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일

작은 우동집

by 시우

몇 달 전 일이다. 모처럼 시간을 내서 시내에서 한가하니 시간을 보내기로 한 날이다. 독립 영화관에서 영화도 보고 천천히 거리 구경을 하고 괜히 천변도 한 바퀴 돌고 나서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전에 TV 달인 프로에 국수 장인으로 나온 적이 있는 가게라고 남편이 데리고 간 곳은 작은 우동집이었다. 어찌나 작은지 처음에는 찾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와 샅샅이 뒤진 끝에야 겨우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다른 가게들처럼 방송국에서 주는 달인 명패를 내걸거나 하지 않아 '이 집이 맞나?' 싶어 찾아보니 한쪽 구석, 물건을 수납하는 장 위쪽에 명패가 대충 놓여 있었다. 내가 가게를 찾지 못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유명세를 이용해서 손님을 더 맞으려고 가게를 확장하지 않고 오히려 가게 수리를 이유로 좀 쉬었다가 다시 문을 열어, 자신이 감당할 음식 외에는 욕심내지 않은 작은 가게 탓이 컸다.


작은 테이블이 5개, 손님이 전부 차 봐야 16명인 이 작은 가게는 깨끗했고 무엇보다 젊은 주인장의 얼굴이 해맑고 선해서 마음에 들었다. 줄을 서서 먹기도 하는 맛집으로 유명하다는데 막 저녁 식사를 재개한 5시여서인지 먼저 온 손님 한 명 외에 가게는 비어있었다.


일본 음식이라고는 초밥이나 회 정도밖에 몰라서 주인장에게 추천을 부탁했더니 온면 중에서 하나와 면발을 느껴보라며 냉면 중에서 하나를 골라줬다. 그는 국수를 삶고 준비하는데 15분쯤 걸릴 거라며 양해를 구했다.

천천히 둘러보니 벽에는 수제 면발 만드는 과정을 그림과 함께 설명해서 붙여놨는데 전부가 일본어라서 읽을 수는 없었지만 전에 방송에서 사누끼 면의 제조과정을 본 적이 있어서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식탁 위에는 작은 메모판에 "일본 가카와현의 사누키 우동면을 그대로 재현했으며 소금과 밀가루로만 제면 했고 츠유 다시는 가쓰오부시와 천연 다시국물로만 만들었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주인장의 자부심 내지는 정성이 엿보여 내가 맛볼 음식에 기대가 갔다.


국수에 얹지 않고 따로 나온 튀김은 바삭하니 연하고 맛있었고 음식은 슴슴하고 담백했다. 면발은 아닌 게 아니라 차지고 쫄깃했는데 냉면에서 그 진가가 더 드러났다. 레몬즙을 짜넣고 장국에 비벼 냉면을 먹다가 문득 우리 할머니의 국수가 생각났다.


할아버지는 국수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더운 여름철에는 자주 칼국수가 상에 올랐다. 주로 저녁 메뉴로 기억되는데 칼국수를 하는 날은 아침부터 준비해야 했다. 밀가루에 생콩가루를 섞고 소금을 넣어 오래오래 치대셨다. 한껏 오래 치댄 반죽을 암반에 밀어 칼로 잔잔히 썰어낸 국수를 일부는 뜨거운 물에 그냥 삶아 차게 씻어 건져내 양념장에 냉면으로 비벼 먹기도 하고 육수에 넣어 훌훌 불어가며 칼국수로 먹기도 했다.

그때의 그 쫄깃했던 식감이 기억났다. 엄마가 늘 하시던 "그 어디서도 우리 어머니가 만드시던 그 쫄깃하고 맛있던 국수는 맛볼 수가 없다."던 말씀도 생각이 났다.


때 이른 저녁을 기분 좋게 먹고, 보랏빛 갈퀴나물이 지천으로 흐드러진 천변을 지나 집으로 오는 길은 마냥 흐뭇했다.

모든 가치가 오로지 돈으로만 치환되고, 모두가 개처럼 돈을 벌려고 애쓰다 보니 정말 개판이 되어버린 듯한 세상에서 귀한 사람들을 보고 온듯해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며 만족을 추구하고 자신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접하는 삶을 만난 기쁨으로 그날 저녁은 더없이 싱그럽고 향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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