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싣고 날다
웬만해서는 인터넷 배송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할 때, 때로는 찾는 물건을 일반 시중에서 구하지 못할 때는 인터넷 쇼핑을 이용한다. 오늘은 후자의 이유로 주문한 물건이 새해 첫날 배송되었다. 며칠 전에 주문해놓고 잊고 있다가 오늘 배송을 받았다. 연이다.
연은 내게 특별한 추억의 물건이다. 어려서 동네 아이들은 겨울이면 더러 연을 날렸다. 주로 설 명절 즈음에 시골 친척집에 가면 아이들이 모여 빈 논이나 언덕에서 연을 날리며 노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창호지 바르고 남은 한지를 준비해서 댓살을 깎아 붙여서 마름모 꼴의 가오리 연을 만들고 길게 꼬리를 달았다. 더러는 직사각형에 가운데 구멍을 뚫고 댓살을 좌우 사방으로 붙인 방패연도 보였다. 그러나 오빠가 없는 나는 그저 구경에 그쳤고 감히 거기에 낄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운 좋게 물레를 이어받아 연을 날려본 적은 있지만 잠깐의 감질나는 일일 뿐이었다. 게다가 잘못해서 연이 내리 꽂히기라도 할까 봐 주눅부터 들었으니.
언젠가 연 날리는 것을 보고 하도 부러워하자 할아버지께서 방패연을 만들어 주신 적이 있다. 공들여 깎은 댓살에 한지를 바르고 가운데 태극문양까지 곱게 그려 넣어 그 누구의 연 보다도 고급스럽고 멋있었다. 그러나 기뻐하는 것도 잠시, 솜씨 좋은 할아버지셨지만 연 만드시는 솜씨만은 동네 머슴애들만 못했다. 멋진 내 연은 동네 애들의 허접해 보이는 가오리 연처럼 날기는커녕 뜨지도 않았다. 마당에서 친척 아저씨까지 동원되어 물레를 들고뛰라며 연을 몇 차례나 띄워 줬지만 단 한 번도 드높이 비상하지 못하고 말았다. 아주 어렸을 적의 이 일 이후로 연은 내 기억에서 아쉬움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전에 L.A의 레돈도 비치에 놀러 갔을 때다. 벌써 한 30년 전이지만 거기서는 어른들이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는 것만큼이나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연을 날리며 노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해안가 가게에서는 갖가지 종류의 연을 팔고 있었다. 그때 조카들과 근처 가게에서 연을 사서 해가는 줄도 모르고 놀곤 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바닷가에서 연을 날리는 것이 일반적인 놀이인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예전에 레이더스의 "연"이라는 노래는 겨울이면 참 듣기 좋았다. 가사에서 느껴지는 정경도 정감 있어서 좋았고 그 리듬에서 신나게 들리는 드럼 소리는 매혹적이었다. 내가 드럼을 배우기 시작할 때의 목표가 이 노래의 드럼 부분을 신명 나게 한 번 연주해 보는 것일 정도였으니.
여하튼 그런 연을 바닷가에서 몇 차례 신나게 날려 본 것은 내 어릴 적의 바람을 이룬 멋진 경험이었다.
미국의 연은 참 실용적이었다. 플라스틱과 비닐로 만들어져 있어서 찢길 염려도 없고 잘 만들어져서 바닷가의 바람만 타면 쑥쑥 잘도 날아올랐다. 얼레를 죄다 풀어서 하늘 높이 까마득하니 오르는 것을 보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게다가 옛날 우리 연처럼 얼레를 풀었다 감았다 하는 묘기를 부릴 일도 없었다. 여기서는 연실에다 사기 가루를 먹여 실을 끊는 놀이는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물레의 실도 예전처럼 무명실이 아니라 질긴 나일론 실이었다.
언젠가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꺼냈는데 그 누구도 연에 대해 특별한 느낌이나 경험 또는 관심 있는 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이내 입을 닫았다. 그 후로는 내 안에만 간직한 물건이 되고 말았다.
전에 사이판에 놀러 갔을 때다. 바닷가의 호텔에서 며칠 묵었는데 앞에 호텔의 사설 비치가 있어 연 날리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주위의 모든 가게를 죄다 뒤졌지만 끝내 연을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중국 가게에 가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현지인의 말에 물어물어 중국 가게에 까지 찾아갔지만 없었다. 요즘은 연을 찾는 사람이 없단다. 작년 유럽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닷가 숙소에 머물 때도 유심히 봤지만 연을 날리는 사람도 연을 파는 곳도 없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기차를 타고 가다가 무슨 행사를 하는지 각양각색의 연이 멀리서 창공을 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뿐이다.
바닷가에 간다면 꼭 연을 날리고 싶었고 내 아이에게 연 날리는 기분을 맛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지난주에 우연히 인터넷 쇼핑 몰을 보다가 연을 파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종류별로 색색으로 있었다. 물론 LA에서와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얏호!"라고 크게 소리치고 싶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그 즉시 연을 주문했다. 그 연이 오늘 도착한 것이다. 제법 크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받아서 잘 보관해뒀다. 조만간 바닷가에 갈 일을 만들어야겠다.
하늘을 올려보며 푸른 창공을 향해 연을 올리고 실을 통해 느껴지는 팽팽함을 손끝에서 느끼는 그 호강을 맘껏 해볼 생각이다. 발은 비록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 땅에 있지만 실을 통해 이어지는 연에 내 마음을 실어 창공을 가르고 까마득하니 날아오르는 것을 느끼는 그 기분이라니. 내 아이도 멀리 시선을 보내 바람을 타고 중력을 가르며 날아오르는 자신의 마음을 느껴보기를 바란다,
새해 첫날 더없이 고맙고 반가운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