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아파트는 산 중턱을 밀어 지었다. 그래서 입구 쪽 경사면이 제법 가파르고 길다. 차로 지나다닐 때는 몰랐는데 걸어 오르다 보니 오르막 길가 가로수 밑으로 작은 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다. 20여 미터 간격으로 두 개. 혹여 누가 가져갈까 봐 옆 가로수 밑동에 밧줄로 야물게 묶어놓기까지 했다. "웬 의자?" 하는 시선으로 무심히 보며 지나쳤다.
엄마가 척추 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으셨다. 큰 통증은 사라졌지만 조금만 걸어도 허리가 아프셔서 집 근처의 성당에 갈 때도 두어 번을 쉬어서 가신다고 했다. 그래도 운동을 해야 하니 차는 타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제야 우리 아파트 오르막에 놓인 의자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도 우리 아파트는 오르막 입구가 힘들다고 말씀하셨었다.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가슴이 열리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내 앞에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가슴이 따듯한 사람에게만 그 의미를 드러내는 가치를 지닌 것들이.
2.
친정어머님 병이 위중해 서울의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주기적으로 지방에서 올라오셨다. 방사선 치료는 너무 힘들어 평지를 걸을 기력도 모자랐다. 친구의 집은 옹색한 연립주택 3층이었다. 치료를 받는 기간동안 어머니는 결혼해서 서울에 사는 이 딸네 집에 묵으셨다. 숨찬 어머니를 위해 2층 참에 의자를 하나 놓아두는 것 외에 가난한 딸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머니는 힘겨운 투병 끝에 결국 돌아가셨고 딸은 그 층계참의 의자를 보며 엉엉 울었다.
내 친구의 가난했던 신혼 시절 이야기다.
3.
20년도 넘은 오래된 아파트라 제법 밑동이 굵은 나무들이 곳곳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어린이 놀이터가 보이는 주차장 옆의 작은 공터, 큰 나무 아래에 낡은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차를 주차하고 그 옆을 지나다 보니 의자 등받이 쪽에 작은 쪽지가 붙어 있다. 거기에는 "할머니가 앉는 의자니 치우지 말아 주세요."라고 씌어 있다.
몸이 불편해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부축을 받거나 지팡이에 의지해서 나오는 바깥 외출 때 앉아 쉬는 곳인가 보다. 아파트 관리인이나 또 다른 누군가는 당연히 걸리적거리는 그 낡고 볼품없는 의자를 치우려 할 것이고 그러면 할머니는 마땅한 쉴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앞의 놀이터에 놓인 나무 벤치는 그늘이 없었다.
손주가 써준 것인지 돌보미 아주머니가 써준 것인지 어설픈 글씨로 쓰인 그 쪽지가 붙은 빈 의자를 보며 한동안 내 맘이 그 의자에 머물렀다.
4.
오래전 조계산 송광사 뒤쪽 법정스님이 머무시던 수류화개실에 들렀다. 그곳에 있는 상좌 스님들도 법정 스님처럼 정갈한 듯 스님 타계 후 몇 년이 지났지만 뜰의 나무들도 암자도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스님이 아끼시던 매화도 이른 봄을 맞아 작은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 암자의 토방 한편에는 작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생전에 스님이 남은 목재로 손수 만든 의자다. 만약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아마 목수가 되었을 거라고 평소 스님은 말하곤 하셨다. 스님이 뜰 앞의 후박나무 아래 그 의자를 놓고 앉아 쉬시던 곳에는 이른 수선화가 노랗게 작은 꽃대를 무더기로 피워 올리고 있었다. 그곳이 바로 스님의 유골을 모신 곳이었다. 스님의 의자는 몇 미터 떨어진 토방에서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계산 송광사 뒤쪽 암자 수류화개실 토방에는 나무 의자가 떡하니 앉아있다.
법정 스님은 그가 가꾼 후박나무 아래 쉬고 계시고 대신 그의 의자가 그곳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