이란. 퍽 만족스러우면서도 이상하게 부대꼈다. 마치 매운 게 너무 먹고 싶어서 틈새라면 제일 매운맛을 먹었다가 배를 움켜쥐며 끙끙거리던 때처럼. 욕구의 과다 복용은 이따금 속을 불편하게 만든다. 무언가를 산다는 건 단순히 물건을 들이는 일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더 큰 마음, 어쩌면 갈망같은 걸 들여오는일이다. 그 갈망이 정도 이상으로 많아지면 그 무게에 마음이 짓눌리게 된다.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욕구가 쉽게 침투하게 됐을까? 뭔가를 하고싶다 혹은 사고싶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는 설레는 일이지만, 단순하게 물건을 사서 해결했을 때, 어떤 소비는 그 포만감이 썩 오래가지 않는 것 같다. 미디어로 과거보다 더 쉽게, 더 빨리, 더 많은 욕구를 갖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지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