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옛날 기차 풍경

by 시우

지금은 '여행'하면 KTX나 비행기 고속버스 자가용 등 속도나 편의성을 떠올리지만 예전에는 장거리 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탈거리는 기차였다. 고속버스도 있기 전, 구간도 알기 힘들고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완행버스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최고의 여행 수단이었다.

어렸을 때의 여행 기억은 거의가 기차와 연관된다. 지금도 '요오깡'이라 불렸던 '양갱'이나 바브민트 껌, 홍옥, 삶은 계란과 땅콩 등을 생각하면 초록색 벨벳 천을 입힌 완행열차에 앉아 덜커덩 거리며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기차 여행은 항상 마주 보는 4인용 좌석이라서 객과의 동행이 필연이었다. 기차의 같은 좌석에 앉으면 이내 말을 트고 음식을 나눠먹곤 하는 게 다반사였다.


대학 때 혼자 기차를 탔던 어느 날이다. 마주 보는 좌석에 앉은 아주머니는 몸집이 아담하고 붉은 볼을 가졌는데 코밑이 지지한 서너 살짜리 아이를 안고 있었다. 수시로 서고 연착이 잦은 기차여행은 지루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대는 아이를 달래려는지 보퉁이에서 이거저거를 꺼내다가는 사과 두어 개를 꺼내서 내게도 하나를 내밀었다. 농익어 단내가 물씬 났다. 늦가을 햇살까지를 잔뜩 받아 다디단 향기가 배일대로 배인 사과였다.

칭얼대던 아이는 엄마가 꺼낸 붉은 사과에 눈이 쏠렸다. 겨우 이가 몇 개 있는 아이가 깎지도 않은 사과를 어찌 먹을까 내가 생각하는 사이 아이 엄마는 실한 사과를 잡아 몇 번 수건에 쓱쓱 닦더니만 이빨로 겉껍질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껍질과 대비해서 희게 드러나는 사과 살에선 과즙이 뚝뚝 배어났다. 사과 하나를 죄다 이빨로 겉껍질을 벗기더니 아이 손에 들려줬다. 껍질이 두툽하게 떨어져 나간 사과는 부피가 줄어 작아졌다. 그걸 받아 든 아이는 두 손으로 쥐고는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다. 아이의 양손과 얼굴은 다디단 사과즙 범벅이 되었다. 아이 엄마는 입 안에 든 사과 껍질을 츱츱 단물을 삼켜가며 맛있게 먹었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내 입에도 단물이 고였다. 달콤한 사과향이 은은히 풍겼다.


그 후 나도 가끔 그렇게, 괜스레 내가 먹을 사과의 껍질을 이빨로 벗겨봤지만 싱싱한 사과 살을 툭~ 하고 베어 무는 그 질감하며 농익은 향기랑, 그때처럼 그렇게 생생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제는 새콤달콤한 데다 과즙이 풍부하고 예뻤던 홍옥도 더 이상 보기 힘들다. 시간의 속도에 밀려 사라진 익숙했던 풍경이 그립다.


다시 한번 예전처럼 오징어, 봉지 땅콩, 삶은 계란이랑 양갱 등 주전부리를 싸들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지방의 완행열차 여행이 하고 싶어 진다. 지금이야 예전처럼 기차가 대기하는 그 잠깐의 시간을 이용해 우동을 파는 역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는 역마다 광주리 인 아주머니, 보따리든 할머니가 수시로 타고 내리는 기차, 가방에서 삶은 달걀이나 홍옥을 꺼내 나누고 답례로 홍익회 밀차에서 사이다를 사서 건네기도 하던 예전의 그 풍경이 새삼 그립다. 시간의 속도에 밀려 사라진 익숙했던 풍경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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