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과 돌아옴

난 이대로 괜찮은가?

by 시우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되돌아올 곳이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말이다. 잠시의 휴식이나 새로운 배움 또는 제각기의 목적으로 우리는 잠깐이나 몇 년씩 집을 떠난다. 그리고 기간이 다 하면 되돌아와 원래의 일상을 이어나간다. 사소한 일상에 뿌리내리고 나서야 다음의 크던 작던 발걸음이 가능한 일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화한 "쇼생크 탈출"에서 보면 일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낸 죄수들이 가석방되어서 사회에 적응하는 모습이 나온다. 레드(모건 프리먼 역)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40년 만에 세상에 나온다. 그리도 원했던 자유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시간의 공백 때문에 이미 이 사회의 흐름과는 괴리감이 크고 그를 따듯하니 맞아줄 가족도 없다. 배정된 직장에서도 겉돌고 모든 게 이질적이라 맘 붙일 곳이 없다. 그제야 그는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만 친구 부룩스의 심정을 이해한다. 레드 역시나 현실과의 보이지 않는 벽 때문에 자살을 생각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감옥의 동지 앤디를 떠올리고 새로운 길을 나서게 된다. 그가 발붙일 현실의 끈을 발견하고 희망이 생긴 덕이다.


나 역시 내 일상을 벗어나 있다가 돌아와서 다시 내 궤도에 진입하기까지에는 과정이 필요하다. 짧건 길 건 간에. 되돌아왔을 때 집안에 밀린 일이 먼저 나를 잡는다. 가까운 이에게 전화로 나의 복귀를 알리는 일에서 시작해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정리하는 노동의 과정을 통해 내 둥지를 확인한다. 내가 치러야 할 공과금이나 우편물들을 점검한다. 늘 접하던 방송이나 신문을 접해서 시간의 공백을 메우고 내 주위 사람들과의 약속이나 참석할 일들을 챙겨본다. 그러고 나서 내 자리에 앉아 읽던 책이나 필기구 등등을 확인하고 햇빛을 받으며 느긋이 앉아서 쉴 때에야 난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회복된 내 일상의 안온함에 저으기 안심을 한다. 만약 영화 속의 레드처럼 아무런 사회적 정서적 끈이 없다면 같은 공간에 되돌아왔다 해도 공중에 떠도는 느낌일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떠나는 일도 되돌아오는 일도 가뿐해졌다. 제일 먼저 직장의 일을 챙기는 복잡함과 머리 무거움, 그 후 별일 없음에 안도하던 그 중압감이 없어졌다. 나를 둘러싼 끈을 하나 덜어내고 나니 떠남과 복귀가 훨씬 수월하고 가벼워진 것이다. 그저 맘먹으면 휘리릭 떠날 수 있다.

몇 달 전 여행에서 내가 챙겨간 짐은 딱 한 줌이었다. 세면도구와 속옷, 상비약과 크림, 여벌 옷 두 개가 전부였다. 핸드 케리 한 가방의 반의반 정도밖에 채우지 않았다. 기타 필요한 것이 있으면 현지에서 사면되겠지 싶었다. 호화로운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니 말이다. 사실 그동안 다녀보면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행의 달인인 한 선생님이 14일 일정 동안 챙겨간 짐이 세면도구, 속옷과 기능성 조끼 하나였던 것에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정말 그 정도 이상의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가벼운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며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을 확인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존재의 근원을 유지시켜주는 유형무형의 것들과 여유를 위한 것들, 때로는 없는 게 더 좋을 거추장스러운 것들까지. 그를 위해 바치는 내 시간이 내 삶의 모습을 결정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늘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며 지낸다. 공간의 이동이건 정서적 변화 건 때로는 일이나 사람과의 관계건. 어차피 이번 생도 시간이 되면 자연스레 떠날 수밖에 없듯이. 객지에서 돌아와 자리하는 과정을 반추해보며 내가 자리한 모습을 다시 한번 거리를 두고 점검해본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