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내 사랑

그때 그 만화 가게

by 시우

몇 년 전 신문에서 만화가 '이상무' 선생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만화 '비둘기 합창', 여학생에 연재되었던 '노미호와 주리혜'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야구 만화의 주인공 '독고탁'은 더없이 익숙하지만 정작 이상무 선생의 얼굴은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보면서 처음 뵈었다. 원래 그림은 그 주인을 닮게 마련이라 그 역시 비둘기 합창, 독고탁의 '이상무'에 어울리는 슴슴하면서도 선해 보이는 얼굴이었다.(당시에 '이상무'라는 예명인지 본명인지가 이상해서 더 기억에 남아있었다) 덕분에 예전 내가 즐겨 읽으며 궁금했던 박기정 화백의 얼굴도 볼 수 있었다.


전에 초등학교 때 장래 희망을 쓰라고 하면 써야 할 세 가지 중에 하나는 늘 만화가였다. 좀 자라서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월트 디즈니였고 요즘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 영화는 빼지 않고 본다. 중, 고등학교 때는 TV에서 톰과 제리 만화 10여분 해주는 것을 일주일 내내 손꼽아가며 기다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봤었다. 만화가는 천재라는 등식이 내겐 확고부동하게 서 있다. 스토리 전개뿐만 아니라 그 기발함, 다양한 표정과 동작 등등은 인간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물론 디즈니 영화 제작 방식을 알고 나서는 이해가 되었지만 어려서 나를 키워준 그 만화에 대해선 지금도 전과 다름없는 경이와 찬사를 바칠 뿐이다.


사실 만화 영화는 한참 후의 이야기고 우리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앞 만화가게는 꿈의 장소였다. 만화책이 가득 꽂힌 사방의 책장을 보면 숨이 멎게 행복했다. 일원에 세 권이었던가 어쨌던가 기억도 희미 하지만 그것도 친구랑 함께 걸상에 엉덩이만 붙이고 앉아 함께 읽다 보면 기가 막히게 재미나서 그다음 권을 보지 않고는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그러나 넘어가는 해를 보며 아쉽게 가게를 나와 집까지 걸으며 오는 길, 집에 가서 꾸중 들을 생각보다 아까 읽은 만화 세계에 빠져서 마냥 행복했다.

그 안에서 즐겁고 슬프고 아쉽고... 그 무한한 세계를 동경하다 못해 내가 직접 그린 만화책만도 몇 권이 되었다. 주로 안데르센의 동화나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짧은 동화의 내용을 정성스레 만화로 옮겼는데 지금 그 어떤 것을 해도 그때의 그 몰입감이나 행복감을 다시는 맛볼 수 없을 것 같다.


난 나중에 만화가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월트 디즈니를 알기도 전부터 수 없이 했었다. 만약 우리 집 가까이에 내가 좋아하는 만화 작가가 살았다면 난 분명히 찾아가서 문하생을 자청했을 것이고 뭔가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실은 미대를 가고 싶었지만 어설프게나마 내가 그럭저럭 공부를 하는 데다 우리 집이 나 미술을 시킬만한 형편이 아니라서 스스로 포기했을 뿐이다. 그러나 만약 애니메이션 학과가 지금처럼 있었다면 아마도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내겐 근대소설 '상록수'의 이미지로 남은 '훈이'의 '박기정', '박기준', '산호', 순정만화의 여왕 '엄희자', '조원기' '송순희', 우리의 유쾌한 모범생 '땡이'의 '임창'은 내겐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그들의 만화에 빠지면 하루 온종일도 모자랐다. 자라서는 '캔디'를 빼놓을 수 없고 결혼해서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쌍문동에 사는 '아기공룡 둘리'에 빠졌다. 그리고 귀여운 성인 만화 '고인돌'의 박수동까지로 이어졌다. 까치의 이현세나 허영만에 이르면 내가 가까이할 군번이 아니었으나 허영만은 몇 년 전 만화 '식객' 한 질을 죄다 섭렵 함으로써 역시 애독자가 되었다. 여러 말 할 것도 없이 내 어린 날의 세계를 풍성하게 해 준 만화에 대해서는 그 어떤 찬사를 바쳐도 모자랄 지경이다. 어려서 그들을 닮고 싶어서 남는 종이 여백만 있으면 수도 없이 그리던 그 만화 그림이라니...


그뿐인가 집에서는 사람 그림을 그리고 오려서 옷 입히기 놀이를 하느라 집의 종이가 남아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의 등살에 흰 종이를 뇌물로 받아가며 못 이기는 척 옷 입히기 그림을 그려줬다. 당시 난 우리 반에서 가장 잘 나가는 만화가였다. 집에 상자 가득 주인공과 가지각색 옷을 오린 것이 가득 있어서 늘 동생과 그들을 주인공으로 소꿉놀이를 했고,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그걸로 노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나중에 내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보니 옷 입히기 그림이 인쇄된 종이를 문방구에서 팔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직접 그려서 놀던 그 다양함과 기발함 풍성함에는 반의 반도 따라올 수 없었다.

내 동생이 의상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어려서의 그 놀이 역할이 한몫하지 않았나 짐작해볼 뿐이다.

지금 다시 그 시절 그때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좋은 만화가 주는 감동과 영향력은 좋은 문학작품 못지않았다.


나중에 나이 들어 손주가 생기면 내 손주에게 주는 그림책을 그려보고 싶다. 만화가 되었던 삽화가 되었건 어리고 순수한 마음에 영향을 주는 아름다운 그 세계는 내가 접근해보고 싶은 곳이다. 지금은 정서도 메마르고 감성도 형편없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혹시 아나? 나이 들면 다시 아이가 된다고 하니 다시 노인 아이의 동심으로 돌아가서 손주와 색칠하고 그림 그리고 놀면서 행복해할지. 그때가 나도 사뭇 궁금해진다.


(국민학교 때 나의 우상이던 만화가 엄희자 씨와 조원기 씨 부부의 소식을 얼마 전 미국에 사는 친구로부터 들었다. 종교적 이유로 일찍이 도미해서 정착한 그분들은 그쪽 애니메이션계에서 인정받으며 일을 하고 계신단다. 사진으로 만난 그분들은 여전히 맑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선생님의 만화를 그리워하는 친구가 있다."라고 친구가 이야기도 해 놨다 하니 그분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캘리포니아에 한 번 가야 할 것 같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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