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일
전에 있었던 우리 동네 정형외과 병실의 풍경은 이랬다.
전기온돌 마루에 침대가 대여섯 개 놓여있다. 벽의 가운데 위쪽은 티브이가 붙박이로 달려있고 공용 냉장고가 있다. 사고로 입원한 경우를 제외하면 나이 든 환자가 대부분인데 시골에서 올라온 환자가 많다. 새 환자가 입원하는 날, 먼저 입원해있던 환자나 보호자들의 과다한 호기심에 의해 새로 입원한 환자의 신원이 대충 파악된다. 어떻게 또는 어디가 아파서 어떤 경로로 입원하게 되었는지 집이 어딘지 간병인과의 관계, 언제쯤 퇴원할지 등등.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점심시간 외에도, 수시로 들랑거리는 문병객이 사 온 음료수나 간식거리가 서로 오간다. 점심시간에는 병원 밥은 부실하다며 준비해온 냉장고에 있던 각자의 국이나 밑반찬 통이 꺼내어진다. 이때 갓 담아온 생김치가 각 환자의 식판에 맛보라며 나누어지기도 한다. 늘 본의 아니게 얻어먹게 되는 환자의 경우 자식들에게 간식거리를 잊지 말고 넉넉히 사 오라는 엄명이 하달되기도 한다.
이들은 간혹 티브이 연속극 채널 권을 두고 사소한 다툼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서로 양보하는 선에서 해결된다. 하지만 장기 입원 환자의 경우 이러한 다툼이 나중에 큰 싸움으로 번져 병실을 바꿔야 하는 사달이 나기도 한다. 어떤 간호사가 친절하고 주사를 잘 놓는지 근처 맛집은 어딘지 병원 생활의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서로 나누는 덕에 병원의 사소한 것까지 훤해진다. 이러는 사이 동병상련의 정서까지 겹쳐 환자들 개개인의 신상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이런 인연으로 병실 친목계를 짜서 나가는 경우도 봤다.
내가 입원한 서울의 병실은 더없이 깨끗하고 쾌적하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병동 건물, 대학 병원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효율적으로 운용된다. 더욱이 간호간병 통합 시스템 병동이라서 보호자가 없는 병실이라 더 간결하다. 간호사 한 명이 병실 하나를 전담하고 또 간병사가 배치되어 있는 듯하다. 나 역시나 돌봄 노동에는 젬병인 남편에게 의지할 일 없이 이곳을 택했다. 일단 보호자용 침구 따위를 챙기지 않으니 입원 짐부터가 가볍다.
이인실로 배정을 원했는데 자리가 나지 않아 5인실을 쓰게 되었다. 병실은 요즘 추세가 그렇듯 일단 훤히 드러난 침상이 아니다. 약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침대와 개인 사물함과 냉장고가 있는데 그 공간을 두르는 커튼으로 완벽히 시선이 차단되어 있다. 옆의 환자가 누구인지 알 수도 없어 들리는 말이나 상황으로 짐작할 뿐이다. 나야 수술 후 금식 상태에서 꼼짝없이 며칠을 침대에만 머물러야 하는 경우라서 따로 간병할 일이 별로 없다. 수시로 오가는 간호사나 간병인에게 핫팩을 데워다 달라고 부탁하는 정도가 전부다.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지만 간간이 지속되는 통증으로 잠을 잘 수도 없다 보니 청각만 예민하다. 내 오른쪽의 환자는 어제 퇴원했는데 주치의로부터 퇴원 후 주의 사항을 전달받을 때 들어보니 혹시 나와 같은 수술을 한 게 아닌가 싶다. 궁금한 점 몇 가지를 묻고 싶었지만 어색해서 그만두었다. 그 자리에는 이내 다른 환자가 입원했다. 중환자인지 환자용 기저귀를 갈러 간병인들이 시간 맞춰 들락거린다. 그제 바뀐 내 왼쪽의 환자 역시 마찬가지다. 내 맞은편 쪽의 환자는 둘인데 한 명은 밤새 내내 고양이 울음 같은 앓는 소리를 내어 불면의 밤을 더욱 괴롭게 한다.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싶어 안쓰럽다가도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옆의 환자는 이 병실 소음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데 목소리 특이하다. 힘겹게 쥐어짜서 마른 성대로 뽑아 올리는 듯 내는 쉰소리는 듣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이 환자에게는 유난히 회진도 간호도 각별하다. 면회 온 가족이나 의료진이 보일 때마다 배가 아프다고 쉰소리로 통증을 호소한다. 검사 상으로는 아무런 원인을 못 찾겠다며 수시로 관장을 하는 거 같다. 어제는 문진으로 치매 검사를 했다. 그러나 환자 귀가 워낙 어둡다 보니 거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수준에서 문답이 이루어진다. 게다가 징징대는 하소연 덕분에 그분의 생활사가 다 드러난다. 인지 능력은 멀쩡한데 청력에 문제가 있고 아마도 더 큰 건 외로움이 아닐까 하는 짐작 해본다. 아들이 이 병원 윗분에게 특별한 부탁을 해서 다른 과의 과장과 스텝들까지 일부러 와서 챙기고 생색을 내기도 하는 거 같다. 그러나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정작 시간 맞춰 문병 온 자녀들은 환자에게 별 말을 건네지 않는다. 소리소리 지르며 대화할 기력이 없을 수도 있고 이미 정서가 단절된 짐스런 존재일 수도 있겠다 싶다. 병원서 퇴원하면 다시 혼자 살아야 한단다. 팔구십 고령일 거라 짐작했는데 나중에 실제 외모를 보니 칠십 대 정도인 거 같아 놀랐다.
내 왼쪽 환자는 더 심각하다. 아마도 요양병원서 내과 질환이 심해 이송된 치매 환자인 듯싶다. 간호사가 손만 대도 아프다고 “이제 고만해라! 더하면 때려버린다.”며 새소리를 낸다. 면회시간에 가족이 찾아오지만 단 한마디도 말을 섞지 않고 지켜보다만 간다. 그녀가 듣는 유일한 말은 간병인들이 기저귀를 갈 때 얼르는 소리뿐이다.
간호와 간병이 효율적으로 운용되는 이 편리하고도 조용한 병실에 난 며칠째 있다. 개인 영역이라고는 전혀 없이 죄다 까발려지는 예전 우리 동네의 그 떠들썩하고 촌스런 병실이 생각난다. 과한 관심과 참견, 환자복만 입으면 모두가 꼭 같다는 듯 거침없는 동류의식이 지배하는 그 공간도 난 불편했다. 늘 켜놓고 보는 티브이, 막장 드라마에 몰입해서 침을 튀기며 각기 의견이 분분한 그곳을 탈출해 일인실로 옮기면서 난 얼마나 안심했던가.
한데 뜬금없이 전의 그 동네 병실이 새삼 따듯하게 느껴지고 그립기까지 한 것이다. 마치 더없이 편한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허전하고 뭔가가 늘 목말라서 예전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그리워하는 현재의 내 모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