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

추억의 동춘 서커스

by 시우

전에 TV프로에서 한 젊은이가 태양의 서커스 입문을 위해 피나게 노력하는 과정이 소개되었다. 정식 단원도 아니고 인턴 직원인데 오디션을 통과해 뽑힌 그는 감격해마지 않았다. 서커스 단원이 영광스러운 시대다. 1984년 캐나다에서 창단된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는 전 세계에서 17개 공연을 펼치고 있는 인기 서커스단이다. 연 매출 8.5억 달러, 연간 티켓 판매 550만 장 규모에 달해 서커스를 하나의 사업 모델로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30여 년 동안 6 대륙 450개 도시에서 1억 5500만 명 이상의 관객과 만나며 세계적 명성을 쌓아왔다. 태양의 서커스는 ‘퀴담’(2007) ‘알레그리아’(2008) ‘바레카이’(2011) ‘마이클 잭슨 임모털 월드투어’(2013) ‘퀴담’(2015)에 이어 작년에는 '쿠자'로 국내를 찾았다. 우리나라 티켓 가격도 오페라 티켓 값과 맞먹는다. 어느 틈엔가 이 '서커스'는 현대의 고급 대중예술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의 서커스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뭐니 뭐니 해도 내게 서커스 하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동춘 서커스'다. '태양의 서커스'는 보지 않았지만 독일의 서커스나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서커스는 봤다. 그래도 내 기억은 서커스 하면 자꾸만 '동춘 서커스'를 떠올리게 된다. 마치 모든 서커스의 원조가 바로 동춘 서커스인 것처럼.


예전 구경거리가 귀할 때 난장이나 단오절 또는 무슨 박람회처럼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늘 '동춘 서커스' 천막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로 넓은 종합경기장에 자리를 잡곤 했는데 자고 나면 마술처럼 뚝딱 거대한 천막이 쳐져 있었다. 그뿐인가, 그 앞에는 작은 원숭이가 금실로 수 놓인 빨간 조끼를 입고 매표소 입구 앞에 앉아서 재롱을 부리고 있었다. 집안 어른을 조르거나 내가 아껴놓은 용돈을 털어 친구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입장을 할 때부터 이미 우리는 색다른 세계에 들어선 것 같았다. 왠지 그 천막 안은 옳고 그름도 시간의 흐름도 없는 그야말로 별천지처럼 느껴졌다. 동네 아저씨처럼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화려하지만 소맷부리가 닳은 양복을 입고 나와 신기한 마술도 보여주고 아슬아슬한 공중 묘기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 친구들 사이에는

"저 서커스단 애들은 죄다 부모 없는 애들 이래. 그런 고아들을 잡아와서는 밥은 안 주고 식초를 먹여서 뼈를 낭창낭창하게 만들어 서커스를 가르친대."

라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통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서커스 천막을 기웃거리거나 지나갈 때면 왠지 호기심과 더불어 몸이 사려지고 혼자서 지나가기는 겁이 나곤 했다. 요란하게 화장을 한 내 또래로 보이는 여린 애들이 짝지어 나와 제 몸의 몇 배나 되는 항아리를 돌리거나 접시 돌리기, 공중 줄타기, 공중 그네 등의 묘기를 부렸다. 한데 하필 앞에 앉은 내 눈에 올 나간 그 애의 스타킹이 종종 눈에 띄어 안쓰러웠다. 그 신묘한 묘기가 놀랍고도 안쓰러워 부러 손바닥이 닳도록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때, 5,6 학년쯤이었나 친구랑 서넛이서 서커스장을 갔다. 서커스라기보다는 유랑극단이라 불리는 게 더 어울리는 구성이었다. 성황이었던 박람회도 이미 다 끝나가고 사람들도 뜸해 파장 분위기가 감도는 때였다. 입장료도 헐해서 친구들이랑 들어갈까 말까 기웃거릴 때였다. 키는 훌쩍 컸지만 나이는 우리보다 조금 위인 듯한 사내아이가 매표소 입구에서 우리에게 서슴없이 다가와 구경하라며 권했다. 목소리도 시원스럽고 태도도 활기차고 잘생기기까지 했다. 우리는 그참저참 심심하던 때라 표를 끊어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한데 아까의 그 애가 거기서 목판에 뭘 담아서 팔고 있었다. 아마도 음료수나 껌 등속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혀 부끄러움도, 거침도 없이 제 또래의 우리들 앞에서도 농담까지 하며 관객인 어른들과 물건을 팔며 당당히 구는 게 신통해 보였다. 그 애에게 주의가 가 있었는데 그 애는 프로그램의 1부가 끝난 막간에 사회자의 거창한 소개 후 무대로 올라가더니 노래를 했다. 그것도 영어 가사가 섞인 우리는 처음 듣는 이국적인 노래였다.


