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마실
아주 오래전 우리가 나마시골 살 때의 이야기다. 지금이야 시에 편입이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여느 시골 마을이나 다름없었다. 확성기를 통해 이장님네 전화를 공용으로 쓰고 백중날이면 온 동네에서 추렴을 해서 닭을 삶고 막걸리를 받아 동네잔치를 벌이던 곳이다. 동네 잡일은 죄다 울력으로 해결했다.
그러던 어느 해 전주천 위로 놓인 허름한 동네 다리가 넓고 튼튼한 새 다리로 놓이고 아스팔트로 동네 진입로가 포장되었다. 여름이 되자 이 마을 진입로나 다름없는 그 새로 놓은 다리 밑으로 사람들이 놀러 오기 시작했다. 그저 한 두 명 오는 것이 아니라 더러는 대형 천막까지 냇가에 치고 단체로, 또는 가족 단위로 대거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곱게 놀다만 가는 것이 아니었다. 놀고 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비닐 쪼가리, 페트병, 음식 찌꺼기까지 온갖 쓰레기와 악취가 넘쳐났다.
마을 주민들과 피서객들 사이에 다툼이 잦아졌다. 부녀회에서는 잔소리하고 막아서 될 일이 아니다 싶어 궁리 끝에 아예 다리 밑에서 평상 장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피서지로 소문난 유원지 다리 밑에서 장사들이 하듯이 평상을 물가에 놓고 사용료를 받기로 한 것이다. 그 돈을 모아 마을 기금으로도 쓰고 쓰레기도 관리하고 일석 이조라 생각한 것이다. 명목은 마을 냇가 관리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것으로 하고. 마을에서는 앵글로 평상 틀을 짜서 합판을 얹고 그 위에 노란 장판을 입혀서 몇 개의 평상을 만들며 영업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전에는 쓰레기 버린다고 물놀이 객들과 입씨름이 수시로 일었는데 일거에 '원수'였던 피서객이 '고객'으로 바뀐 것이다.
다리에는 아침부터 온갖 차들이 빼곡히 주차하기 시작했다. 평상을 놓으려고 물길이랑 자갈도 가다듬고 적당한 다리 밑 그늘에 마을 공동 기물인 평상을 배치한 덕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상당 만원이라는 돈을 군말 없이 지불했다. 마을 부녀회 회원들이 교대로 큰 전대를 차고 나와서 장부를 써가며 평상 값을 받고 관리를 시작했다.
문제는 우리였다. 전에는 우리 애 친구들이 여름이면 우리 집에 와서 수시로 놀다 갔다. 방학 때는 1박 2일로 놀다 가는 것을 당연히 알았다. 한데 마을에서 다리 밑에 최대한 많은 평상을 놓고부터는 엉덩이 대고 앉을 그늘이 사라진 것이다. 전 같으면 다리 밑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어른들끼리 한가하니 수다 떨며 음식을 준비해서 애들 먹이고 놀던 재미가 사라진 것이다. 평상은 아침 일찍 와서 차지한 사람들로 비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아이 손님들을 우리 집에서 아예 수영복으로 갈아입혀서 다리 밑으로 데려다줬다가 한동안 놀았겠다 싶으면 슬슬 차를 가지고 나가 태워 왔다. 신이 나서 떠들고 노는 녀석들이 고픈 배를 집에 와서 왁자지껄 먹고 마시며 채웠다. 다리 밑의 인파가 빠지고 조용해질 때쯤이면 우리의 어린 손님맞이 일과도 끝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내외가 맥주를 들고 느지막이 놀러 왔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달이 밝아 취흥이 돋은 김에 시냇가에 나가보기로 했다. 미쳐 생각하지 못했는데 해거름녁이면 피서객이 다들 돌아가서 냇가는 조용하고 환한 달빛에 괴괴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평상은 시원한 골바람이 부는 다리 밑 물길 위에 놓여 있어서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평상 아래로는 물소리로 귀가 즐겁고 바람이 서늘해서 몸이 즐겁고, 누워서 바라보니 달빛이 수면에 은빛으로 반사되어 꿈결인 듯 아름다웠다. 다 함께 평상에 누워 심산유곡에 온 듯 여름밤을 맘껏 즐겼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종종 해가 지면 시원한 맥주에 안주를 챙겨서 다리 밑으로 마실을 나갔다. 특히나 보름달이 뜨는 날은 환상적이었다. 달빛으로 심신이 정결 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물 위의 평상에 누워서 수면을 거꾸로 보고 있으면 그 그윽함에 얼마나 행복했던지... 지금도 후덥지근한 여름밤 아파트 앞 산에 달이 둥그렇게 오르면 그 다리 밑이 그리워진다. 그 훤칠하니 다가오던 여름밤과 은은한 달빛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