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저녁
장마는 모름지기 비가 제대로 오고 바람도 좀 불고 해야 장마답다. 가끔씩 천둥 번개도 등장해주고 힘찬 빗줄기로 나뭇가지도 좀 흔들어줘야 제멋이다.
요즘은 장마철에 든다는 말뿐이지 비가 오는 것도 아니다. 우중충하니 마치 제 속을 감추고 우물거리는 사람 보는 것 같아서 슬슬 짜증이 일려고 한다. 몸 상태도 저기압 때문인지 찌뿌듯하고.
비바람 이는 날, 그것도 아주 열렬하니 흠뻑 내리는 날, 집에서 앞의 숲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코 앞에서 스펙터클한 영화를 아이맥스 스크린으로 보는 느낌이다. 거센 비가 올라치면 조용하던 나무들이 갑자기 수런수런 이내 소란해진다. 몸부림치듯 온 몸을 휘청거리며 흐느끼기도 하고 산발한 머리채를 휘두르기도 한다. 그러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뿌연 운무가 일면서 내 앞의 유리창도 푸른 산도 흐려진다.
이런 날 창밖에 숲을 마주하고 앉아 책을 보는 것도 좋다. 밖은 빗소리, 아파트 홈통을 타고 내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앞 베란다에서 느긋이 책을 보는 맛은 내가 즐길 수 있는 여름의 즐거움 중에 하나다.
난 오늘 모처럼 맘에 드는 책을 하나 만나서 마음이 뿌듯하다.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저녁 얼른 먹고 독서등을 켜고 앉아 책 읽을 생각에 맘이 설렌다.
전에 "승려와 철학자" 책이 절판되어서 남의 책을 카피, 제본해서 지니고 있는데 그 철학자 아버지와 대담을 했던 아들 '마티유 리카르'와 서울에서 살며 명상 수행을 배우는 뇌성마비 철학자 알렉상드르 졸리앙, 그리고 심리치료에 최초로 명상법을 도입한 정신과 의사 크리스토프 앙드레, 이 세 명의 대담집이다.
오늘은 이 책으로 행복한 저녁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