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것

솜이불을 거풍 하며

by 시우

집 정리를 하며 아무리 아깝고 비싼 것이라도 미련 없이 버리는데 별 망설임이 없었지만 친정 엄마가 결혼 때 해주신 솜이불은 차마 버릴 수 없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목화솜 이불이 지금도 눈처럼 새하얗게 이불보에 싸여있다. 친구분들 중에 소위 팔자 좋은 분들만 불러서 이불 홑청을 뜨며 준비하셨을 그 이불. 당시에는 지금처럼 침대 생활을 하거나 손님을 쉬이 들여 숙식 대접하는 일이 드문 시대가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쓸 겨울 이부자리와 손님용 두 채의 이부자리가 두툼한 게 실하다. 차렵이불이나 홑이불은 아마도 이미 사용하고 그 효용 기간이 끝나 사라졌을 것인데 이 손님용 두 채와 내 것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나도 처음부터 침대를 사용했기 때문에 겨울용 이불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여러 번의 이사 동안에도 살아남아 있는 솜이불. 당시 목화솜뿐 아니라 명주솜을 넣어 가볍고 더 따스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지금 보기에 무겁고 두껍기는 매일반이다.

낑낑대며 옥상에 올라가 장마 틈새로 오랜만에 뜬 햇살 아래 이부자리를 널면서 세상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절대로 아이들에게 형체 있는 물건을 남겨주려고 하지 말 것'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전에 내가 보고 귀하게 여기며 모셔두었던 전집류와 단행본 책을 일 톤 트럭에 실어 버릴 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상하 두 칸으로 나뉘어 세로로 인쇄된 옛 글자체의 책, 겉은 하드커버에 금장이 박혀 있어 대를 물릴 거라 생각했고,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어 모아 왔던 책들이었다. 그러나 이미 내 아이들의 눈높이나 지금 시대와 한참이나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내린 씁쓸한 결정이었다..


전에 외할머니께서 자신이 평생을 애지중지 사용하시던 '싱거 미싱'을 재봉틀 기름으로 윤나게 닦으시며

"이것도 나 죽고 나면 어디로 사라질지 모르겠다. 내게나 귀하지 이내 없어질 물건이지."

하실 때마다 왠지 서러운 맘이 들어서

"할머니 내가 있잖아. 늘 할머니 이야기하며 잘 쓸 거여. 절대로 버리지 않을 거여."

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미싱도 친정 엄마 눈이 어두워지신 이후로는 그대로 모셔져만 있다. 손틀을 쓸 일이 없는 세대가 되었고 이 손녀가 집안을 살뜰히 가꾸고 재봉질도 하는 그런 생활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기 때문이다.

"물건도 다 쥔이 있고 시대가 있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는데 오래된 것은 사라지는 것이 세상사 이치지."

라시며 돋보기 너머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시며 웃던 할머니의 음성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우리 할머니는 이런 상황을 이미 미루어 짐작을 하셨었을까?

물건에 대한 집착보다 세상의 이치를 미리 아신 할머니의 지혜는 지금도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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