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넷플릭스처럼

너는 왜 살아?라는 질문에 답하기

by 설다운


어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다.

“너는 왜 살아?”


마치 기출문제 같았다. 사실 똑같은 질문을 작년에도 들은 적이 있다. “다운은 왜 살아?” 그때는 너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라 당황했다.


‘산다’라는 말 앞에 ‘왜’라는 질문이 붙이면 묘하게 막막하고 억울해진다. 사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죽음뿐인데, 죽을 순 없으니 사는 거 아닐까? 그렇다고 “죽지 못해 산다”라고 할 수도 없고.


이 세상에 태어난 건 내 의지가 아니라는 사실부터 거슬러 올라가 봤다.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입사지원서를 낸 순간에 있고,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심한 순간에 있지만, 태어난다는 건 스스로 선택할 수 없으니 이유가 없다. 삶의 이유는 살아가면서 각자가 생각할 문제인 것이다. 나는 그저 살아만 왔지 이유나 목적 같은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너는 왜 사냐는 철학적인 질문에 눈만 끔뻑일 수밖에.


그래서 생각해 봤다. 나는 왜 살까. 그러니까, 산다와 죽는다에서 죽는다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사실 복잡하게 생각할 게 없었다. 살아내는 시간이 재밌으니까.


나는 이제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해마다 어김없이 한 뼘 자란 나를 돌아보며 ‘그땐 참 어렸지’하는 게 재밌다. 4년제 대학에 못 가면 인생 망하는 줄 알았는데 안 망한 나를 보는 게 재밌다. 서른셋이면 30평대 아파트, 멋진 차, 배우자가 있을 줄 알았는데 셋다 없는 게 재밌다. 연애 경험이 늘면 이별도 잘 극복할 줄 알았는데 헤어질 때마다 삶이 전복되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그다지 특별할 일 없이 지나간다고 생각했는데 1년만 지나도 가치관과 취향이 달라지는 스스로가 재밌다. 내 영원한 소울메이트는 너야,라고 확신했던 친구와 손절하고 6년 만에 그 자리를 메울만한 친구를 새로 사귀었다는 사실도. 운동을 끔찍이 싫어하는데 1년 넘게 꾸준히 해낸 사실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모든 일이 내 삶을 새로운 모양으로 빚어내고 계속해서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게 재밌다.


OTT 중독자로서 비유하자면, 내 인생은 마치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넷플릭스 시리즈 같다. 별것 아닌 에피소드가 재밌어서 계속 ‘다음화’를 눌러버리는 드라마. 시즌 3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7, 8까지 이어져서, 대체 어디까지 재밌나 보자 하며 멈출 수 없는 드라마 같다.


그래서 어제 친구의 질문에 난 이렇게 답했다.

“놀려고!”


회사를 다니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인간관계에서 속 끓이는 것도 삶이라는 넓은 차원에서 보면 다 ‘노는 것’의 연장이다. 열심히 놀아야 기쁨이든 슬픔이든 깨우치는 것이든 있을 테니까. 그래야 삶이 더 재밌어질 테니까. 노는 것의 연속. 그 안에서 찾는 즐거움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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