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말 모든 게 세계화되어가나 보다 싶게 느낄 때가 있다. 국경을 초월해서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 물론 이 말이 서구화 또는 미국화를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예전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변했다.
우리 동네에서 하던 요가를 스위스 요가 센터에서 그대로 할 수 있고, 인도 또는 미국의 명상 프로그램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센터를 찾아가서 할 수 있다. 타이나 베트남 음식점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브랜드화한 상품들도 세계 어느 곳에서 나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콜라나 피자 같은 먹거리에서부터 이케아 같은 가구 또, 가전제품, 자동차, 의류, 완구, 식품, 영화에 이르기까지. 마치 예전부터 익숙하니 써왔던 제품처럼 별 거부감이 없이 우리 생활 속에 파고 들어와 있다.
그러나 내가 촌스러워서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문화에서 오는 이질감이나 틈새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콜라나 피자는 내 손으로 만든 식혜나 빈대떡만큼은 그 속이 알 수 없어 보인다. (물론 이것은 세대 차이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명상을 하는 것 자체는 이질감이 없으나 인도식 의식이나 때로 수반되는 음악 같은 것은 마치 밥 속의 뉘처럼 껄끄러워 착하니 감기는 맛은 없다. 문화가 다른 나라의 영화나 소설을 접하다 보면 그들의 문화를 잘 몰라 어림짐작으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 이 문화라는 것은 돈을 주고 살 수도 배울 수도 없으니 시간을 들여 그 땅에 오래 살며 익히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내가 뭐 대단한 통찰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번에 산 칼 한 자루를 보며 든 이러저러한 생각이다.
전부터 어른들은 칼은 거저 주지 않았다. 마치 어떤 불문율이 있는 것처럼 선물로 칼을 줄 때조차 "자, 백 원짜리 하나 내놔라. 칼은 그냥 주는 게 아니란다." 하였다. 그렇게 천 원이나 백 원을 주고받은 칼이 많다. 독일, 스위스 일본 등지에서 온 유명하다는 칼. 그러나 이번에 내가 허드레로 쓰려고 산 국산 칼을 요즘은 제일 많이 쓰게 된다. 음식을 만들며 다른 칼을 쓰다가도 이 칼을 꺼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름 아니라 마늘을 다지기 위해서다. 그 어떤 칼에도 없던 칼 손잡이 끝의 넓적한 부분, 게다가 미끄러지지 않게 사선으로 처리되어 있어 마늘 몇 쪽을 다질 때는 참으로 유용하다.
마늘 다지기도 사보고 절구도 사봤지만 나물이나 국을 끓일 때 제일 마땅한 것이 이거다. 쓰던 칼 뒤꽁무니로 내리쳐 마늘을 자근자근 으깬 후 다져서 쓰는 것이 제일 편리하고 맛도 좋다. 물론 다량의 마늘을 쓰는 경우는 미리 갈아서 냉동해둔 마늘을 쓴다. 그러나 역시 나물을 무치거나 국에는 막 다진 싱싱한 마늘을 넣는 게 최고다.
중국 요리사들이 넓적한 칼 면으로 마늘을 내리쳐서 으깬 후 쓰듯이 우리 어머니들은 칼자루 끝을 사용했다. 대장간에서 나온 무쇠 칼은 나무 손잡이가 달려 있었고 두툼한 나무 도마 위에서 그 손잡이 끝으로 마늘을 다져서 온갖 음식을 만드셨다.
하찮은 칼의 손잡이에서 난 문화의 동질성을 느낀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은어를 알아보고 서로 은근한 친근감을 느끼듯이. 만약 이 칼을 외국인들이 쓴다면 이 손잡이 부분의 의미를 알아볼까?
아침 콩나물국을 끓이며 파를 썰고 마늘을 다지기 위해 이 칼을 꺼내다가 해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