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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Nov 01. 2021

도깨비 시장

펄펄 살아있는 말

날이 갑자기 한파와 함께 가을 문턱에 들어서니 새벽에 움직이려면 찬 공기가 살에 닿아 선득거린다. 요즘은 어떤 것들이 나오는지 궁금해서 풋콩도 살 겸 새벽 도깨비 시장에 갔다. 비만 안 오면 변함없이 열리는 천변의 이 시장이 신통하다. 오늘도 역시나 파는 사람 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열무도 나와 있지만 이제 가을무가 서서히 나오고 값도 많이 헐해졌다. 이거 저거 구경하다가 사람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늘어놓은 열무단 앞에 섰다. "집에서 기른 것"이라고 매직펜으로 박스를 뜯어 써놓은 것을 보니 밭에서 기른 것을 뽑아 온 모양이다. 싱싱하고 크기도 적당해서 한 단 사면서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열무김치는 어떻게 담아야 맛있어요?"

"아유~~ 열무김치는 '미친년 설거지 하듯이' 담아야 맛나요."

옆에서 열무를 사려고 하던 아주머니가 거든다.
"맞어, 열무김치는 얌전 떨으면 이상허게 맛이 안 나." 

이들의 싱싱한 말에 재미가 나서 절로 웃음이 났다. 뭐라 사족을 붙일 필요 없이 살림하는 전라도 아줌마들이면 알아듣는 이 펄펄 살아있는 말.

물론 그다지 얌전치 못한 나는 돌아와서 그들 말대로 건성건성 김치를 담았다.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이 말을 하자 다들 "미친년 설거지 하듯이"라는 표현이 재미있다면서 깔깔댄다. 음식 솜씨 좋은 친구가 아마도 열무는 너무 양념을 많이 하지 말고, 자꾸 손대면 풋내 나니 조심하라는 말일 거라며 풀이를 해준다. 식재료에 따라 다루는 방법이 다른데 그것을 이렇게 재미나게 표현하니 부엌에서 쓰이는 얼마나 또 다른 펄펄 살아있는 표현이 있을까 싶어 궁금하다. 새벽 시장에서 채소를 사면서 꼭 필요하지는 않아도 한두 마디씩 말을 건네는 것도 이런 재미가 있어서다. 

난 아침 시장에서 싱싱한 채소만이 아니라 펄펄 살아 맛있는 말도나는 가끔씩 덤으로 얻어 온다. 말이 참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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