"원첸마하~~ 내 마음을 받아주오~~"

마이크에 아주 익숙한 듯 인기가수 뺨치는 노래실력에다가 무대 위의 자연스러운 매너에 우리 친구들은 죄다 넋이 나갔다. 도저히 저 애가 부모 없이 끌려와서 식초를 먹으며 키워진 애로는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도 다 같은 느낌이었나 보다.

"곡마단 단장도 아들은 있을 거 아녀?"

"맞아, 그 단장의 아들일지도 몰라."

"그려, 그냥 아버지 돕는 셈 치고 오늘만 나온 것인지도 모르지."

"아까 보니 시계도 차고 있더라."

"그나저나 아까 그 노래는 뭐냐? 저 애는 영어도 아나보다."

"그러게, 한 번도 못 들어본 노래다. 그런데 노래는 정말 잘 헌다."


한데 이상한 것은 그 국적불명의 "원첸마하~"라는 가사와 멜로디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는 것이다. 대학교 때 한창 팝송에 빠져있을 때 그런 비슷한 노래가 없나 올드 팝을 헤적여 봤다. 그것은 joe cocker의 "unchain my heart "였다. 누군가가 번안해 노래한 것을 그 아이가 적당히 불러 젖혔던 것. 하지만 조 쿠커가 부른 노래보다도 동춘 서커스의 그 애가 불렀던 '원첸마하~'가 지금도 더 멋지게 기억에 남아있다.


동창들이 모인 자리에서 "서커스 하면 뭐 생각나는 거 없어? "물었더니 일 초도 안되어 튀어나오는 대답."동춘 서커스! 구멍 난 타이즈, 추워 보이던 아이들, 을씨년스럽던 풍경.... 그러나 가슴 졸이며 보았던 화려한 공중그네랑 줄타기 등등이지."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같은 시대를 관통해온 사람들의 공통된 이미지 같다.

전에 금강산 관광 때 가서 보았던 북한 교예단의 공연도 그때와 비슷한 심정으로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신나고 화려하지만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애잔해지는 공연. 궁금해서 동춘 서커스를 찾아봤더니 여전히 동춘 서커스는 존재하고 공연도 하고 있었다.


1925년 일본 서커스 단원이었던 동춘 박동수에 의해 창단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커스단이다. 목포에서 결성되었고 196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허장강, 배삼룡, 서영춘, 남철, 남성남 등의 연예인을 배출하기도 했다. 지금은 시화호 건너 초입에 상설 공연을 하고 있다는데 아무도 하려는 사람이 없어 단원들은 이미 중국인으로 채워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동춘 서커스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이나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여전히 나 어릴 때의 분위기인 듯싶다.

세월은 흘렀어도 그 시절 그대로인 동춘 서커스를 언제 한 번 가보고 싶다. 세련됨과 화려함의 끝이야 한정 없겠지만 지난 시간의 향수는 아무데서나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제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도 맛볼 수 없는 추억을 파는 곳.

그래, 내게 있어서 "서커스는 역시 동춘 서커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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