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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Oct 21. 2021

엄마의 사진첩

엄마가 병원에서 퇴원해 오신 후 동생이랑 엄마방의 벽장을 정리했다. 엄마의 사진첩을 꺼내 이거 저거 들춰 봤다. 엄마는 “사진첩 이외에 이제 다른 사진은 없고 나중에 태울 거는 노란 봉투에 넣어뒀다. 너희들 사진은 따로 뒀으니 가져가라."라고 하셔서 엄마 말대로 봉투에 든 것은 잡동사니 사진들 인가보다 싶었다.

엄마의 벽장에는 정리한 사진첩 외에 수의가 나무상자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엄마는 수의뿐 아니라 자신이 가실 곳까지 성당 추모관에 이미 마련해두고 계신다.     

 

기력이 없어서 침대를 떠나 움직일 때는 부축을 받아야만 걸으실 수 있는 엄마는 TV를 보다 주무시다 하신다. 간병이라고 하지만 곁에서 그저 같이 TV를 보거나 말벗을 하거나 식사 시중을 드는 일이 전부다. 직장도 쉬고 있는 참에 전부터 별러왔던 엄마의 조문보를 미리 준비해볼까 싶어 먼저 사진을 추려봤다. 


온종일 누워 계신 엄마 곁에서 사진을 본다. 엄마의 떡애기 적 사진부터 젊어서, 나이 들어 퇴직하실 때, 그리고 최근의 사진까지. 그중에서 독사진을 찾는데 전에 분명히 있었는데 안 보이는 사진들이 있다. 동생네나 우리 집 사진첩을 죄다 찾아도 없다. 혹시 해서 보니 엄마가 태우라고 하신 노란 봉투에 엄마의 젊은 시절과 직장시절이 모두 들어 있었다. 다른 봉투에는 동생과 나 그리고 손주들 이름별로 개개인의 사진을 분류해서 묶어놓으셨다. 엄마는 아프기 전 어느 날 혼자서 스스로의 삶을 사진과 함께 정리하셨던 것이다. 이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이제는 죄다 바뀌어서 그저 짐작만 할 옛 전주의 곳곳에서 찍은 여학교 때 사진, 가르치던 아이들과 찍은 수십 장의 기념, 졸업 사진, 해마다 찍는 교직원 사진까지. 예전 4,50년 전의 사진은 왜 그리도 작은지 그저 필름 크기 정도인 사진도 부지기수다. 태울 것이 아니라서 일단 고이 모셔두고 대충 고른 사진을 엄마 곁에서 정리하며 조문보를 핑계로 엄마의 삶을 사진을 통해 들여다본다.     


엄마의 첫 사진은 아직 백일도 안 된 떡 애기를 의자에 앉히고 할아버지가 뒤에서 잡고 찍은 사진이다. 젊은 아빠였을 할아버지 고수머리와 손가락이 아기 사진 위, 옆으로 살짝 보인다. 그다음이 돌 사진. 솜씨 좋으신 외할머니가 목단 꽃을 화사하게 수놓아 목 주위로 두른 턱받이가 참 곱다. 그리고 다음의 엄마네 가족사진은 어느 화사한 봄날이 배경이다. 뒤로는 막 피기 시작한 벚꽃이 보이고 12살의 엄마가 흰 블라우스에 주름 점퍼스커트 차림으로 가운데 앉고 양 옆으로 젊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잔디밭에 앉아계신다. 할머니는 한복 차림이고 고수머리의 할아버지는 조끼를 갖춘 양복차림에 둥근 뿔테 안경을 쓰셨다. 이 흑백 사진은 그림처럼 아련하다. 내가 봄을 떠올릴 때마다 연상되는 장면이다. 엄마는 이 사진이 장수 어디라고 정확히 기억하고 계신다.     

그리고 연대를 따지자면 엄마 여학교 때 사진이 들어가야 하는데 필름 크기의 흑백 사진이라 나이 든 이 딸의 눈이 침침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확대 복사를 해볼까 싶기도 한데 흐릿한 데다가 대부분이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라 다른 사진으로 대체하기로 한다. 사범학교 앨범에서 인물사진은 복사하고. 다음은 엄마 기억으로 스무 살 때의 독사진. 지금으로 치자면 상반신이 나오는 증명사진쯤 되는데 복스럽고 젊은 엄마가 눈웃음을 웃고 있다. 결혼해서 찍은 사진은 대부분이 스냅사진이나 가족사진이니 독사진이 아니어서 건질 게 없다. 내가 태어나서부터 나를 안고 찍은 사진들도 많이 있다. 이때쯤 엄마의 친구 분이랑 찍은 큰 사진이 있다. 엄마나 그 친구분 머리스타일은 구불구불 그 당시 유행하던 굵은 웨이브가 들어있고 사진 포즈도 둘 다 세련되었다. 그다음이 우리 자매가 자라면서 엄마랑 찍은 사진들, 그 이후의 사진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사진이 대부분이다. 엄마는 주무시다가 늘 반복되는 TV 드라마를 또 보시다가 하며 온종일 누워계신다. 주름진 엄마의 얼굴은 이제 앨범의 끝부분에 닿아있다. 


사진을 사진관에 가서 복사해서 파일로 보관했다. 몇 장의 사진으로 요약되는 그 사진 속의 엄마 일생은 참 심플하다. 태어나서 배우고 성인이 되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사회생활을 하고 은퇴해서 늙어가는 지극히 평범한 일생. 글로 쓰면 단 한 문장으로도 요약될 만큼. 마치 역사 시간에 피비린내 나는 100년의 전쟁도 시작과 끝 연도 쓰고 "어디 어디와의 100년 전쟁이 있었다." 정도로 기술하면 끝나듯이 그렇게. 아마도 우리의 삶을 그런 잣대로만 본다면 죄다 그 틀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 안에서의 수많은 사연과 희로애락은 시간과 함께 그대로 묻히며 지나간다. 이제까지 이 세상의 역사란 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     


자식에게 폐 끼칠 걱정 외에는 아무런 희망도 근심도 없다는 엄마의 잠든 얼굴에서 늦가을 해거름 녘 빈들을 본다. 이미 추수를 마치고 수확물을 죄다 거두고 남은 황혼의 들녘. 20세의 엄마는 사진 속에서 저렇게도 환하게 웃고 있는데. 세월이라는 게 참 무섭다. 세월에 따른 인간의 망각이라는 것도.

참으로 쓸쓸한 이 가을이 조용히 다시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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