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름이라 삼계탕을 가끔 먹게 된다. 삼계탕을 볼 때마다 이 삼계탕이 간절했던 작년 겨울이 생각난다.
여행 날짜를 받아놓고도 맘이 편치 않았다. 좀처럼 안 걸리던 감기가 출발 며칠 전에 걸려서다. 이거 저거 신경 쓸 것 많던 직장 걱정 없이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게 되자 이제는 감기라니. 그래도 더운 지방으로 가니 곧 나아지겠거니 맘 편히 먹고 출발했다. 그러나 감기는 여행 내내 나를 괴롭혔다. 내 감기는 주로 코와 귀로 온다. 비행기 안에서 기압차로 생기는 귀의 멍함, 갑갑함이 여행지에서 내내 이어졌다. 모든 소리는 멀고 갑갑하게 들리고 온 몸은 찌뿌듯한 게 사람의 활기를 떨어뜨렸다. 모처럼 쉬며 놀러 왔는데 쉬는 게 아니라 앓고 지내는 것이 나도 영 못마땅했다. 제까짓 몸은 죽지 않으면 나을 것이라 생각하고 내 맘 가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지금의 이 시간과 공간은 다시 오기 힘들 것이란 생각에서.
전날 저녁 함께 모여 다음날 동선을 계획하고 잠이 드는데 아침이면 몸이 상쾌하지가 않으니 나도 죽을 맛이었다. 입맛도 깔깔했다. 남들은 다 민소매나 반팔인데 나만 카디건이나 얇은 점퍼를 걸치고 다녔다. 가져간 하늘하늘한 여름 원피스는 꺼내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다른 식구들 걱정 끼칠까 봐 내색 않으려니 신경이 쓰였다.
그날은 오아후 섬의 동부 해안을 따라가 보기로 한 날이었다. 가는 곳마다 작은 해변이 곳곳에 있고 물은 맑고 이국의 풍광은 아름다웠다. 여행 지도에 나온 이름난 해변보다 마을 가까이에 있는 동네의 작고 한적한 해변에 더 정이 갔다.
가다가 해안길 건너편으로 초등학교가 보이는 해변에 차를 대고 쉬었다. 모래사장 쪽으로 기울어진 도로 가 큰 나무의 가지에 그네가 매어져 있었다. 학교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나 하교 이후에 여기 나와서 노는가 보다 생각하며 느긋이 비췻빛 바다를 보며 앉아 쉬는데 옆의 수풀이 움직이더니 닭 한 마리가 툭 튀어나왔다. 우리나라 토종닭이나 꼭 같은데 몸집이 훨씬 탄탄하고 날렵했다. 녀석은 이리저리 부산하게 돌아다니더니 갑자기 방향을 휙 바꿔 옆의 해안가 도로 쪽으로 성급히 달려갔다. 그 순간 퍽~하는 소리와 함께 도로 위로 빨간 차 한 대가 지나갔다. 멈칫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접한 생생한 로드킬이었다. 목숨이란 게 저렇게 부질없이 한 순간에 가는구나 싶은 망연함으로 잠시 멍했다. 그리고 저 닭이 학교 아이들이 키우는, 이름까지 붙은 것일지도 모르는데 아이들이 얼마나 찾을까 싶어, 가서 이 사고를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 이후로는 가는 곳곳마다 닭들이 보였다. 주차장, 해안가, 공원, 마을 근처, 트래킹 길목까지. 가만 보니 누가 거두는 게 아닌 야생 닭이었다. 아침에 마을을 지나다 보면 목청 돋워 우는 장닭 소리가 길게 들렸다. 우리가 잃었던 꼬끼오~~~ 소리를 여기서 들을 줄이야. 덕분에 우리 동네 같은 살뜰한 친밀감마저 들 지경이었다. 대부분 녀석들은 장닭과 더불어 가족 단위로 서너 마리씩 움직였다. 전혀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곳곳에서 활발히 잘 지내고 있었다.
고기 잘 먹는 이들인데 아무도 잡아먹지 않는 모양이었다. 늘 마트에서 가공된 닭고기만 사 먹다 보니 이 싱싱한 토종닭과 치킨은 연결이 안 되나 보다 싶은 생각까지 들지만 우리 아이들이 뛰노는 닭을 보면서 치킨을 떠올리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찾아보니 역사적으로 이 폴리네시안과는 원래 돼지와 닭이 친숙한 가축이란다. 실제로 하와이의 마우이족 신화를 다룬 영화 "모아나"에서도 돼지와 멍청한 닭이 감초처럼 나온다. 게다가 이 섬에 허리케인이 왔을 때 양계장의 닭들이 풀려나서 야생닭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까지 있으니 이 닭들의 당당한 거주가 자연스레 보이기도 했다.
하와이 트래킹 길에서 만난 야생 닭 한 쌍한데 문제는 내 입맛이었다. 그 이후로 자꾸 이 녀석들을 보면 난 뽀얀 국물의 삼계탕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저런 녀석에다가 인삼 두어 뿌리와 대추 찹쌀 넣고 푹 고아서 훌훌 마시면 기운을 차릴 것 같다는 생각이 구체적으로 드는 것이었다. 딸이 들으면 기겁을 할 것 같아 차마 말은 못 하고 녀석들을 볼 때마다 혼자서만 음흉한 마음을 품으며 지냈다. 돌아다니다 보면 먹게 되는 타국의 음식에 조금씩 물려갈수록 지친 내 몸과 입은 자꾸 뜨겁고 톱톱한 삼계탕 국물이 더 생각나는 것이었다.
마치 만화 영화 니모에서 착한 상어가 채식을 하며 육식의 욕구가 느껴질 때마다 참회하듯이. 하와이 닭과 나의 행보는 그렇게 내내 귀국 때까지 지속되었다. 삼계탕 국물 대신 이곳 레스토랑의 걸쭉한 토마토 수프를 찾아 주 메뉴 대신 게걸스레 먹는 것으로 내 입맛을 다스려 가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