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링이 지나간 후

천변 산책길에서

by 시우

며칠 전부터 온 나라가 긴장했던 태풍 링링이 한반도를 완전히 지나갔다.

어제 앞 산 마루 쪽 커다란 나무들이 바람에 크게 휩쓸리며 거친 소리를 내고 숲이 술렁거릴 때는 은근히 두려웠다. 전에 태풍으로 최상층인 친정의 아파트 전면 유리창이 왕창 부서진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큰 피해 없이 지났다. 그 여파로 비가 다소 왔지만 난 비를 좋아하니 그 비도 좋다. 그러나 수확을 앞둔 농가의 피해를 생각하면 우리만 별 탈 없이 지났다고 안심한다는 게 죄송하다.


토요일인 오늘 늦은 오후 중부 지방에 태풍이 완전히 지났다는 소식을 듣고 천변 산책에 나섰다. 태풍을 견디어낸 수풀의 안부가 궁금했다. 하늘은 잔뜩 흐리고 안개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도로는 온통 부러진 가로수의 잔 가지며 잎사귀들로 덮여 있다.


태풍이 지난 후의 천변 풍경


인적이 뚝 끊긴 천변은 한적했다. 많은 비가 내리진 않아서 개천의 징검다리가 완전히 잠기지는 않았다. 물속의 고기떼들은 수면 아래 깊은 쪽에서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지대가 낮아서인지 천변의 키 큰 풀이나 억새, 갈대들도 별로 쓰러지지 않고 잘 지탱하고 있다. 연해 보이는 풀꽃들도 작은 줄기를 세우고 있다. 거친 바람을 견디어낸 어린 풀꽃들이 대견했다.



그새 물 위로 오리 떼가 나와 저녁거리를 찾고 있다. 일기예보 없이도 이들은 본능적으로 더 이상은 큰 바람이나 비가 올 거 같지 않다고 느끼는 것인가 보다. 왜가리도 비를 맞으며 한 마리 나와 있다. 사람이나 새나 비가 와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 이들은 폭풍우가 올 때 어디에서 몸을 피하는지 궁금하다. 파란 우비를 입은 꼬마 둘이서 엄마 손을 잡고 조심스레 징검다리를 건넌다.


저쪽 위 다리에서 내려다보면 늘 보는 팔뚝만 한 잉어들의 안부도 확인할 수 있을 건데 도로를 따라 그쪽까지 올라가는 것은 별 재미가 없다. 비가 내리지만 아직 후끈한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비가 오건 태풍이 불건 일상은 계속되고 보이지 않게 나름 다들 제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간다.

며칠 뒤면 다시 이 천변은 더 다양한 생명들과 빛깔로 반짝일 거다. 모두의 안녕을 확인하고 집으로 천천히 발길을 돌린다.

오늘은 부추전을 부치고 얼큰한 김치찌개를 식탁에 올려야지 맘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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